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경북 포항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는 나의 반성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지난 3월20일 경북 포항 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 지진은 지열발전소에 의한 촉발지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날을 기점으로 포항지열발전소에 관한 새로운 뉴스가 쏟아졌다. 이미 알려진 사실도 있지만 대부분 ‘알 수 있었지만, 알리지 않았고, 알지 못했던’ 뉴스다.
나도 지열발전소 관련 방송을 여러 번 다루었다. 정부 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전자우편함에 들어가 ‘지열발전소’를 검색했다. 정확히 2011년 4월부터 지열발전소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2012년, 2013년 이후에도 지열발전소와 관련해 포항시 담당 공무원, 지열발전 연구 책임자, 관계자들과 인터뷰한 기록이 있었다.
나의 반성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최소한 지열발전소 아이템을 다루었다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지열발전소’ 하나만 검색했어도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가 미소지진(진도 1~3의 약한 지진)만으로 가동을 중단했다는 뉴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2017년 11월15일 그날2017년 11월15일 오후 2시께, 겨울 초입이었지만 하늘은 맑고 햇살이 따뜻했던 날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포항 북구 한 시골집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골집이 송두리째 뽑힐 정도로 양쪽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만약 거인이 있었다면 작은 집을 들고 그렇게 흔들었을 것이리라.
‘어, 이게 뭐지?’ 나는 본능적으로 집 밖으로 빠져나와 아이들이 있는 한동대학교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한동대에 있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한동대는 지열발전소 인근에 있어 진앙지와 매우 가깝다. 그래서 포항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상은 무너져 있었다. 날마다 지나다닌 건물의 유리창이 떨어져 소방차가 대기해 있었고, 전교생이 겁에 질려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몇몇 아이는 울었다. 아이들은 잇따라 도착하는 부모와 함께 집으로 갔다.
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지진으로 놀란 가슴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다음날 지진 재난 방송을 준비해야만 했다. 섭외자를 찾고 아이템을 구하면서 지진으로 흔들린 몸은 뱃멀미를 하는 것처럼 좋지 않았다.
15년의 방송작가 생활 중에 지진 재난 방송을 준비하던 그때가 가장 손 떨렸던 같다. 포항시 담당 부서, 지진 전문가, 지진 피해자들까지 섭외하면서 나와 그들은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들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다음날 생방송에 나오기로 한 포항시 담당 부서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포항시에서도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그랬겠나 싶다. 포항시를 원망할 마음은 없다. 그저 지금까지 가장 손 떨리는 섭외와 지진 방송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포항에 있는 방송사 라디오 작가로 일한다. 방송에서 지열발전소 아이템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11년 4월 무렵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포항시는 2011년 4월19일 지열발전소 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4월26일 포항시 녹색성장팀 관계자와 방송 인터뷰를 했다.
방송 내용을 보면, 포항시는 제주도와 경기도 이천시와 치열한 경쟁 끝에 포항시 성곡리가 부지로 선정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지열발전소가 독일·프랑스·영국에서 상용화 단계고, 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에서는 화산지대의 고온 지열발전소를 상용화 중인데, 우리나라에선 포항시 흥해읍 성곡리가 아시아는 물론 국내 최초로 추진한다고 알렸다. ‘비용이나 환경적 측면에서 경제적인가?’라는 질문에 포항시 담당 공무원은 “비용적 측면에서 초기 투자 비용은 높으나 5㎿(메가와트) 이상 발전이 가능할 경우 경제적이며, 환경적 측면에서는 땅을 팔 때 소음 공해가 있으나 환경적 피해는 없으며 청정에너지원으로 경제적이다”라고 답변했다.
2012년 9월 넥스지오 연구책임자를 지열발전소의 에너지 생산 방식에 대해 인터뷰했다. 그때 지열발전소의 장점과 함께 성곡리로 부지가 선정된 이유를 물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인근 주민들의 지열발전소 건립 반대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것이었다. 당시 지열발전소 주변 주민들을 중심으로 건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지만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2013년에는 국내 최초의 포항 지열발전소가 2015년 전력 생산에 들어간다는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지열발전소 준공식에 지역 국회의원, 포항시 관계자가 대거 참여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2017년 2월에는 현 포항시장이 지열발전소를 방문해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 방안을 논의한 내용이 있었다. 지열발전소는 2017년 4월 1.2MW급 실증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이제 포항 지진이 일어나기까지 채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스위스 바젤의 지열발전소는 2006년 시험운영 과정에 진도 3 이상의 미소지진이 일어나 가동을 중단했고, 2009년 지열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포항 시민들은 지열발전소에 지진 위험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지열발전소가 신재생에너지의 메카로 급부상하리라는 막연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개발 호재가 없고 철강 경기 위축으로 탈출구가 절실했던 포항시로서는 지열발전소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지난 과정을 언급하는 이유는, 지열발전소 유치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던 지방자치단체와 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진 이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곳은 없었다. 현 정부를 향한 원색적 비난과 함께 이게 왜 현 정부의 문제냐며 설전이 벌어진다. 정치적으로 지진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치적이면 좀 어떠냐”는 답변이 돌아오는 대혼란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기반성 없이 내걸리는 혐오 펼침막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포항 지진 문제에서 우리 모두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열발전소에 지진 위험이 있음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언론, 비판과 견제를 해야 할 시민사회단체가 제 역할을 못한 것에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포항시에 지열발전소를 신성장동력으로 홍보했던 지자체, 준공식에 참석해 박수를 보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 지역정치인들이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촉발지진’이라는 발표 앞에서는 책임과 반성의 태도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3월20일 정부 발표가 있은 뒤 포항 도심 곳곳에 정부를 비난하는 글귀가 쓰인 펼침막이 가득하다. 그것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꽤나 불편하다.
“포항 경제 회복을 위해 뭐라도 두가(달라)” “진실은폐, 꼼수정부, 국가배상 네 몫이다!” “포항지진 유발정부, 포항재건 책임져라” “지진 피해 보상금 돌려주께! 우리집 고쳐두가!” “주민갈등 유발정부, 포항경제 책임져라”
펼침막 동시 다발 게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런 펼침막들을 볼 때마다 불법 단속까지 피하는 저들의 실세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시민들을 선동하는 펼침막들은 지금도 봄바람에 휘청거리고 있다.
정부 조사 결과가 있기 전 지역언론에선 ‘반신반의’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정부에서 과연 포항 지진을 자연지진으로 발표할지, 아니면 유발지진으로 발표할지를 두고 추측성 기사가 많았다.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촉발지진으로 결과가 발표된 뒤 많은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를 향해 달려드는 모양새다.
현재 포항 지진과 관련한 대책위원회만도 7개가 있다. 한쪽에선 손해배상 소송 진행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또 다른 쪽에선 이런 대책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들은 단체를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친정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 가가 소송한다꼬? 마카 그거 한다꼬 그라던데, 나는 니가 이야기 안 해가 그냥 있는다.” 혼란 그 자체다. 사실상 이들 단체와 연대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 될 것이다.
지진이 일어난 2017년 11월, 두 아이는 건물 외벽이 떨어지고 자신이 앉은 자리 위로 형광등이 떨어졌다며 그때 거기 앉아 있었으면 큰일이 났을 거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진앙지와 가까운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다치지 않은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2018년 2월 새벽에 일어난 여진에 포항 시민들은 더 크게 흔들렸다. 그 여진은 진앙지가 지표면과 가까워 충격이 더 컸다. 그때 잠든 둘째 아이가 깨어나 심하게 울었다. 11월 지진 이후 휴교령이 내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게 마냥 즐거워 보였던 13살 아이는, 2월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겁에 질려 울면서 무조건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무작정 집을 나왔다. 아파트 앞 도로에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가 다녔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거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여전히 대피소 생활 중인 200명포항 지진의 피해 규모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인명 피해 118명, 재산 피해 850억원, 이재민 1800여 명. 아직도 200여 명이 대피소에서 생활한다. 우리는 지진으로 심하게 흔들렸지만,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지휘탑)가 없어 더 심하게 흔들렸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디로 대피할지 몰라 무조건 집 밖으로 뛰어나와 차를 몰았던 사람들, 갈 곳이라고는 학교 운동장뿐이었다. 지진 대피소는 내진 설계가 안 돼 더 위험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우왕좌왕했던 그 혼란의 시간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진으로 심하게 흔들렸던 포항을 다시 2017년 11월15일 이전으로 돌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지진으로 고통받은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서 일상화된 지진의 공포에서 벗어나 회복의 길로 가야 한다. 무엇보다 특별법을 만들어 지진 피해 배상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포항 시민들이 왜 지진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는지, 자연지진이 아닌 인재로 지진을 겪어야 했는지 명확한 진상 규명과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더는 어처구니없는 피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는 흔들리고 싶지 않다. 누구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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