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반기 재입사해 무급휴직 중인 직원에 대하여 휴직 연장을 다음과 같이 노사 합의한다.”
2019년 12월24일 쌍용자동차는 복직 예정자 46명에게 등기우편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전날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에게 상추쌈을 싸서 드리던 서형민(50)씨도, 태어나 처음 가본 캠핑장에서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던 조경민(57)씨도, 친구와 복직 축하주를 마시던 정재영(59)씨도, 이삿짐을 풀다가 가족과 장 보러 나온 이경철(43)씨도, 모두 같은 날 당사자의 동의도, 합의도 없이 기한 없는 휴직 연장 통보를 받았다.
잔인한 크리스마스이브전날까지만 해도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의 쉼터인 경기도 평택의 심리치유센터 ‘와락’에 모여 송년회를 한 이들이었다.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드디어 다 같이 모여 진짜 즐겁게 일할 수 있겠다” 싶었다. “며칠 있으면 출근한다” “회사 가서 보자”고 말하며 헤어진 지 하루도 채 안 됐고,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쌍용차는 10년 전인 2009년 5월8일에도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계획 신고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10년이 지난 2019년 7월1일 재입사한 뒤 무급휴직하다가 2020년 1월2일 복직을 앞두던 이들은 “꼭 크리스마스이브에 또 이렇게 해야 했나”라며 분노했다. 10년 전 “어버이날에 이렇게 해야 했을까요…”라고 묻던 그때 그들의 모습과 잔인하게 겹쳤다.
이들은 12월29일 와락에 다시 모였다. 그리고 2020년 1월7일, 쌍용차의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와 상관없이 2018년 9월 노·노·사·정(쌍용차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쌍용차·경제사회노동위원회) 합의에 따라 예정대로 ‘정상 출근’하기로 했다. 은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 이후 복직 예정자들이 다시 모인 12월29일부터 12월31일까지 세밑 사흘간 이들을 동행 취재했다. 여기에 복직 예정자 12명의 인터뷰를 종합해 기사로 재구성했다. 복직 예정자들의 요청으로 모두 가명을 썼다.
송두리째 날아간 40대의 삶“철썩철썩.”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 사는 복직 예정자 이민혁(47)씨는 12월29일 아침 7시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로 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바람이 불었고 파도는 거칠었다. 파도를 넘지 못한 배는 쉬이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2시간이나 더 걸려 6시간 만에 겨우 땅을 밟았지만,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승객들이 게워낸 음식물 냄새에 민혁씨는 계속 머리가 아팠다. 크리스마스 전날, 우체국에서 상·하차 작업을 하던 민혁씨는 쌍용차에서 함께 일했던 아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3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무급휴가를 내고 배에 올라탔다.
오후 3시 넘어 도착한 와락에는 동료 21명이 있었다. 먼저 와락에 와 있던 형민씨는 고향에서 돌아온 뒤 나흘 만에 한 첫 외출이었다. 그는 나흘 내내 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정신이 멍했다. 와락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복직 예정자들은 형민씨를 걱정했다. “형답지 않게 왜 이렇게 멍해.”
2018년 9월 쌍용차와 현직 노동자로 구성된 기업 노조인 쌍용차노조, 해고노동자로 이뤄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09년 정리해고된 노동자의 60%를 2018년 말까지, 나머지 해고자를 2019년 상반기 말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형민씨는 일터도, 가족도 모두 잃은 뒤였다. 2018년 5월 이혼 뒤 형민씨에게 복직은 헤어진 가족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형민씨는 고향으로 갔다. 시내에서 부모님과 밥을 먹으며 어머니에게 상추쌈을 싸서 드리고 아버지에게도 쌈을 드리려던 순간, 복직한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애썼다”고 말하는 부모님에게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형민씨는 50살이다. 2009년 동료들의 해고를 막으려 나섰다가 징계 해고된 뒤 그의 40대 삶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50대의 삶마저 위태로웠다. 형민씨는 이제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3시간 넘게 이어진 모임은 오후 5시 넘어 끝났다. 김시은(51)씨는 곧장 집으로 갔다. 복직을 앞두고 2019년 마지막 일요일에 시은씨 집에서 온 가족이 모이기로 했다. 밥을 먹던 어머니가 물었다. “1월2일 출근하지?” 시은씨는 자신의 복직을 축하하러 온 어머니와 형제들이 속상해할까봐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출근한다”는 아들의 거짓말에 어머니는 덕담을 이어갔다. “그래, 2020년은 좋은 일만 있을 거다.”
타인 아픔에 공감하는 세상 되길12월29일 밤은 길었고, 1월2일까지 남은 날은 짧았다. 경민씨는 잠이 오지 않았다. 무기한 휴직 연장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어렵게 캠핑 장비를 빌린 경민씨는 크리스마스 전날 가족과 처음으로 캠핑을 떠났다. 숯불을 피우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던 순간 문자메시지를 읽은 경민씨는 이후 ‘멘붕’(멘털 붕괴)이었다.
가족에게는 아무 내색도 할 수 없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온 경민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술 한잔 했으니 일찍 자려네”라며 방으로 곧장 들어갔다. 때마침 일흔이 다 된 둘째 누나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동생, 어찌 이런 일이 있나. 잘되겠지.” 누나와 전화하던 경민씨는 그제야 소리 내 울었다.
12월30일 새벽 5시쯤 눈을 뜬 경민씨는 옷을 챙겨 입었다.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는 “날이 춥다”며 목티에, 짧은 패딩과 긴 패딩을 겹겹이 껴입혔다. 쌍용차 정문 앞에 있는 쌍용차지부 카페 ‘차차’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7시였다. 차 운전석에 앉아 카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눈앞에 쌍용차 정문이 보였다. 7월1일 재입사해 근로계약서를 쓰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즐거웠다. 무급휴직 동안 골프장에서 일하다 왼쪽 종아리를 다쳐도 곧 복직할 테니 조금만 참고 일하자며 버텼다. 경민씨는 아픈 줄도 모르고 일한 그 순간이 괜히 후회됐다.
오전 10시쯤 복직 예정자 22명이 쌍용차 정문 앞에 세워둔 버스에 올라탔다. 덕수궁 대한문으로 가던 버스는 도착 직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를 들렀다.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마방 운영 등을 비판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문중원 기수의 빈소였다. 시민분향소 앞에서 복직 예정자들은 고 문중원 기수의 넋을 위로했다. 해고 이후 10년 동안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30명을 잃은 이들이었다.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김현진(47)씨는 기도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 끊는 비극이 더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어쩌다가, 어쩔 수 없이, 비극이 일어나더라도 타인의 아픔을 내 고통처럼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현진씨는 바랐다.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앞두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싸라기눈이 됐다가 굵은 빗방울로 바뀌었다. 기자회견을 기다리던 22명은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기자회견 때 마이크를 잡은 김문영(45)씨는 울부짖었다. 딸에게 또다시 약속을 못 지키는 아빠가 됐다고. 문영씨는 분하고 억울했다. “약속을 깨는 쌍용차”와 자신이 똑같아지는 기분이었다.
첫째 딸은 문영씨가 해고된 2009년에 태어났다. 해고 뒤 7년 동안 컨테이너 운송 일을 하느라 바빠 제대로 정을 쏟지도 못했다. 딸은 4년 전 강원도 강릉의 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엄마와 아빠, 동생과 함께 모래놀이를 하던 몇 안 되는 기억을 이따금 꺼내 추억했다. 문영씨는 딸에게 약속했다. 아빠가 원래 다니던 자동차 만드는 회사에 다시 다니게 됐으니까 앞으로 자주 놀러 다니자고. 2019년 마지막 주말에는 4년 전 바닷가에 다시 가 모래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문영씨는 모래사장 대신 대한문 앞에 섰다.
“지부장이 이러면 안 되는데….” 문영씨 말에 김득중 쌍용차지부장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뒷줄에 서 있던 경철씨도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2018년 9월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 시설물과 펼침막을 자진 철거한 날, 복직 예정자들은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 자리에 경철씨도 있었다. 당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은 또 다른 해고노동자들에게 “보이지 않던 희망”을 보여줬다.
경철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시민분향소를 자진 철거할 때만 해도 “10년 만에 터널을 빠져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터널은 다시 막혔고, 하늘도 무너졌다. 처가가 있던 경기도 안산에서 살다가 평택으로 다시 이사 온 뒤 1월2일만 기다렸다. 평일에는 공사장에서 막노동하고 주말에는 학교에서 축구 지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2월20일 평택으로 이사 와 짐을 풀던 경철씨는 쌍용차도,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쌍용차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동료들의 모습은 부럽고도 야속했다. 버스를 타고 평택으로 돌아온 복직 예정자들은 한숨 돌리자마자 곧장 쌍용차 정문으로 향했다. 오후 3시30분이면 오전에 출근한 동료들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이들보다 앞서 복직한 동료들도 있었지만, 해고 전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있었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정문 밖에 선 이들의 얼굴은 조금은 긴장되고, 어색했다. 재영씨는 카페 벽에 세워둔 손팻말을 들고 왔다. 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10년 만에 공장 복귀, 기한 없는 휴직 연장, 사회적 합의 기만!”
해고 10년을 포함하면 재영씨는 이제 정년퇴직이 2년밖에 안 남았다. 아침에 출근해 현장에서 일하다 짬 나면 잠깐 쉬다가 보람차게 일하고 퇴근하는 하루하루.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 일상이 재영씨에게는 10년 동안 단 하루도 없었다. 쌍용차는 무기한 휴직 연장 대신 급여와 상여 70%를 지급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을 더 바랐다. “돈보다는 업무 복귀”였다.
해고 전까지 함께 일한 동료들이 재영씨를 알아봤다. “건강하시죠.” “얼굴이 야윈 것 같아요.” “흰머리가 많아지셨네요.” 재영씨는 의연하게 말했다. “오랜만이다. 곧 보자.”
10년 세월 인정받고 싶어12월31일 새벽. 카페 차차에 세 남자가 남아 있었다. 경기도 양주에 사는 이호진(48)씨와 평택에 사는 형민씨와 문영씨였다. 호진씨가 카페에 딸린 단칸방에서 잠을 잔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호진씨는 분했다. 7월1일 재입사하려고 정규직 일자리도 그만두었다. “원래 일하던 데”로 돌아가 “떳떳하게” 일하고 싶었다.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해고된 호진씨는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을 인정받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무기한 휴직 연장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양주에서 차를 끌고 한달음에 평택으로 달려왔다.
12월29일 와락에 다녀온 호진씨는 아내에게 “12월31일까지 일정이 있어서 평택에서 하룻밤 자겠다”고 했다. 아내는 물었다. “새해에도 안 올 거야?” 아내의 말이 계속 밟힌 그는 하루 치의 수건 한 장만 챙겨서 왔다.
“(카페 차차에서) 혼자 자겠다”는 호진씨 말에 평택에 사는 형민씨도, 문영씨도 카페에 남았다. 평택의 한 포장마차에서 밤늦게까지 소주를 마신 세 사람은 술기운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새벽 4시까지 뒤척거리던 형민씨는 차가운 책상에 몸을 눕혔다. 방에 누운 호진씨 역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회사에서 지급한다는 임금의 70%를 거칠게 계산해도 100만원대 수준이었다. ‘월세살이’를 하는 호진씨는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아침이 밝아오자 카페로 복직 예정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카페 책상 위에는 3500장의 쌍용차지부 소식지가 있었다. 12월31일은 마지막 근무일이어서 퇴근시간이 앞당겨졌다. 오후 3시30분에 퇴근하던 오전 출근조는 1시30분에 퇴근할 예정이었다.
복직 예정자들은 서둘러 지부 소식지를 챙겼다. 소식지의 큰 제목은 ‘정부와 맺은 합의조차 파기, 이젠 누가 사 측 말 믿겠나’였다.
정문, 남문, 후문, 기숙사, 주차장으로 조를 나눠 흩어졌다. 복직자들은 펼침막을 챙겨 정문으로 들어갔다. 정문 안쪽으로 들어간 복직자가 마이크를 들고 말하기 시작하자, 회사 쪽 관계자들이 나와 마이크 사용을 저지했다. 현직 노동자로 구성된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은 복직자들을 등진 채 담화문만 배포했다.
복직 예정자들보다 앞서 공장에 복직한 김선동 현장위원회 의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우리도 쌍용차 노동자고, 우리도 동료다!” 복직 예정자들이 소속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를 배제한 채 쌍용차와 무기한 휴직 연장에 합의한 쌍용차노조가 이날 배포한 담화문에는 “경영 위기와 함께 2020년 생산량 축소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문제점과 총고용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유급휴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드린다”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오전에 출근한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뒤 정문 안에서 구호를 외치던 복직자들은 정문 밖에서 소식지를 돌리던 복직 예정자들에게 기념사진이라도 다 같이 찍자고 했다. 하지만 정문에 서 있던 경비원들은 복직 예정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과 사번을 방명록에 쓰고서야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복직 예정자들이 정문 안쪽으로 들어간 것은 해고 이후 처음이었다. 정문을 통과하던 재영씨는 생각했다. ‘문 하나 통과하는 데 1분도 안 걸리는데, 이게 10년이 걸렸구나.’
50대 초반의 김동현씨는 끝내 정문 밖에 있었다. “치사해서 안 들어간다” “말이 복직이지 무슨 복직이냐” 동현씨는 혼잣말을 했다. 동현씨는 정문 밖에 홀로 남아 소식지를 정리했다. 그에게는 정문이 분단선 같았다. 잠깐 들어가더라도 정식으로 출입카드를 받아 “당당하게” 쌍용차에 들어가고 싶었다. 복직이라고 하지만 출입카드도 없어 경비원이 출입을 막는 신세였다. 쌍용차는 “기타 처우는 재직자와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했지만 이들에겐 사실상 “말뿐인 복직”의 연속이었다.
1월7일 쌍용차로 출근한다복직 예정자들이 ‘1월6일 정상 출근’을 예고한 12월30일, 쌍용차는 6일 휴업을 결정했다. 이에 복직 예정자 46명은 쌍용차의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와는 상관없이, 노·노·사·정 합의에 따라 2020년 첫 근무일인 1월7일 ‘정상 출근’을 하기로 했다. 경민씨는 이날 딸이 떠준 흰 목도리를 하고 정문에 설 생각이다. “아빠 회사 들어가는 날 따뜻하게 들어가라고 목도리를 짜는데, 벌써 팔 길이만큼 짰어.” 독학으로 목도리를 따며 솜씨를 자랑하던 딸은 경민씨의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 이후 혼자 영화를 보고 왔다. “울고 싶은데 울 데가 없어” 영화관에 갔다 왔다고 했다.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계속 차오른다는 경민씨는 딸이 떠준 흰 목도리를 두르고 걸어가는 출근길만 생각하기로 했다.
평택=글 조윤영 기자 jyy@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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