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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로 뭉친 검찰은 개혁이 가능한가

개운치 않은 뒷맛 남긴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선의의 거짓말’ 논란
등록 2019-07-13 13:51 수정 2020-05-03 04:29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7월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7월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거짓말 논란’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그의 ‘강골 검사’ 기질에 성원을 보낸 이들도 ‘후배 검사를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해명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들의 끈끈한 의리는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렀을까. 의리로 맺어진 검찰총장과 검사장의 관계는 문제가 없을까. 의리를 빙자한 부당한 수사 개입이 정당화되는 건 아닐까. 의리로 똘똘 뭉친 검찰 수뇌부에서 과연 검찰 개혁은 가능할까. 7월8일 열린 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이런 의문을 남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내가 그때 윤 검사를 보호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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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2012년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받던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준 의혹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윤 전 세무서장은 윤 후보자와 막역한 사이인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검사장)의 친형이다. 육류 수입업자에게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던 중 외국으로 도피했다가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이 사안이 쟁점이 된 이유는 윤 후보자가 당시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개입했는지를 따지기 위해서였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윤 후보자가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면 검찰 수사에도 개입하지 않았겠냐고 의심했다. 따라서 윤 후보자가 ‘윤 전 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준 사람은 그의 동생인 윤대진 검사’라고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했다면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 했던 거짓말이 화근이 됐다. 2012년 12월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이던 윤 후보자는 한아무개 기자(현 소속)에게 자신이 변호사를 소개해준 것처럼 말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았다. 윤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내내 버티다가 7월9일 새벽 청문회 막판에 당시 녹취록이 공개되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청문회가 끝난 뒤 한 여당 의원에게 “사실은 내가 저때 윤대진 검사를 보호하려고 저렇게 얘기했다”고 털어놨다. 몇 시간 뒤 윤대진 검찰국장도 “내가 형(윤 전 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윤 후보자의 인터뷰는 나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출입기자들에게 해명했다.

윤 후보자의 거짓말 논란에도 청와대는 그의 임명 절차를 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정 시한인 7월9일까지 여야 이견으로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자, 다음날 ‘15일까지 재송부해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는 7월15일까지 청문보고서가 오지 않아도 윤 후보자를 임명할 방침이다. 일정대로라면 윤 후보자는 문무일 검찰총장 퇴임 다음날인 7월25일 검찰총장에 취임하게 된다.

청와대는 윤 후보자의 거짓말 논란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후보자의 강직한 이미지에 상처가 나긴 했지만 검찰총장에 부적합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윤 후보자의 상처는 검찰 개혁을 완수해야 하는 청와대로선 결코 불리한 요소가 아니다. 검찰 안팎의 폭넓은 지지로 역대 가장 힘이 센 검찰총장이 될 것으로 보였던 윤 후보자의 기세가 거짓말 논란으로 한풀 꺾인 셈이다.

이로 인해 청와대가 검찰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여건은 오히려 좋아졌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법무부 관계자는 “윤 후보자의 거짓말 논란은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걸러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청와대로선 야권의 공세가 거슬리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손해 볼 게 없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현대차그룹 비자금 수사에서 존재감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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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후보자는 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사단’을 거느린 유일한 검사다. ‘윤석열 사단’이란 말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의 선배 총장들은 아무도 이름 뒤에 사단이 붙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우병우 사단’이 있었지만 그는 민정수석에 그쳤고, 힘과 위상 면에서도 비할 바가 못 된다.

윤석열 사단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 인사에서 위용을 드러냈다. 윤 후보자와 함께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과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일했던 검사들이 주축이다. 윤 후보자는 당시 문무일 총장이 제시한 인사안을 따르지 않고 직접 서울중앙지검 간부 인사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윤대진 검찰국장은 윤석열 사단의 ‘맏형’이다. 그는 윤 후보자가 “나와 친형제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이다. 평검사 때부터 ‘대윤(윤석열)-소윤(윤대진)’이라 불리며 유별난 의리를 과시했다. 이들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둘 다 늦깎이로 검사가 됐고, 수사 스타일도 비슷해 일찌감치 의기투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0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수사 때다. 당시 고양지청에 있던 윤 후보자는 현대차그룹에서 비자금을 만든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고 이를 대검에 알렸다. 검찰 수뇌부는 윤 후보자를 대검 중수부 연구관으로 인사발령 낸 뒤 수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대검 중수부에는 윤 국장이 먼저 와 있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중수부장은 박영수 국정 농단 사건 특별검사였고, 대검 수사기획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었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돼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비자금 조성의 최고 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을 구속하는 것은 정권에 큰 부담이었다. 당시 주식시장에서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부도 위기설이 퍼져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검찰 수사 때문에 부도 위기에 몰렸다는 말이 나올지도 몰랐다. 검찰 수뇌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이때 윤 후보자와 윤 국장이 나섰다. “정몽구 회장을 수사할 수 없다면 사표를 쓰겠다”며 다른 수사팀원들과 함께 검찰 수뇌부를 ‘압박’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 수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고 이미 천명한 상태였다. 검찰 수뇌부는 정몽구 회장의 구속 수사를 지시했고, 정 회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뉴스타파>는 7월8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2012년 12월 인터뷰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윤 후보자는 당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뉴스타파>는 7월8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2012년 12월 인터뷰 녹음 내용을 공개했다. 윤 후보자는 당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윤’이 아닌 ‘소윤’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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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윤과 소윤’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다. 윤 후보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문제를 놓고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빚다가 수사팀에서 쫓겨났다. 그는 대전고등검찰청 등 한직을 떠돌았다. 이때 윤 후보자를 챙겨준 이가 바로 윤 국장이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당시 다른 검사들은 윤 후보자를 만나는 것을 꺼렸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국장은 윤 후보자를 친형처럼 살뜰히 챙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사들의 끈끈한 의리는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검찰 수사 영역으로 확대되면 수사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 과거 ‘정치검찰’이라는 불명예를 안겨준 수사들은 대부분 사적인 인연으로 부당한 수사 개입이 있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수뇌부가 일선 수사에 개입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수사 검사나 부장 검사와 인연을 따졌다. 개인적 인연이 있으면 부당한 지시에 대항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예방주사’ 구실을 톡톡히 했다는 말도 나온다. 윤석열 사단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윤대진 검찰국장은 윤 후보자가 총장이 될 경우 검찰의 ‘넘버2’인 서울중앙지검장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그의 친형과 관련된 사건이 인사청문회에서 집중 거론되는 바람에 윤 후보자가 그의 인사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사단으로 구성된 인사청문회 준비팀의 허술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와 검찰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인사청문회에서 윤 후보자가 2012년 인터뷰 기사 내용을 부인하자 기사를 쓴 한아무개 기자는 청문회 준비팀 관계자에게 기사를 뒷받침하는 녹취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준비팀 관계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참다못한 기자가 녹취록 존재 사실과 통화를 원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기자, 준비팀 관계자는 “(통화하기) 싫습니다”는 답신을 보냈다. 기자는 윤 후보자에게 직접 확인하기 위해 청문회장으로 달려가 그를 만났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는 편집회의를 거쳐 녹취록 내용을 밤늦게 보도했고, 그때까지 순항했던 윤 후보자는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난 1월2일 법무부 시무식에서 윤대진 검찰국장(왼쪽)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난 1월2일 법무부 시무식에서 윤대진 검찰국장(왼쪽)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font size="4"><font color="#008ABD">청문회 준비팀의 허술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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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벌어진 일은 더욱 가관이다. 윤석열 사단의 검사들은 출입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후배(윤대진)를 보호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10일 페이스북에 “이것이 대한민국 검사들의 입장인가. 후배 검사를 감싸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도 괜찮나”라고 비판했다. 빗나간 충성이 되레 보스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윤석열 사단은 보스만 보지 말고 국민을 봐야 한다. 그래야 보스도 살고 검찰도 산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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