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5)에서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뱉은 말은 유행어가 됐다.
“기사님, 맷돌 손잡이 알아요?”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조태오는 별것 아닌 일로 귀한 시간을 낭비했다며 황당해한다.
바로 그 직전의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화물운전기사인 배 기사(정웅인)는 임금체불을 참다못해 실질적 사장인 조태오를 만나 호소한다. 그가 요구하는 체불임금은 420만원. 재벌 3세에게야 ‘어이없는’ 금액이겠지만 배 기사에게는 수백 시간을 일한 대가다. 조태오의 감정은 황당함이지만, 배 기사의 감정은 억울함이다.
이것도 누군가에겐 어이없을까김기홍(30)씨를 움직인 감정도 억울함이다. 김씨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임금 약 670만원을 못 받았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서울시 송파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했던 마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만 3년간 못 받은 연장근로수당이다. 자신이 쏟아부었던 약 700시간의 노동 그 자체다. 최저임금에 가깝게 받다보니 금액으로는 작게 환산될 뿐이다.
그래서 김씨는 누군가가 보면 ‘어이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자신이 일한 복지관의 ‘실질적 사장’이었던 자승 스님과 설정 스님을 임금체불로 고용노동청에 고소했다. 두 스님은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자 당연직으로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대표이사였다. 자승 스님은 2009년 11월부터 8년간 총무원장을 맡았고, 설정 스님은 2017년 11월부터 10개월간 총무원장을 맡았다.
김기홍씨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마천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할 때 사용했던 출퇴근 기록표를 가지고 있다. ‘2015년 1월26일: 8시18분 출근, 23시09분 퇴근’. 출퇴근 기록표에는 이런 날이 부지기수다. 사회복지사 일 자체도 많았지만 법회 참석, 연등 달기, 3천 배 철야정진, 스님 접대 준비 등 사회복지사 업무가 아닌 일도 많았다. 조계종 후원금을 내라는 강요도 받았다. 동료들과 자조 섞인 농담으로 “우리는 절 노비”라고 말하곤 했다. 김씨는 “주말에도 일했지만, 이때 일한 시간은 증거(출퇴근 기록표)가 없어 임금체불 고소 때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했다. 돈을 못 받고 일한 게 700시간을 훨씬 넘는다는 뜻이다.
조계종뿐 아니라 종교법인의 사회복지재단에서 이런 문제는 아주 많다. 앞서 은 대한불교 진각종의 진각복지재단이 산하시설 직원들에게 불교행사 참석과 후원금 납부 등을 강요했다고 지난 1월 보도(제1247호 표지이야기)한 바 있다. 사회복지사들은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이 바닥이 좁다”며 외부로 문제를 드러내기 어려워한다.
노동청은 “스님들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말만김기홍씨처럼 사회복지재단을 상대로 싸우는 사회복지사는 드물다. 그만큼 억울함이 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씨는 2018년 5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임금을 못 받았다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동부지청에 진정했다. 노동청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같은 해 7월 고소를 했다. 진정은 밀린 임금을 받게 해달라는 요구고, 고소는 사용자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해달라는 요구다. 노동청은 임금체불로 고소가 들어올 경우 두 달 안에 수사를 끝내고 그 결과를 검찰에 보내야 한다.
그런데 아홉 달째 노동청은 ‘실질적 사장’이었던 자승 스님과 설정 스님을 부르지도 못하고 있다. 대표이사였던 두 사람을 조사해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을 처벌하든지 말든지 할 수 있다. 노동청 관계자는 “지난해 두 스님에게 출석요구를 했으나 ‘동안거’(음력 10월15일부터 이듬해 1월15일까지 일정한 곳에 머물며 수도하는 것)라는 이유로 출석할 수 없다고 해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 민원 처리 기간을 연장했다. 최근 다시 출석요구를 하려고 했으나 두 스님의 소재지를 파악할 수 없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청이 스님들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해서 직접 찾아봤다. 설정 스님은 충남 예산의 수덕사 소속이다. 수덕사 누리집에는 설정 스님이 3월17일 수덕사에서 참배하는 사진이 올라와 있다. <btn>는 설정 스님이 4월16일 수덕사 산하 정혜사에서 찍은 영상을 온라인에 올려놨다. 수덕사 관계자는 에 “설정 스님이 잠깐씩 들르긴 하지만 어디 머무르는지 모르고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각종 고발 건이 얽혀 있어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소재지를 찾고 있다. 생수 ‘감로수’의 상표권 수입을 제3자에게 줬다며 조계종 종무원노조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발당했고, 충남 공주 마곡사에 들어간 국고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썼다며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로부터 사기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외에 다양한 혐의로 여기저기서 고발당한 상태다. 은 자승 스님의 개인 연락처로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고,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은정불교문화진흥원에 취재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다른 사회복지사들 체불임금 조사하면 합의하겠다”
김기홍씨는 최근 조계종 본산인 조계사 앞에서 “자승 전 총무원장 스님을 찾습니다”라고 쓴 팻말을 들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조계사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달렸는데, 김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스님들을 상대로 한 싸움이 이토록 지난해질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체불임금 670만원을 받아내는 게 아니다. 그의 청춘에서 억울하게 떼인 700시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관련자 처벌, 이를 통해 사회복지사들을 부당하게 부려먹는 사회복지재단의 적폐를 뿌리째 뽑는 것이다.
그래서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체불임금을 주겠다며 합의를 요청했을 때도 김기홍씨는 거부했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일했던 다른 사회복지사들의 노동시간을 조사해 체불임금을 주면 합의하겠다고 전달했으나, 재단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관계자는 과 주고받은 전자우편과 통화에서 “(김씨의 체불임금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은 지급할 의사가 있다”면서도 다른 사회복지사들의 체불임금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노동청의 출석요구서는 두 스님께 직접 전달되지 않고 재단으로만 송달됐고, 실질적인 책임자인 상임이사가 해결을 위해 조사에 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홍씨는 2017년 마천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의 횡령 사건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해 관장의 사직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위탁 포기 등의 결과를 이끌어낸 공로로 2018년 ‘이문옥 밝은 사회상’ 수상자로 뽑혔다. 이 상은 시민단체 ‘내부제보실천운동’이 공익제보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마천종합사회복지관은 2018년 개신교계 사회복지재단으로 넘어갔고, 김기홍씨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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