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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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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파괴에 회삿돈 쓰면 배임죄

2011년 창조컨설팅 자문받아 노조 파괴한 유성기업 회장
검찰의 소극적 수사 탓, 2019년 9월에야 배임 혐의로 또 법정 구속
등록 2019-09-25 11:58 수정 2020-05-07 10:05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지난 1월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늦장 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지난 1월4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늦장 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회사 경영진이 불법행위에 회삿돈을 쓰면 처벌받는다”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도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 불법행위가 설사 회사를 위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형법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재산상 이득을 취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업무상 배임’으로 규정해 처벌한다.

당연한 논리, 당연하지 않은 현실

이런 당연한 논리에 따라, 9월4일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재판장 원용일)는 ‘노조 파괴’ 자문을 받기 위해 창조컨설팅에 회삿돈 13억여원을 건네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에게 징역 1년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사건 발생 8년 만이다. 유 회장은 노조 파괴라는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뒤, 이미 만기 출소했다. 이번에 부당노동행위 혐의보다 더 무거운 형량으로 두 번째 실형을 살게 됐다. 법원은 불법행위인 노조 파괴를 위한 자문료를 회삿돈으로 지급한 것을 ‘업무상 배임’으로 봤다.

재판부는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실관계인 “기존 노동조합(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약화시키고, 회사에 우호적인 제2노조를 설립해 교섭 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세력을 확장하게 한다는 창조컨설팅의 전략을 인지하고,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가로 컨설팅 비용을 지급했다”고 재확인했다.

유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자문 용역을 실제로 받았기 때문에 유성기업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문인 만큼 유성기업에 손해를 끼칠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노조의 조직·운영에 대한 지배·개입이라는 불법적인 목적을 위해 회사 자금으로 컨설팅 비용을 지급하고 자문 용역을 받은 것은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로서, 회사를 위한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를 위해 대가를 지급하는 행위는 회사와의 신임 관계를 저버리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회사 경영진이 당연히 해서는 안 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해, 제3자가 이득을 얻게 한 고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자신이 부당노동행위로 수사·재판을 받게 되자, 회삿돈으로 변호사 선임료 1억5400만원까지 냈다. 법원은 이 행위도 업무상 횡령죄로 인정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는 “부당노동행위는 범죄고, 범죄를 목적으로 한 계약은 무효이기 때문에 배임으로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부당노동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 낮기 때문에 새로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부당노동행위 엄벌 위해 중형 선고

재판부는 유 회장이 이미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살았고, 71살 고령임에도 또 실형을 선고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회사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해 조직적·계획적으로 불법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배임 행위를 한 것으로 피해액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회사의 최종결정권자이자 책임자로서 죄책이 무겁다.”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노동법)는 “부당노동행위에 엄한 처벌을 내리려 배임 혐의에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영진이 회사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부당노동행위를 하면서도, 책임과 부담은 회사가 지게 하는 행위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파괴 자문료를 회삿돈으로 준 행위가 배임으로 인정됨에 따라, 노조 파괴 범행 행태가 비슷했던 기업 경영진에도 추가 기소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성기업과 똑같이 회삿돈으로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대표이사가 실형을 선고받은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는 8월 말 노조가 배임 혐의로 대표이사를 추가 고발했다. 1심 재판 중인 삼성전자서비스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도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는 송아무개 전 고용노동부 장관 보좌관과 ‘부당노동행위 자문 계약’을 맺고 수억원의 회삿돈을 지급했지만 배임 혐의 기소는 없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는 “고발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유 회장이 사건 발생 뒤 배임 혐의로만 다시 재판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이 부당노동행위 수사에 소극적인 탓이 크다. 검찰은 불법행위에 회삿돈을 썼다면 당연히 횡령·배임 혐의로도 함께 기소해왔다. 불법행위 처벌은 당연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은 따로 처벌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임·횡령은 액수에 따라 형량이 가중되기도 한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수사받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순실씨에게 딸 정유라씨가 탈 말을 회삿돈으로 냈기 때문에 뇌물 공여뿐만 아니라 횡령 혐의로도 기소됐다. 2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이 부회장은 8월22일 대법원이 횡령액을 높여 판결함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검찰은 2014~2015년 유 회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하면서, 배임 혐의는 빼고 기소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를 대리하는 김상은 변호사는 “검찰은 나중에 실형이 확정된 유성기업 노조 파괴에 대해서, 최초에 불기소 처분했다. 법원이 노조가 낸 재정 신청을 받아들여 기소된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은 아예 이 사건을 묻으려는 최초의 입장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회장의 배임 혐의 수사는 검찰 스스로 인지한 것이 아니라 2018년 11월 노조가 고발한 뒤에야 이뤄졌다. 고발부터 1심 선고까지 1년이 채 안 걸린 간단한 사건을 사건 발생 8년째 손 놓고 있었던 셈이다. 금속노조 발레오지회를 대리하는 김태욱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검찰이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한 사건도 제대로 수사를 안 하는데, 범죄 혐의를 추가로 인지해 수사할 리가 있겠냐”며 검찰의 태도를 비판했다.

미온적 수사 뒤 노동자 징계만 100여 건

검찰이 칼을 써야 할 때 제대로 쓰지 않은 피해, 즉 신속하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은 피해는 오롯이 노동자들이 당했다. 검찰이 2011년 벌어진 노조 파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음에 따라, 2013년 이후 금속노조 조합원 징계가 100여 건에 이르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법원에서 ‘부당 징계’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김성민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지회 사무장은 “회사 쪽은 재판이 있을 때마다 ‘설마 구속되겠냐’는 태도를 보이며 교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 2012년 검찰이 제대로 수사만 했어도, 또 2015년에 부당노동행위와 함께 배임으로 기소돼 형량이 늘어날 것을 회사가 예측만 했다면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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