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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밖에 모르는 학자

설렁썰렁
등록 2019-09-28 15:43 수정 2020-05-03 04:29
강창광 기자

강창광 기자

“<font color="#008ABD">더구나 학문의 영역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고 이성의 영역입니다.</font> 이번 강의에서도 세간에서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식민지 시대 상황이 사실은 객관적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을 최신 연구 결과인 이영훈 교수 등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면서 직선적으로 그 내용을 설명했습니다.”(9월23일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장문)

“Q.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자발성이 있었다는 말인가. A. 그렇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만두기 더 어려웠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자발성이 하나도 없이 완전히 당하기만 한 거냐?’ (…) <font color="#008ABD">이는 나의 양심과 학문의 자유다.</font>”(9월25일 류석춘 교수 인터뷰)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류석춘 교수가 9월19일 발전사회학 수업 시간에 “위안부는 매춘”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과 동문들이 먼저 류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고 시민사회의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류 교수는 “잘못한 게 있어야 사과하는데 나는 사과할 일이 없다. 학교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9월25일 인터뷰)고 거듭 ‘양심과 학문의 자유’ ‘이성적 판단’ 등을 앞세우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고 있다.

<font color="#008ABD">그가 말하는 양심과 학문의 자유는 무엇일까? 공개된 그의 발언 가운데 일부만 뜯어봐도 ‘학문’보다는 극우 성향의 정치인, 언론인, 커뮤니티에서 그동안 줄기차게 나온 주장과 닿아 있다. </font>

그는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통을 무릅쓰고 한 증언에 대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를 근거로 “자의 반, 타의 반이다. 생활이 어려워서” “지금도 매춘 들어가는 과정이 딱 그렇다”라고 일축했다. 사료(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의 중요성,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맥락, 성매매의 사회구조적 맥락 등 학문이 따져야 할 중요한 질문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옛 이름) 핵심 간부들이 통진당(통합진보당) 간부들” “정대협이 할머니들을 모아다 교육하고 있다”라고 한 발언은 그동안 극우 성향 인사들이 끊임없이 재생산해온 내용이다. 비슷한 내용을 주장해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 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만원씨에게 대법원은 9월9일 유죄를 확정한 바 있다.

교수직 해임 여부를 떠나 류 교수가 ‘학문의 자유’를 내세운다면 앞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와 학자적 의견을 차분히 펼쳐야 할 것이다. 류 교수가 평소 ‘최애’(최고로 애정하는)하는 것으로 보이는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어그로’(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거슬리는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를 끌기 위해 이번 논란을 빚은 것은 아니길 빈다. 그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2017년 7월28일 당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선점하는 일은 당이 할 일이 아니라 정치평론가들이 할 일”이라고 규정한 뒤 “일베 하세요. 일베 많이 하시고”라고 말해 입길에 올랐다. 당시 “내가 아는 뉴라이트만 해도 ‘일베’ 하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는 앞서 2015년에 유튜브 방송에서 “<font color="#008ABD">요새는 일베를 보고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칭찬을 해주지 못할망정 왜 비난을 해야 되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font>”라고도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font color="#A6CA37">블라블라</font>


프락치


박종식 기자

박종식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이야기다. 그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을 ‘학교’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댓글을 달았고, 보수언론 독자란 투고도 했다. 짭짤한 꿀알바였다. ‘학교’는 건당으로 계산해 20대에겐 2만5천원, 30대에겐 5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숙제가 늘어났다. 댓글에는 게시판 베스트글과 1천 클릭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어떤 날은 넘겨받은 소형 카메라로 집회 현장을 누빈 다음 녹화 기록을 제출했다. 도를 넘는 강요에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갈등이 생겨났다. 애국보수를 자임해온 삶을 접었다. 몇 년이 흘러 그는 을 찾았다. 국가에 이용당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고백했고, 국정원 민간인 댓글조직 ‘알파팀’의 실체는 그렇게 드러났다(2017년 4월 제1158호 ‘국정원, 우익청년 매수해 여론조작 나섰다’ 등). 그로부터 한 달 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에 사활을 걸었다. 국정원이 첫 번째 대상으로 꼽혔다. 국정원 개혁은 해체 수준이라는 말이 안팎으로 돌았다. 2년여가 흘렀다.
국정원이 다시 등장했다. 9월24일 또 다른 양심고백이 터져나오면서다. 기자회견장에서 ‘제보자’ 명패 뒤에 앉은 ㄱ씨의 눈빛은 검은 마스크 때문인지 유난히 불안해 보였다. 자신을 “국정원의 프락치(정보원)”라고 했다. 그는 생활고를 겪었고, 국정원은 이를 이용했다. “프락치 일을 하면서 내 삶은 무너졌다”며 울먹였다. “끝날 줄 알았던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이번 정부에서도 계속됐다”고 했다. 국정원 요원은 ㄱ씨에게 “김대중, 노무현 때도 우리는 할 일을 했다. 그러니 지금 하는 (조작) 사건은 기회가 될 때 터뜨릴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ㄱ씨의 아들 돌잔치 때 초대 인물까지 정해주었고, ㄱ씨는 돌잔치 내내 아들이 아닌 녹음기를 돌봐야 했다. 국정원은 ㄱ씨에게 서울에 방을 구하게 하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그를 감시했다. 그 장소로 ㄱ씨는 국정원이 궁금해하는 선후배를 불러 근황을 물었다. 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집요한 공작이었다. 국정원은 국내 정보 수집이 아닌 대공수사(내사)여서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기자회견에서는 다른 프락치 활동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국정원 개혁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얘기하면 너무 과한 걸까?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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