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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용역보고서 “툴젠 단독 특허 출원은 위법”

법무법인 태평양, 서울대 의뢰 받아 크리스퍼 논문·특허 분석

<한겨레21> 기존 보도와 대부분 일치…열쇠 쥔 서울대는 신중
등록 2019-03-01 14:48 수정 2020-05-02 04:29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 한겨레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 한겨레

서울대가 툴젠의 ‘크리스퍼/카스9’(이하 크리스퍼) 특허와 관련해 외부 전문기관에 자문용역을 맡긴 결과 특허 소유권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월25일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용역보고서를 보면 크리스퍼 기술이 “정부연구과제에 의해 이뤄진 직무발명”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는 ‘툴젠에서 지원받은 연구비만으로 크리스퍼를 개발했다’는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현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의 주장과 배치된다. 또 용역보고서는 크리스퍼 특허 일부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며 “툴젠이 단독명의로 특허를 출원한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용역보고서는 이 2018년 9~10월 보도했던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 서울대는 후속 조처를 준비 중이다.

크리스퍼 특허 헐값에 넘긴 서울대

크리스퍼는 세균 면역체계 시스템을 이용해 세포 내 유전정보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이다. 유전자변형생물 개발, 난치병 치료 등에 이용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잠재가치가 최소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이끌던 연구진도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김 교수는 당시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국민 세금 수십억원을 지원받았다. 국립대학법인 소속 연구진이 정부 연구비를 받아 개발한 크리스퍼 기술은 어찌 된 영문인지 헐값에 민간기업 툴젠으로 넘어갔다. 툴젠의 최대주주는 김진수 교수다.

크리스퍼 특허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출원됐다. 본 특허에 앞서 우선권을 인정받기 위해 임시로 등록하는 ‘가출원’ 특허 3개가 연달아 출원됐다. 첫 번째 가출원 특허(미국가출원1)는 본 특허가 출원되기 전 서울대 산학협력단에서 툴젠으로 이전됐다. 가격은 약 370만원이었다(크리스퍼 외 특허 3개와 묶여 총 1852만5천원). 미국가출원2는 2천만원에 이전됐고, 미국가출원3은 계약 없이 넘어갔다. 미국가출원 특허 3개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 본 특허가 출원됐다.

서울대는 그동안 크리스퍼 특허만큼 경제효과가 크지 않은 기술도 수억원에 민간기업으로 이전한 사례가 많다. 특허 개발자가 창업한 기업에 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크리스퍼 특허는 유독 헐값에 넘어갔다. 김진수 교수가 서울대에 발명신고서를 낼 때 100% 툴젠의 연구비만으로 크리스퍼를 개발했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툴젠은 연구비를 대는 조건으로 기술이전비용 상한선을 정해뒀고 결국 그 덕을 봤다. 김 교수는 지난해 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도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한 연구비와 크리스퍼 기술 개발은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서울대가 외부 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해 확인한 내용은 김 교수의 주장과 사뭇 다르다. 서울대는 2018년 9월 법무법인 태평양에 용역을 맡겨 2019년 1월31일 ‘김진수 교수의 연구성과와 제3자 명의 특허의 연관성 분석 및 자문용역 최종 보고서’(이하 용역보고서)를 받았다. 박용진 의원실은 2월25일 이 용역보고서의 29쪽짜리 요약본을 서울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받았다.

용역보고서 “김 교수 특허, 정부 지원받은 것”
서울대가 김 교수의 크리스퍼 특허와 관련해 법무법인 태평양에 의뢰해 받은 용역보고서.

서울대가 김 교수의 크리스퍼 특허와 관련해 법무법인 태평양에 의뢰해 받은 용역보고서.

용역보고서 첫 줄에는 핵심 내용이 요약돼 있다. “정부과제지원을 받은 [붙임 1]의 논문 5~8의 내용이 미국가출원과 한국특허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미국가출원 1~3과 한국특허 1~5 또한 모두 정부과제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직무발명으로 파악됩니다.”

여기서 논문 5~8은 김진수 교수팀이 한국연구재단(준정부기관)으로부터 지원받아 만든 논문들이다. 미국가출원 1~3과 한국특허 1~5는 모두 크리스퍼 특허다. 쉽게 말해 크리스퍼 특허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만들었다는 뜻이다. 태평양이 논문과 특허에 담긴 내용을 직접 비교해 분석한 결과다.

용역보고서에는 김 교수가 법을 위반한 점도 밝혀놓았다. “권한이 없는 김진수 교수 등 발명자들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곧바로 툴젠으로 양도하는 합의서를 작성한 다음 USPTO(미국특허청)에 제출”했다며 “미국가출원3에 관한 권리가 툴젠에게 적법하게 양도됐다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미국가출원3 소유권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툴젠이 전세계에 출원한 모든 특허가 영향을 받는다. 한 예로 용역보고서는 “한국특허 2, 3 및 5에 대해서 툴젠이 단독명의로 특허를 출원한 것은 위법하다”고 적었다. 크리스퍼 특허와 기술은 현재 툴젠의 핵심 수익원이다.

용역보고서는 또한 크리스퍼보다 앞서 개발돼 툴젠으로 헐값에 이전된 유전자가위 관련 기술도 김진수 교수의 발명신고서 내용(툴젠 100% 지원)과 달리 한국정부과제의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울대 “김 교수 소명 들어봐야”

서울대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윤의준 서울대 산학협력단장은 “태평양에는 김진수 교수의 소명서가 제출되지 않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가 크리스퍼 연구에 실제 투입됐는지 좀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가출원3의 소유권과 관련해선 “김 교수의 소명서를 근거로 판단하면 특허 대리를 맡은 사무소의 실무자가 업무 착오로 단독 출원한 것 같다”며 “고의성이 없으므로 배임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는 “미국가출원1은 툴젠의 인적, 물적, 연구비 지원으로 얻은 성과이며 한국연구재단의 성과물이라 볼 수 없다. 서울대와 툴젠의 계약을 통해 적법하게 권리 이전됐다. 논문 사사와 성과물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가출원3은 서울대 직무발명이며, 보도 내용과 달리 나는 서울대와 무관하다고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대는 관련자들의 보직이 바뀔 때까지 조사를 지연시키며 시간끌기를 했고, 이번 조사 마무리 단계에서도 김 전 교수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며 어물쩡 넘어가려 하고 있다”며 “이번 건은 서울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교육부나 감사원이 직접 나서서 제대로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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