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가해국인 한국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가해국인 정부를 대신해 시민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조사할 수 있는 입법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첫발을 뗐다. 초안 형태이나마 가칭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피해 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이하 베트남전 피해조사법) 제정안이 나왔다. 참전 군인의 명예와 국민 정서, 정부 차원에서 갖는 외교적 부담 등으로 언제 발의될지 국회 통과가 가능할지 모두 안갯속이지만, 미뤄왔던 숙제를 푸는 일이다.
제정안 불구, 발의는 안갯속11월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베트남전 피해조사법 제정 세미나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티에프(TF)에서 팀장을 맡은 김남주 변호사가 입을 뗐다.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사건은 외국에서 벌어졌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1단계 조사로, 한국 정부 단독으로 기초 조사를 진행하는 특별법 입법은 현실적일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 20주년 기념사업으로 열린 ‘비욘드 베트남’ 2차 토론회 성격이었다. 민변은 이날 베트남전 피해조사법 초안을 처음 공개했다. 법률안 초안은 사건 진상, 피해자의 피해 상황, 사건 발생 원인, 사건 관계자와 한국 정부의 책임이 있는 경우 그에 관한 조처 등을 담은 종합 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한국 정부 외면할 수 없어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사건은 1999년 제256호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기사 보도 이후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으로 지난 20년 동안 공론화됐는데도 정부 차원의 공식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하지만 2018년 4월 한국 시민단체 53개가 개최한 민간 법정인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재판부는 한국 정부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진상 조사를 명했다. 이후 베트남 피해자 103명이 4월 청와대에 한국 정부의 조사와 책임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한국 정부가 더는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사건에 대한 조처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민변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등 기존 진상규명을 위한 법률을 고려해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사건을 조사할 법적 근거를 제시했다. 피해조사법 초안은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 군대의 작전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 ‘피해자’는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 작전으로 살해·사체훼손·행방불명·상해·성폭행·구금·가혹행위 등을 당한 민간인과 그 배우자 등으로 정했다. 살해 말고도 작전 중 민간인에 대한 군인들의 다양한 형태의 폭력까지 조사한다는 취지다.
훗날 단계적인 조사를 고려해 종합보고서에는 피해자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조처, 조사 결과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과 그 피해자와 희생자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조처,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조처, 베트남전 참전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위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조처 등을 담게 했다.
이번 세미나를 공동 주최한 김종대 의원(정의당)은 “베트남전 피해 사건은 국회에서 논의된 적도 없고 관련된 법안이 발의된 적도 없다. 아직 언제 발의할지 정하지 못했지만 이번 법률안 초안은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피해 사건을 진상 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 조윤영 기자 jy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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