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대체 누굴 닮아서 이러니?”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너 커서 뭐가 되려고 이래?” “걔는 학원도 안 다니고 1등 했다더라.”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어려서 부모한테 듣고 상처받았던 말, 커서 내 자녀에겐 하지 않으리라 수십 수백 번 다짐했던 말이었을 게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어느 날, 은연중에 자녀에게 내 부모가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당황스럽고 불가해한 일로 보일 테지만, 별로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진혜련 마음돌봄상담센터 소장은 2월25일 인터뷰에서 언어폭력이 대물림되는 양육 패턴을 ‘효과성’ 개념으로 설명했다.
“엄마 아들 하고 싶은데….”“가령 내가 우리 부모한테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 컸다고 쳐요. 어린시절 상처를 받긴 했지만, 어쨌든 싫은 소리를 듣는 그 순간에는 부모 말을 들었을 거 아니에요. 효과가 학습된 거죠.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 중에 단기적으로 효과적인 말이 많아요. 장기적으론 자녀의 자존감이나 부모자식 관계 등을 해치지만, 당장 말을 듣게 하기 위한 단기 목표로 자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는 거죠.”
아이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은 셀 수 없지만, 국제 구호개발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진 소장 등 전문가의 도움으로 ‘아이에게 상처 주는 100가지 말’을 추렸다.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그리다, 100가지 말상처’ 캠페인의 일환이다. 핵심 메시지는 ‘말로도 때리지 마세요.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아이는 작은 사람입니다’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 100가지를 선정한 뒤 그 이유를 설명하고 ‘대체 말’을 제시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아이들은 상처 주는 말을 들었을 때 감정을 직접 그림으로 표현했다. 7살 민호(가명)는 “이렇게 행동하면 엄마 아들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낀 슬픔을 그림으로 그렸다. 세이브더칠드런이 민호에게 슬픈 이유를 묻자,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엄마 아들 하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림은 2월28일~3월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입구 이벤트홀에서 전시된다. 세이브더칠드런 누리집에서 왜 그런 말을 쓰면 안 되는지, 대신 쓸 수 있는 말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앞으로 쓰지 않겠다’는 약속하기 캠페인에도 참여할 수 있다.
100가지 말이 똑같은 깊이로 아이들의 마음에 상흔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대체어로 바꿔서 사용할 수 있는 ‘말실수’가 있는가 하면, ‘언어폭력’이기 때문에 아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도 있다.
가령 “빨리 숙제부터 해!”라는 말은 “숙제부터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처럼 질문하는 방식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게 좋다. 바쁜 아이들의 매니저 역할까지 해야 하는 부모이기에, 조급한 마음에 숙제를 재촉할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선택과 자발성의 여지가 없는 일방적인 명령·지시·훈계일 뿐이다. 아이들의 독립심과 책임감을 기르는 데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대체어가 없는 언어폭력도 있다자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건 부모의 일차적인 의무다. “위험해, 하지 마!” 같은 말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놀이란 내적인 욕구를 발산하는 통로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놀지 못하게 했을 때 아이들은 오히려 불만과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다. 아이가 위험한 게 걱정된다면, 차라리 안전한 놀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바람직하다. 불가피하게 말로써 아이를 제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위험해, 다칠 수 있으니 다른 놀이를 하는 게 어때?” 정도로 이유를 설명하면서 선택권을 존중해주는 화법을 활용할 수 있다.
“잘했지만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할 것 같아!” 부모는 칭찬과 독려로 한 말인데, 아이한테는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완벽’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들이대며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계속 지적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했다면 “네가 열심히 해서 해냈구나. 네가 만족해하는 것 같아 엄마(아빠)도 너무 기뻐!”라고 온전히 ‘칭찬’으로 마무리하는 게 좋다.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널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넌 대체 누굴 닮아서 이러니?” “너 커서 뭐가 되려고 이래?” “공부도 못하는 게!” “너 같은 애는 내 자식도 아냐.” 등은 대체어가 없다.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뜻이다. 전형적으로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로써,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아빠처럼 살면 안 돼.” “지 아빠(엄마)랑 똑같아.” 역시 비교 당사자 모두를 모욕하는 언어폭력에 해당한다. 부부가 서로에게 불만을 느끼더라도 아이 앞에서 상대를 흉보는 일은 피해야 한다. 아이에게 부모는 각각 소중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험담을 듣고 성장한 아이는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절대 남한테 지면 안 돼”와 같은 말은 부모의 의도와 정반대로 아이의 의지와 의욕을 꺾어놓는다.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범절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부터 “너 공부 안 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같이 남을 저평가하는 말을 삼가야 한다. “누나(오빠)답게 행동해.” 등 아동발달 단계상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아이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100가지나 늘어놓고 보면, ‘난 이미 망한 부모’라고 자책하거나 ‘도대체 부모가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고 좌절하기 십상이다. 진 소장은 “부모들이 너무 자책하거나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번 캠페인은 오히려 부모를 위한 캠페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00가지 말을 다 조심하는 것보다 100가지 말을 통해 자세와 관계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며 “부모와 아이는 함께 성장하는 것이며, 부모자식 관계는 다시 설정하면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학원 가줘서 고마워관계 설정이라는 단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아이가 성장했을 때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된다. 부모의 장기 목표가 ‘부모자식 관계는 좀 나빠도 남 보기에 좋게 키우는 것’인지,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인지 선택하라는 의미다. 만일 부모의 목표가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양육할 때부터 다그치듯 명령·훈계·지시하기보다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고 공감해주는 게 ‘답’이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데, 아이를 성공시키고 싶은 욕심도 버릴 수 없다면? 진 소장은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솔직하게 ‘네가 공부를 안 하면 나중에 기회를 놓치게 될 것 같아서 엄마(아빠)가 불안하다. 학원 가줘서, 숙제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라”고 조언한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좋으면, 아이는 사랑하는 부모를 위해서 의외로 기쁘게 노력할 수 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헤아리는 언어의 세상을 열자”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을 보았다. 우리나라 입시 현장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 드라마였다. 좋은 대학을 보내고자 하는 부모의 욕망과 어쩔 수 없이 그 욕망을 견디는 아이들이 갈등의 핵심이었다. 나는 그중 로스쿨 교수이자 아버지인 차민혁 교수의 대사에서 늘 움찔거렸다. 그는 자녀가 상류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 지상 최고의 목표인 가부장적 캐릭터로, 자녀의 같은 반 친구가 누명을 쓰고 체포되자 '경쟁자가 한 명 줄어든 절호의 기회'라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뱉는다. 그 대사들에서 나는, 비릿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유별나지는 않았지만 남들과 비슷한 교육열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나의 부모님이 상식에서 벗어났다고 여길 사람은 없었다. 지금 내 기억으로도 그렇다. 그렇기에 내가 들었고, 드라마에서도 나온 대사들은, 모두가 듣던 말이었다. "아파도 출석하고 아파", "비싼 돈 주고 학원 보냈는데 네가 딴짓을 하면 내 속에서는 천불이 나" 같은 것들과, 복받친 자녀들이 가끔 "내가 죽어도 100점 맞고 죽었으면 좋겠지?"라고 '반항'하는 말들. 그 시절의 우리는 그랬다. 그래서 '대학을 못 간 사람들은 실패자'라거나 '네 친구들은 다 경쟁자야', '그런데 영철이는 몇 점 맞았니?', '공부를 못하는 친구랑은 놀지 마' 같은 말도 당연했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고 결국은 자녀가 상처를 받으며, 그 상처를 드러내면 '반항'이라고 불리던 시기였다. 아마 지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 입시를 통과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아동보호단체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새로 꾸린 캠페인 를 보게 되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100가지의 말을 선정하고,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을 아이가 직접 그림으로 그려낸 기획이다. 나는 그 100가지의 말과 그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거의 안 들어본 말이 없었다. '쓸모없는 녀석', ''그런 건 꿈도 꾸지 마',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같은, 거의 일상어라고 여겼던 말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의 그림은 여린 마음에 크게 남은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감정과 내 기억을 되짚어 보고 재차 놀랐다. 예민한 아이였던 나는 그 말들이 하나같이 두려웠고, 그때마다 상처를 받았다. 유년기 내내 그 말들을 떠올리며 내가 전혀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보냈다. 그를 극복하기까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 말들은 너무 상식적인 것이었기에, 상처를 누구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누군가 묻지도 않았다. 나는 혼자서만 간신히 그 말들을 극복하고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기억 저편에, 소환할 수 있는 위치에 남아 있었다. 심지어 평생 여리게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겪은 것은 더 이상 당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자녀가 없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필연적임을 모르지 않는다. 앞으로도 의 서사는 반복될 것이며, 어떤 세대든 양육은 다양한 종류의 고충을 동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할 수 있다. 이제 헤아림이 부족한 언어로 아이 마음에게 상처를 주는 시대는 갔다. 듣는 이에게 무조건 상처를 입히는 말이 세상에 있다. 또 헤아린다면 대체할 수 있는 말이 분명히 있다. 적어도 우리는 이 말이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줄 것인지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자의든 타의든 자정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어른들이 명심해야 할 아동인권의 시대정신이다. 그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 것이다. 나아가 헤아리는 언어의 세상을 열 것이다.
남궁인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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