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누리집이 사라질까봐 걱정했어요. 배드파더스 누리집은 전 배우자가 악의적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아 정신적,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정들의 마지막 보루예요.” 지난해 11월 배드파더스 누리집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배우자의 얼굴과 개인정보 등을 공개한 장아무개(41·여)씨가 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월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전 배우자들이 제기한 권리침해정보 심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심의를 신청한 전 배우자만 3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방심위는 배드파더스의 손을 들어줬다. 전 배우자의 얼굴, 개인정보, 양육비 미지급액 등을 공개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고 사회적 논의를 확산하는 공익이 개인의 명예, 사생활, 인격권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상공개 된 뒤에야 양육비 지급장씨는 2016년 11월 이혼했다. 법원은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로 한 아이당 월 6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하지만 2017년 12월부터 양육비가 끊겼다. 장씨는 전 배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양육비가 3개월 넘게 끊기자 장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양육비 이행 지원 서비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전 배우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 주소가 달라 지금까지 주소 파악도 못한 상태다.
장씨가 배드파더스 누리집에 전 배우자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다른 사람과 재혼한 전 배우자는 이미 자동차, 집 명의까지 바꿨다. 휴대전화도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다. 예·적금도 모두 없앴다. 장씨는 이혼 후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하지만 월급은 최저임금(174만5150원)에 겨우 미치는 수준이었다. “8살, 7살 연년생 아이들이 치킨·피자를 시켜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마음껏 해주지 못해 가슴이 찢어져요. 양육비는 아이의 생명줄이에요.”
배드파더스 누리집은 지난해 7월 만들어졌다. 양육비를 악의적으로 주지 않는 전 배우자의 얼굴, 이름, 주소, 직장 등을 공개한다. 배드파더스 신상 공개 여부 등을 상담하는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도 같은 해 9월 만들어졌다. 신상 공개 기준은 법원 판결문과 합의서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경우다. 운영자들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는다. 협박 전화, 폭언, 폭행 등 전 배우자들의 보복 행위를 막기 위한 조처다.
배드파더스는 2018년 9월19일 MBC 스포츠 플러스의 야구 해설위원 최희섭씨가 76번째로 신상이 공개되면서 크게 알려졌다. 당시 배드파더스 쪽은 “최씨는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월 100만원씩 매달 말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법원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최씨는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해 누리집에서 지워졌다. 이 밖에도 배드파더스에 신상을 공개한 후 양육비를 지급한 건수는 현재까지 80여 건이다.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하자 양육비를 준 건수도 100여 건에 이른다. 40여 건은 협의 중이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활동가이자 양해모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드파더스에 신상을 공개한 전 배우자들은 주로 악덕 양육비 미지급자예요. 자녀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도록 당연히 줘야 할 양육비인데도 ‘전 배우자에게 거저 준다’고 잘못된 인식을 하는 탓이에요. ‘네가 알아서 키워라’는 무책임한 행동이죠. 배드파더스는 ‘배드마더’ 신상도 공개해요. 엄마든 아빠든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부모니까.” 구 대표는 2016년 코피노(Kopino·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아버지의 신상을 공개하는 누리집을 만들기도 했다.
양육비 지급은 헌법상 아동 생존권 문제양해모는 2월15일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기본권인 생존권을 침해하는 일이다’라며 첫 헌법 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법 소원에 참여한 피해 부모만 250여 명에 이른다. 이번 헌법 소원에는 양육비 미지급자 출국 금지, 운전면허 정지, 신상공개, 아동학대 처벌, 대지급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당한 이유 없이 악의적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배우자들의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제재하는 조처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집계한 양육비 이행률은 지난해 기준 32.3%다. 법원 판결문이나 합의서에 명시된 양육비를 주지 않더라도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양육비 청구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내려도 전 배우자가 버티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5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서 미취학, 초등학생, 중학생 이상 자녀를 양육하는 한부모들은 ‘양육비, 교육비용 부담’을 자녀 양육과 관련된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구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아이의 생존권 문제로 보지 않고 남녀 사이의 개인적 문제로 여겨요. 하지만 경력단절여성은 이혼 뒤 일을 시작해도 수입이나 보수가 적어요. 양육비를 달라고 전 배우자에게 연락했다가 폭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도 커요. 실제 지난해 9월 한 배드파더에게 찾아가 양육비를 달라고 하자 같이 갔던 우리까지 위협했어요. 혼자 갔다면 더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겠죠. 한 가족 수당 등도 중요해요. 하지만 우선 법원 판결문에 적힌 양육비부터 제대로 주도록 하는 게 지속가능한 대책이 아닐까요?”
양육비 안 주면서 명예훼손 고소하는 아빠들배드파더들이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구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만 13건에 이른다. 한 배드파더는 자신의 신상을 공개한 전 배우자도 함께 고소했다. 구 대표는 말했다. “위험부담이 크고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신상 공개는 계속할 겁니다. 방심위도 배드파더스의 공익성을 인정해줘 경찰 조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거로 기대해요.”
양해모는 2월28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과 첫 간담회를 했다. 이어 3월4일에는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번 헌법 소원에 담긴 주요 내용을 반영한 아동복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구 대표는 말했다. “방심위 결정으로 그동안 전 배우자의 폭언과 폭력이 두려워 말도 못하고 신상을 공개하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할까봐 망설이던 피해 가정들도 용기를 낼 거예요. 이들이야말로 자식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키우려는 착한 엄마 아빠들입니다.”
글 조윤영 기자 jyy@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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