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구 눈썹 미용 문신은 정치인도 하지 않았나요?”
눈썹을 한올 한올 덧그려 선명하고 깔끔해진 김동욱(43)씨가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되물었다. 서울 강남구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김씨는 8월19일 반영구 눈썹 미용 문신을 재시술하러 서울 양천구의 한 타투숍을 찾았다. “2015년 서울로 직장을 옮겨보니 30대 남성 직장 후배들이 반영구 눈썹 미용 문신 시술을 받더라고요. 문신이 이미 대중화돼, 의사가 아닌 일반인이 시술하는 문신이 불법인지 몰랐어요. 법적 규제가 현실을 못 따라가는 건 아닐까요.” 김씨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미장원에서 하면 불법, 성형외과에서 하면 합법?‘홍그리버드’. 김씨의 기억처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1년 한나라당 대표일 때 치켜올라간 짙은 반영구 눈썹 미용 문신을 하고 공개 석상에 나타난 뒤 홍 대표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같은 해 인터넷 정치 풍자 토크쇼에서 “현행법상 불법 아니냐”는 한 패널의 질문에, 홍 대표가 “미장원에서 하면 불법이고 성형외과 의사에게 하면 합법”이라며 설전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문신 시술은 긴 시간 암묵적으로 해왔지만 사실 현행법상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눈썹·아이라인·입술 등에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반영구 문신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팔다리 등 몸에 시술하는 영구 문신 역시 불법행위다.
현행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와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부정의료업자의 처벌)에 근거해, 문신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는 단속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문신사 500여 명이 9월2일 헌법재판소에 국회가 마땅히 제정해야 할 법률을 제정하지 않아 의무를 방기했다며 관련 법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한 이유였다. 1988년 이후 여섯 번째 헌법소원이었다. 허가제 등으로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의 문신 시술을 법제화하는 대신, 주기적으로 위생 교육을 받고 법으로 정한 위생 조건을 어길 때는 강력한 처벌을 받겠다는 취지였다. 법제화를 촉구하며 또다시 거리로 나온 문신사의 ‘오전육기’ 헌법소원이 이번엔 받아들여질까.
8월13일 오후 2시께 서울 강서구에 있는 2층짜리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전당포였다던 가게의 쇠창살 문 옆에는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붙어 있었다. 쇠창살 문을 밀고 계단에 첫발을 내딛자, 초록색 갈기를 날리며 하늘로 오르는 용 그림이 뒤덮인 벽이 보였다. 용은 동양 문신을 대표하는 상상의 동물로 알려졌다. 용머리가 향한 2층 가게는 40대 문신사 김원규씨가 운영하는 타투숍이었다. 김씨의 팔다리에는 그가 새긴 잉어, 만화 캐릭터, 용, 한자 登龍門(등용문) 등이 가득했다. 그림 그리기와 채색 등을 연습하려고 몸에 직접 새긴 것이었다.
김씨의 호는 ‘JR’이다. 한국을 오가며 패션사업을 벌이던 중국인 손님이 지어준 ‘조령’(彫靈)이라는 호에서 머리글자를 땄다. ‘영혼을 새기다’라는 뜻이다. 사람들 몸에 영혼을 새기는 김씨는 중학교 때 미술 공부를 했다. 1988년 아는 형이 그에게 바늘을 내밀며 백과사전의 사자 그림을 팔에 새겨달라고 한 게 첫 타투 시술이었다. 2002년 김씨는 팔에 용 문신을 하러 서울 중랑구에 있는 타투숍을 갔다. 당시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유일한 타투숍이었다. “그날 손님이 많아 문신 시술은 못 받았어요. 대신 많은 사람이 문신 시술을 받는다는 걸 알았죠.” 그 뒤 김씨는 일본의 1세대 문신사가 쓴 책들을 보며 문신을 독학했다.
친구들과 가족은 ‘문신사가 되겠다’는 김씨를 말렸다. 김씨의 직업을 인정해준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다. 경기도 안산,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 등으로 타투숍을 옮긴 김씨는 지금까지 세 차례 단속을 당했다. 의료법 위반,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의 혐의였다. 2010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22살 남성 손님의 어머니가, 2012년 대학에 다니던 24살 남성 손님의 아버지가 김씨를 각각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적게는 80만원, 많게는 200만원의 벌금을 냈다. 2003년 서울 강서구의 한 건물 1층에 타투숍을 차렸다가 길 가던 나이 든 여성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며 근거 없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타투에 대한 사회 인식이 달라졌다. 2013년 20살 대학생 여성이 패션을 상징하는 옷걸이 모양의 문신을 손목에 새겨달라며 김씨의 타투숍에 왔다. 김씨는 4년 뒤 패션 디자이너가 된 손님의 모습을 인터넷 기사로 보았다. 기사 사진 속 여성의 손목에 김씨가 새긴 문신이 있었다. 같은 해 피부에 사마귀가 돋은 20대 여성이 친구 3명과 함께 타투숍을 찾아왔다. 쇄골에 우정을 상징하는 글귀를 친구들과 새긴 여성은 같은 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다들 내 피부를 이상하게 봤다. (중략) 문신사는 편견 없이 봐줘 고마웠다”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문신이 누군가에게는 꿈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신 시술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이유도 다양해졌다. 최근 ‘타투 해주는 경찰관’이 꿈이라던 한 경찰관은 가슴에 문신 시술을 받은 뒤 “합법화가 되면 동료들에게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타투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미 개, 고양이, 꽃 등을 몸에 새기는 감성적인 타투는 ‘코리안 타투’라는 한 장르로 북미 등 세계에 알려졌다.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한국 문신사들의 실력을 세계가 인정한 셈이다. 김씨는 말했다. “미성년자 시술, 감염과 위생 등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합법화 이후 자격 조건과 시술 연령 제한 등 체계적인 제도를 마련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봐요.”
긴 시간 문신 시술이 불법행위로 단속받으면서 타투숍은 음지 영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신사들은 직업의 자유를 잃은 채 자기 직업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다. 김은서(41·여)씨도 ‘반영구 전문 미용 문신사’라는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부정해야 했다. 서울 양천구 한 건물에 내걸린 타투숍 간판에는 반영구 문신 대신 속눈썹·왁싱·네일아트만 쓰여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은서씨는 도제식으로 문신 시술을 배워, 2012년 서울 양천구의 다른 건물 1층에 첫 타투숍을 열었다. 1층 가게에선 네일아트와 속눈썹 연장 시술만 했다. 반영구 문신 시술은 남의 눈을 피해 같은 건물 오피스텔에서 비공식적으로 했다. 불법성 때문이었다.
불법인 문신 시술을 하다가 단속됐다는 보도를 볼 때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은서씨에게 휴대전화로 인터넷 기사를 보내며 걱정했다. “제 직업을 자유롭게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항상 걱정을 끼치는 일이었죠.” 도제식으로 반영구 전문 미용 문신사를 양성하던 은서씨는 2016년 그 일을 그만두었다. 제자들이 “타투숍을 차리면 어떻게 홍보해요?”라고 물으면 “일단 지인을 통해 해라. 반영구 문신만 하지 말고 네일아트나 속눈썹 미용도 같이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기술 교육을 포기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문신 시술의 교육·훈련도 체계가 없었다. 은서씨는 안전·위생 교육을 받으러 자발적으로 찾아나섰다. 문신 시술을 합법화하면서 위생과 타투 기술 교육을 체계화한 나라들과는 대조적이었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선 별도로 규정된 타투이스트(문신사) 면허를 취득하고 건강보건 관련 법률에서 규정하는 작업장의 위생 조건을 충족하게 돼 있다. 2016년 은서씨가 미국의 한 문신협회가 운영한 한국지사에서 교육을 이수한 까닭이었다. “내 직업을 이렇게라도 인정받고 싶었어요. 부끄럽지만 그때 처음 체계적인 위생 교육을 받았죠. 교육 전에도 바늘 등 직접 신체에 가하는 도구는 일회용으로 쓰고 피부에 닿는 도구는 소독해왔지만, 교육받고 나서 살균과 멸균의 차이를 알게 됐어요.”
2017년부터 은서씨가 속한 대한문신사중앙회는 보건학 박사를 초청해 다달이 전국을 돌며 위생 교육을 한다. 한 차례에 평균 20여 명이 참여한다고 은서씨는 말했다. “반영구 문신은 이미 대중화했어요. 문신 시술을 법제화해도 수요는 급격히 늘지 않을 거예요. 다만 소비자가 더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시술을 받게, 문신사들이 주기적이고 의무적인 관리·감독을 받을 수 있죠. 단순히 ‘어디가 잘한다더라’라는 입소문으로 암암리에 문신 시술을 받는 게 아니라, 체계적인 기술·위생 교육을 받은 타투숍을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받는 거죠.”
김원규씨와 김은서씨를 비롯한 문신사 500여 명은 9월2일 여섯 번째 헌법소원을 제기하러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앞서 2017년 12월 문신사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심사 중이라는 이유로 1년 넘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는 의료법 조항들에 대해 1992년 최초로 합헌 결정을 한 뒤, “‘의료행위’는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일반 공중위생에 밀접하고 중대한 관계가 있는 행위로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 관한 행위는 물론, 의학상의 기능과 지식을 가진 의료인이 하지 않으면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는 일체의 행위”라는 이유로 내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사이 고용노동부는 2015년 신직업 규제완화 고용영향평가 연구를 통해 신직업으로 타투이스트를 선정하는 등 모순된 상황도 벌어졌다. 일부 미용학원에서, 또는 도제식으로 교육·훈련을 할 수는 있어도, 정작 문신 시술 연습이나 영리 목적의 문신 시술은 불법행위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자 등록 업종도 없어 대부분의 문신사는 미등록 업체로 타투숍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 신직업 규제완화 고용영향평가 연구를 보면 타투와 반영구 문신 업체의 91.7%가 미등록 업체로 운영 중이라고 추정했다. 그나마 일부 네일아트 또는 속눈썹 미용을 병행하는 반영구 문신사들은 미용업으로 사업체 등록을 하고 있다.
불법이라 실제 문신 시술을 받은 사람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다. 관련 협회들은 문신 시술자가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 동대문시장 원단 업체에서 일하는 최재현(39)씨는 2018년 7월 어깨에 생긴 손바닥만 한 크기의 흉터 위에 호랑이 그림 문신 시술을 받았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빙초산을 갖고 놀다가 화상을 입은 뒤 남은 흉터였다. 한여름에도 흉터를 가리려고 긴소매를 입었는데, 문신 시술을 받고서 자신감을 되찾아 반소매를 꺼내 입었다. 최씨는 문신 시술을 받기 전 13살, 7살 두 딸에게 문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딸들이 문신을 보고 충격받아 아빠를 무서워할까 걱정됐다. 딸들에게 자신의 팔뚝에 직접 그림을 그려보라고도 했다. 최씨는 문신으로 새길 그림을 딸들과 함께 고르면서 딸들의 거부감을 줄였다.
이후 최씨는 최근까지 문신 시술을 세 차례 더 받았다. 두 번째 문신 시술을 받으러 간 타투숍은 알고 보니 개인 살림집이었다. 불법 시술이라 타투숍에 대한 정보나 검증이 제한적이고 시설·작업·환경 등에 대한 최소 기준도 없었다. 결국 문신 시술 뒤 상처가 곪고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아, 최씨는 문신 시술을 처음 받은 타투숍에서 다른 문신을 덧그리는 재시술을 받았다. 최씨는 “짧은 시간 훈련받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싼값에 시술하는 문신사도 있어요. 법정 기준에 따라 업체 허가 여부를 정하고 수시로 위생 상태 등을 관리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한때 문신이 불량배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국내 유일의 소해금(해금을 개량한 북한 악기) 연주자 박성진(48)씨 역시 2008년 초청받은 부산의 한 피로연장에서 건달들 몸에 새긴 문신을 보고 겁먹었다. “최근 거리를 다니면 팔이나 발목 등 노출되는 부위에 문신 시술을 받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문신 시술은 그늘진 세계에 있는 사람들만 받는 줄 알았는데 인식이 바뀌더라고요.”
박씨는 문신 시술을 받기 전, 2017년 두 팔에 헤나 문신 스티커를 붙였다. 헤나 문신 스티커는 피부에 붙인 뒤 떼어내면 짧게는 일주일 동안 형태가 유지되다가 서서히 지워진다. 헤나 스티커에 사람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박씨는 문신 시술을 결심했다. 2018년 4월 왼쪽 팔에 문신 시술을 받은 뒤, 최근까지 세 차례 더 받았다. 두 번째 시술 때 박씨는 현재를 즐기자는 뜻의 라틴어 ‘Carpe diem’(카르페 디엠)을 왼쪽 팔에 새겼다. 박씨는 말했다. “연주는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무대를 서기 전까지 정신적 고통이 심해요. 공연이 끝나면 마음도 허전했죠. 그런 생활이 반복되니까 지금 이 순간을 편하게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신으로 새긴 문장은 제 직업이나 인생관과도 어울리죠. 문신도 하나의 예술적 표현이 되지 않을까요.”
조윤영 기자 jy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탄핵으로 나갔다 탄핵 앞에 다시 선 최상목…“국정 안정 최선”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윤석열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니까 끌어내”…국회 장악 지시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김건희의 종묘 무단 차담회, 국가유산청이 사과문 냈다
“이재명·우원식·한동훈부터 체포하라” 계엄의 밤 방첩사 단톡방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헌정사상 처음
국힘은 김용현 대변특위?…“공소사실은 픽션” 김 변호인단 입장문 공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키운 한덕수, 대체 왜 그랬나
조갑제 “윤석열 탄핵 사유, 박근혜의 만배…세상이 만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