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여론조사 회사가 ‘반성문’을 쓴 이유는

4개 여론조사 회사 뭉쳐 만든 ‘전국지표조사’(NBS) 갤럽·리얼미터에 도전장,
여론조사 신뢰 회복하는데 촉매 될 수 있을까
등록 2020-09-12 14:08 수정 2020-09-16 10:23
*조사방법 한국갤럽: 유·무선 임의번호걸기(RDD) 전화면접조사 100% 리얼미터: 유·무선 임의번호걸기(RDD) 자동응답시스템(ARS) 90%, 전화면접조사 10% 전국지표조사(NBS): 휴대전화안심번호 전화면접조사 100% *표본수, 조사일시, 표본오차 등은 여론조사 기관별로 각각 다름. 자세한 내용은 각 여론조사기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조사방법 한국갤럽: 유·무선 임의번호걸기(RDD) 전화면접조사 100% 리얼미터: 유·무선 임의번호걸기(RDD) 자동응답시스템(ARS) 90%, 전화면접조사 10% 전국지표조사(NBS): 휴대전화안심번호 전화면접조사 100% *표본수, 조사일시, 표본오차 등은 여론조사 기관별로 각각 다름. 자세한 내용은 각 여론조사기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조사회사와 여론조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적지 않습니다. 조사회사 관계자들로서 깊이 자성(自省)합니다. 과학적(통계적) 절차를 엄정하게 지키는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조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책무(責務)가 있다는 것이 전국지표조사의 출발점입니다.”(전국지표조사 누리집 소개글)

7월13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 회사가 전국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라는 새로운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4개 회사는 외부 기관의 의뢰를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비용을 부담해 2022년 대선까지 격주로 대통령·정당 지지율과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시행·발표할 계획이다. 기존 여론조사와 다른 조사 방법을 적용한다고 공언한다. 리얼미터(2005년 7월부터 시행)와 한국갤럽(2012년 1월부터 시행)이 주도해온 주간 여론조사에 ‘제3의 여론조사’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출범 두 달이 된 NBS가 정치 여론조사의 신뢰를 회복하는 촉매가 될 수 있을까. 9월7~8일 4개 회사 담당자와 하동균 케이스탯리서치 이사에게 서면과 전화로 질문을 던졌다.

하동균 이사는 “특정 조사가 문제라고 접근했다기보다 많은 여론조사 속에 중심을 잡고 기준점이 되는 조사가 있어야 한다는 데 4개 회사가 공감해 2020년 초부터 NBS 출범을 논의했다”고 말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수없이 쏟아지는 여론조사 홍수 속에 여론조사의 편향·왜곡 논란이 계속 불거지는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기계 소리 대신 사람 목소리로

NBS는 조사 방식의 차이를 강조하며 기존 여론조사와의 차별성을 부각한다. NBS의 조사 방식은 ①자동응답시스템(ARS) 대신 전화면접조사 ②임의번호걸기(RDD) 대신 안심번호 활용 ③유·무선 전화 혼합 조사 대신 100% 무선전화 적용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무선 RDD 전화면접조사(유선 15%)를 시행하는 갤럽과 유·무선 RDD ARS(ARS 90%·전화면접 10%)를 시행하는 리얼미터와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①②③은 그동안 여론조사 업계와 학계에서 여론조사 신뢰 회복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던 쟁점이다. NBS의 시도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①은 국내 여론조사 업계에서 오랫동안 찬반이 대립하는 쟁점이다. NBS 4개 회사가 속한 한국조사협회(KORA) 회원사들은 “ARS 조사는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2014년부터 ARS 조사를 하지 않고, 리얼미터가 속한 한국정치조사협회(KOPRA) 회원사들은 ARS 조사를 시행한다. ARS 비판론자들은 기계음으로 진행되는 ARS 조사는 응답률이 떨어지고(조사 진행 중 끊는 일이 자주 발생), 응답자의 성·연령 등 개인정보의 신뢰성을 검증할 수 없어 과학적 조사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끝까지 설문에 응답하는 사람은 대부분 정치 고관심층일 확률이 커 ‘중간 여론’ 대신 양극단의 여론이 과대 대표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반면 ARS 옹호론자들은 대통령 국정 운영과 정당에 대한 실제 지지와 투표로 이어지는 여론을 파악하는 데는 정치 고관심층 응답 비율이 높은 ARS가 효과적이라고 반박한다. 또 사람(상담원)과 통화하는 것보다 기계음에 응답하는 게 응답자들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솔직히 답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화면접조사를 하는 갤럽·NBS와 ARS 조사를 하는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청와대 비서진의 다주택 보유 논란 등 ‘부동산 민심’ 악화가 절정에 이르렀던 8월 첫째 주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지지율은 34.6%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35.1%)에 육박했지만, 갤럽과 NBS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5.0%, 27.0%로 민주당 지지율 37.0%, 34.0%와 큰 차이를 보였다. ARS 조사에서 중도층·부동층보다 야당을 지지하는 정치 고관심층의 ‘솔직한 응답’이 더 반영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하동균 이사는 “(양극단보다) 중도층 여론을 잡는 것이 평소 현실 여론에 가깝다”고 전화면접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전화 받지 않으면 다시 전화해

②의 경우 NBS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안심번호는 여론조사 회사가 조사에 필요한 성별, 연령별, 지역별 휴대전화 번호를 이동통신사에 요청해 받는 가상의 일회용 전화번호(개인정보 숨김)다. 지역·성·연령 분포에 따른 조사를 위해 무작위로 추출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응답자가 해당 조건에 맞는지 확인하며 조사를 진행하는 기존 RDD 방식보다 진화한 방식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2017년 2월부터 선거 여론조사에서 안심번호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NBS는 “3대 통신사의 가입자 정보를 토대로 조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포함됐다고 할 정도로 모집단 포함률이 높다”고 설명한다. 하동균 이사는 “3일 이상 조사 기간을 확보해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 최대 다섯 번 다시 전화해 응답률을 높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론조사 업계와 학계에서는 이를 재접촉(Call-back)이라고 하는데 무작위로 새로운 응답자를 찾는 것보다 전화를 다시 걸어 응답률을 높이는 게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주장과, 신뢰도 향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충돌한다.(‘유·무선 전화 비율 등 바람직한 여론조사 방법에 관한 연구’, 2017년)

③의 경우 집전화를 걸어야 휴대전화를 받지 않는 고령층의 여론이 파악된다는 주장과 집전화 비율을 높이면 고령층 여론이 과대 대표된다는 주장이 그동안 대립해왔다. 최근 대부분 여론조사는 유선 10~20%, 무선 80~90%를 혼합해서 시행하는데 ‘황금비율’에 대해선 여론조사 업계와 학계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NBS는 “유·무선 조사는 가중치 부여(과소·과대 대표된 계층 비율을 보정)에서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집전화·휴대전화 둘 다 있는 사람이 조사에 뽑힐 확률도 높아진다”며 무선 조사 100%로 조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일하게 설계된 조사 결과로 추세 분석해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의 ‘21대 국회의원선거 선거여론조사 백서’를 보면 등록된 여론조사 방식만 20여 가지나 있다. 여론조사 방식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여심위 의뢰로 한국통계학회가 2019년 9월30일~10월2일 두 곳의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다섯 가지 방식으로 여론조사(각각 500명씩 응답)를 진행하니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의 경우 조사 방식에 따라 출렁였다.(‘선거여론조사의 객관성·신뢰성 제고를 위한 조사방법론 개선방안 연구’, 2019년 10월) 조사 방식에 따라 부정평가가 최대 17.8%포인트(ARS·유선 64.0%-유선·안심번호 전화면접 46.2%) 차이 났다. 

이러한 차이는 여론조사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NBS의 시도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늘어날수록 시민의 혼란이 커진다. NBS 담당자들은 “서로 다른 여론조사 회사의 조사 결과로 추세를 분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일한 설계, 동일한 방법으로 진행된 조사 결과를 보면서 지난 조사와 이번 조사가 차이가 날 경우 다른 회사의 여론조사도 변화가 동일한 방향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한다. 실제로 7월 둘째 주부터 9월 첫째 주까지 갤럽·리얼미터·NBS의 조사 결과를 보면 특정 시점의 수치는 각각 다르지만 대통령·정당 지지율의 등락 추이는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