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죽은 내 친구는 ‘무연고자’가 아닙니다

장사법, ‘법적 가족’ 없으면 무연고 사망 처리
등록 2019-04-29 01:16 수정 2020-05-02 19:29
무연고자들은 죽음을 슬퍼해줄 지인이 있는데도, 혈연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애도받지 못한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무연고자들은 죽음을 슬퍼해줄 지인이 있는데도, 혈연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애도받지 못한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18년 추석 무렵 서울 관악구에 살던 김아무개(당시 48살)씨가 사망했다. 김씨는 어린 시절 보육 시설에서 자라 가족도 친척도 없었다. 목수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일감은 줄고, 지병은 악화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 보낸 문자를 보고 놀라 달려온 친구들은 시설에서 함께 자란 이들이었다. 그들도 모두 김씨, 보육원 원장의 성을 따랐다. 김씨에겐 가족이었지만 그들은 김씨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법에서 정한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씨는 무연고자 사망 처리 절차를 밟았다. 무연고자가 사망할 경우, 연고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통상 1~3개월 이 걸린다.

지자체, 규정 없어 ‘지인 인도’ 꺼려

‘법적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김씨 친구들이 김씨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것처럼, 2018년 1월 사망한 고아무개씨도 같은 이유로 무연고자 사망 처리 절차를 거쳤다.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친구들이 “십시일반해서 장례를 치르겠으니 시신을 인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청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권한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2년 전 여름 미얀마, 라오스를 거쳐 홀로 남한 땅을 밟은 탈북민 ㄱ씨는 병원에서 수술받고 퇴원한 뒤 사망했다. 탈북 과정에서 만난 다른 탈북민들이 있었지만 ㄱ씨도 법적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로 무연고자가 됐다. 무연고 사망자는 유골이 10년간 봉안된 뒤 뿌려진다. 10년 안에 통일되지 않으면 ㄱ씨 유골은 가족을 만날 수 없다. 만약 ㄱ씨가 무연고자 사망 절차를 밟지 않고 지인들이 장례를 치러 유해를 쭉 보관한다면 10년 뒤 통일됐을 때 ㄱ씨 가족에게 전달될 수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2조 16항엔 장례를 치를 권한이 있는 사람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연고자로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존속, 형제자매, 사망하기 전에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노인의료복지시설의 장 등), 이 밖에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이다.

논란이 되는 지점은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이다.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의 범위가 어디까지냐이다. 장사 업무를 관할하는 보건복지부는 해당 항목이 사실상 지인도 포함한다고 본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따금 (친구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사례 문의가 들어온다. 해당 항목에 포함되는 사람은 며느리일 수도, 조카일 수도, 동기간보다 친한 지인일 수도 있다.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나중에 연고자가 찾아올 수도 있고,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어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연고자 주검을 지인들에게 인수하기를 꺼려 무연고자 사망 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연고자 ‘화장→10년 봉안→산골’

서울시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사무국장은 “‘법상으론 무연고자의 지인들이 장례를 치르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재량권을 행사하려 하지 않는다. 또 병원에서도 주검을 지인들에게 내주지 않는다. 법을 개정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범죄에 악용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친족 살해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사망 원인 수사는 경찰 몫이고,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엔 마지막을 함께 보낸 지인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무연고자가 죽으면 대체로 장례 절차 없이 화장된다. 화장된 유골은 10년간 보관되는데, 지인들은 기일에 애도하러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유골은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10년 뒤 뿌려진다. 나눔과나눔에서 장례 자격을 확대하자는 이유도 ‘애도’ 때문이다. 무연고자가 죽으면 사회경제적 비용으로만 다루어질 뿐, 한 사람의 삶을 마감하는 데 애도할 시간과 장소는 주지 않는다. 혈연가족만 없을 뿐 죽음을 슬퍼해줄 지인이 있는데도, 법에서 ‘장례의 자격’을 협소하게 판단하면서 지인들이 애도할 권리를 빼앗고 무연고 사망자를 늘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3년 1271명에서 2017년 2010명으로 늘었다.

박 사무국장은 대안으로 일본을 예로 들었다. “동경도청 복지보건국에서 발행한 생활보호 운용 사례집을 보면 지인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사례집에선 ‘장례를 치를 부양의무자가 없어 친구 을이 장제를 하게 됐다. 을이 장제 부조를 신청했을 경우, 그 실시 책임과 보호의 필요 여부는 어떻게 다툴 것인가’라는 질문에 동경도청 복지보건국은 일본 생활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1호를 근거로 들어, ‘친구 을에게 장례 협조를 하고 실시 책임은 사망자의 보호기관인 지자체가 진다’고 설명한다. 해당 법은 장례를 행할 수 있는 경우로, ‘피보호자가 사망한 경우에 있어, 그 사람의 상제를 행하는 부양의무자가 없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가족 해체’ 현실 반영한 법 개정 필요

박 사무국장은 “과거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만든 법과 제도는 현재의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오직 장례를 혈연의 가족에게만 허락한다. 형제자매 수는 줄어들고 비혼이 늘면서 혈연 중심 가족관계가 느슨해지는데다, 1인가구가 앞으로 더 늘어날 텐데 현재 법적 한계를 그대로 안고 간다면 무연고자 사망은 더 늘어날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가구는 2017년 562만 가구였다. 2000년 222만 가구였는데, 17년 동안 약 2.5배 늘었다. 현채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28.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애도되지 못하는 죽음, 이별할 기회조차 없는 슬픔. 혈연이 없어 외로운 삶을 살았던 이들은 혈연이 없어 더 외로운 죽음을 맞게 된다.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산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알 수 있다. 애도받을 권리를 무연고자들에게도 달라.”(박진옥 사무국장)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