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제5조 1항
서울 은평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이은진(13·가명) 학생은 은평구에 있는 장애인시설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은평구청 누리집을 찾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보공개 청구에 관한 설명을 읽던 중 은진이의 눈이 멈춘 대목은 정보공개 청구 자격 부분이었다. 은평구청 누리집에는 “모든 국민에게 정보공개 청구권을 부여”한다고 명시하면서도, 두 가지 단서 조항을 두었다. “중학생 이하는 비용 부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단독으로 청구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며 친권자 등 법정대리인에 의한 청구가 가능”하고 “고교생 이상은 공개제도의 취지, 내용 등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고 비용 부담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므로 단독 청구 가능.”
중학생은 ‘모든 국민’이 아닌가은진이는 “중학생은 왜 부모님이 대신 청구해야 하나요? 중학생은 모든 국민에 해당하지 않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정보공개법에는 정보공개 청구권자를 ‘모든 국민’으로 표기할 뿐 제한 조항이 없고, 2017년 7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정보공개 청구 매뉴얼’에서도 청구 자격을 “모든 국민과 대통령령으로 정한 외국인”으로 돼 있다. 여기서 모든 국민은 “미성년자, 재외국민, 수형자를 포함”한다고 적혀 있다. 행안부의 정보공개 청구 매뉴얼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모든 국민에게 원칙적으로 공개”한다고 밝혔지만, 알 권리는 중학생 이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셈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은평구청처럼 법적 근거 없이 미성년자의 정보공개 청구권에 제한을 둔 곳은 서울동부교육지원청, 국사편찬위원회, 국립생태원, 한국공항공사, 청도군청 등이 있다. 이들 대다수의 누리집은 은평구청과 비슷한 단서 조항을 달아놓았다. 서울동부교육지원청 누리집을 보면 “미성년자에 의한 공개청구에 대하여 이 법에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미성년자는 사법상의 무능력자로서 단독으로는 완전한 법률행위가 불가능하다”며 은평구청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이상만 단독 청구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단서 조항을 쓴 지방자치단체와 기관 등에 근거를 물었지만 “그런 조항이 있는지 몰랐다”거나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은평구청과 국사편찬위는 “관련 내용을 알지 못했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고, 서울동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한 뒤 행안부에 문의 결과를 알렸다. 이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만 14살 미만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단서를 달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예찬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청구할 때 대리인의 동의서 첨부를 요구할 수는 있지만, 대리인이 청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사편찬위는 의 취재가 시작된 뒤 “내부 검토를 거쳐 해당 조항을 삭제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환경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슷한 내용의 미성년자 단서 조항을 달았다가 지난 1월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정보공개 포털 가입도 안 돼더 심각한 점은, 행안부에서 운영하는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은 만 14살 미만은 아예 가입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와 사법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의 정보공개 청구는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하는데, 만 14살 미만은 온라인 정보공개 청구가 애초에 불가능한 셈이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가 보호자의 휴대전화 인증 등을 거쳐 가입할 수 있는 것과 상반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 기술 시스템상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았다는 걸 확인할 수 없다. 14살 미만 아동은 법정대리인의 동의서를 첨부해 해당 지자체나 기관에 가서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정보공개 청구에 제한을 받는 대상은 아님에도 만 14살 미만은 온라인 정보공개라는 간편한 방법을 두고도 우편이나 팩스, 현장 방문 같은 번거로운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은진이가 정보공개 청구에 나이 제한을 둔 경상북도 청도군의 행정정보를 알고 싶다면, 청도군청에 찾아가거나 우편, 팩스로 접수시킬 수밖에 없다.
포털 사이트가 대리인 인증을 거치면 만 14살 미만도 가입을 허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행안부 관계자는 “정보공개 청구는 공개되는 정보가 본인 확인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일반적으로 공개되는 정보면 상관없지만, 공개 정보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이가 있어 네이버 같은 포털과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 알 권리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활동하는 송기호 변호사는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본인이 다니는 학교 등에 알 권리가 있는데 법률에 근거 없이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은평구청 등에서 비용 부담을 이유로 중학생은 단독 청구 불가, 고등학생은 가능이라고 표기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법 제17조 2항을 보면 공공 목적으로 청구하는 것은 비용 부담을 감면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성년자라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 금전을 지출할 권리가 있어서 미성년자가 비용을 내는 데는 아무런 법적 장애가 없다”고 밝혔다.
주민번호 삭제하라만 14살 미만의 정보공개 청구를 제한하는 근거로 삼는 개인정보보호법 제22조 6항의 내용은 “만 14살 미만의 아동의 개인정보를 처리하기 위하여 이 법에 따른 동의를 받아야 할 때에는 그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이다. 현재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쓰게 하는데 만 14살 미만 아동은 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할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가 있다며 주민등록번호를 의무적으로 쓰는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재는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려면 이름,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을 쓴 청구서를 내야 한다.
김예찬 활동가는 “정보공개 청구자에게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요구함으로써 정보공개 청구자가 특정되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며 “주민등록번호는 바꿀 수 없고, 청소년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측면에서도 주민등록번호 기입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현재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주민등록번호 기입을 삭제한 내용을 담은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학내 성폭력 등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운동을 벌여온 청소년 페미니즘 활동가 양지혜씨는 올해 성폭력 가해교사 복직률 같은 정보공개를 청구할 계획이다. 양 활동가는 “현재 가해 교사의 징계도 고발 학생들은 기사를 보고 아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학생들이 관련 정보를 얻기 열악한 상황이다. 스쿨미투가 전문 지원단체가 아닌 청소년 당사자들 중심으로 진행돼 그동안 정보공개 청구를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청구할 생각”이라며 “청소년은 당연히 미성숙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청소년에게 정보공개 청구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1천원이라도 좋습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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