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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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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우린 사용자 아니다”…카카오, 대리노조 교섭 거부

합법노조 교섭요구에도 “정책·입법으로 해결하자”
노조 “카카오의 사회적 책임이 교섭 거부인가”
등록 2020-08-29 10:12 수정 2020-08-29 14:00
8월25일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삼권 보장을 요구하는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박구용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카카오T 대리’ 기사용 애플리케이션을 시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8월25일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삼권 보장을 요구하는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박구용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카카오T 대리’ 기사용 애플리케이션을 시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민주노총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대리운전 서비스 ‘카카오T 대리’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카카오모빌리티가 이를 거부했다. 등록 기사 수 15만 명으로 최대 규모의 앱 기반 대리운전 중개업체이자 노무제공 플랫폼업체인 카카오모빌리티가 단체교섭을 거부함으로써 노사 협약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이 한층 어렵게 됐다. 정보통신기술 기반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 업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단체협약 체결 지위 불분명” 이유 내세워

8월27일 <한겨레21>이 입수한 카카오모빌리티 공문을 보면, 카카오모빌리티는 “노조가 추진하는 대리운전 기사 권익 향상을 위한 정책에 최대한 협조할 예정이며 노조와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한다”면서도 “당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법률 검토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고, 대리기사들도 회사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노조법을 보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사용자(기업)는 ‘교섭요구사실 공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카카오모빌리티는 교섭 요구를 받은 뒤 보름 동안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하지 않다가 교섭할 의사가 없음을 노조에 뒤늦게 공문으로 통보했다. 이 경우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교섭요구사실 공고 시정 신청’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가 시정 판정을 내리더라도 카카오모빌리티가 불복하면 다시 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앞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이런 상황을 겪었다. 택배연대노조는 2017년 고용노동부에서 설립신고증을 받은 뒤, 택배 대리점과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했으나 이들은 ‘교섭요구사실 공고’를 하지 않고 교섭을 거부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교섭을 진행하라는 취지의 ‘교섭요구사실 공고 시정 판정’을 내렸으나, 사용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3년째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단체교섭 거부’는 대리운전기사가 노조법의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봐, 노조설립신고증을 교부한 고용노동부의 태도와는 배치된다. 대리운전노조는 고용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지 428일 만인 7월17일 노조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의 노동자와 노조법의 노동자가 다른 개념이라고 판단해, ‘개인사업자’에 해당하는 특수고용노동자(플랫폼노동자)라 할지라도 특정 사업자가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사용자와 노무 제공자 사이의 지휘·감독 관계 등에 있다면 노조법의 노동자로 보고 노동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학습지 교사, 택배노동자, 정수기 수리기사 등이 노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고용부는 대리기사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 노조설립신고증을 내줬다.

대리기사 노조 인정한 고용부 태도와 배치

카카오모빌리티는 또 공문에서 “대리운전 업계 및 정부·국회 당사자들이 한데 모여 숙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어떨지 검토해달라. 정책·입법에 의해 해결될 수 있도록 당사자들이 모이는 논의의 장이 열린다면, 당사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법이 정한 단체교섭 대신 정책·입법 협의를 하자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카카오모빌리티와 대리운전노조 사이의 ‘협의’는 2016년 카카오가 대리운전 서비스를 처음 내놓을 때부터 있었다. 당시 카카오의 대리운전업 진출을 두고 기존 대리운전업계가 ‘골목상권 침해’라며 크게 반발할 때, 노조는 카카오와 업무양해각서(MOU)를 맺고 서비스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카카오를 도왔다. 카카오가 대리운전 기사에게 부담이 됐던 배차 프로그램 사용료와 보험료를 받지 않는 등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말 이른바 ‘마이너스 확정콜’(정해진 것보다 낮은 요금을 고객이 입력해도 기사가 수락하면 배차해주는 요금 결정 체계)을 시행하자, 노조는 “기사들을 경쟁시켜 수입이 악화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며 자문위원회에서 탈퇴했다. 김주환 노조위원장은 “자문위원회에서 요구를 전달해도 카카오모빌리티가 듣는 척만 할 뿐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문위원회가 아니라 단체교섭으로 해결하기 위해 설립신고증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벌여왔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는 국회·정부를 찾아다니며 표준계약서 도입, 공정위원회 지침 개정 등 정책·입법을 위한 노력을 이미 해왔다. 단체교섭을 요구한 것은 카카오모빌리티도 최소한의 책임을 지라는 요구였다”고 덧붙였다.

카카오 “정책·입법에 의한 해결엔 참여”

카카오모빌리티가 주장하는 “정책·입법을 통한 해결”은 2000년대 초반부터 얘기됐지만 관련 입법은 진척되지 않았다. 정책적 해결이 까마득해지자 노사 당사자들이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삼권을 보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합법노조’가 된 대리운전노조가 카카오모빌리티를 상대로 제기한 교섭 요구가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유다. 카카오T 대리는 15만 명의 기사가 활동할 정도로 규모가 큰데다, 카카오모빌리티가 플랫폼노동자와 직접 계약하면서 플랫폼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전세계 플랫폼노동에서 쟁점이 되는 ‘배차 알고리즘 공개와 개선’을 대리운전노조가 교섭 요구 대상으로 삼았기에 교섭 결과에 따라 플랫폼업계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카카오모빌리티가 단체교섭을 거부함에 따라 플랫폼 노사 간 의미있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단체협약 체결은 한층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김주환 위원장은 “카카오가 대리운전 시장에 진입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는데, 노조법상 합법노조의 교섭 요구를 뻔한 핑계로 거부하는 것이 카카오가 말해오던 사회적 책임인지 되묻고 싶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금이라도 교섭에 나서 코로나19로 인해 어렵게 생존하고 있는 대리기사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카카오모빌리티가 정책·입법을 통한 해결을 얘기하는 것은) 사용자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면서,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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