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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 왜 필요하냐고요?

양승태 ‘포토라인 패싱’ 이후 불붙은 폐지 논란…

탄생 25년 포토라인 존재의 이유
등록 2019-01-19 15:14 수정 2020-05-03 04:29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11일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청사 안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11일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청사 안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 농단의 최고 책임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난데없이 ‘인권운동가’ 대접을 받고 있다. 사법 농단 수사에 비판적인 법관들과 일부 언론이 앞장선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11일 검찰에 공개 소환될 때 검찰청사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쳤다. 대신 그는 앞서 대법원 정문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서서 검찰 조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재벌 총수는 물론 전직 대통령들도 예외가 허용되지 않았던 ‘포토라인 룰’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여론은 그의 행동에 대체로 비판적이지만, 법원에서는 포토라인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치켜세우는 이가 꽤 있다. 전직 대법원장이 실제 행동으로 무죄 추정 원칙과 피의자 인권 보호와 충돌하는 포토라인의 위험성을 이슈화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이번 기회에 포토라인을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법원에서 나온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다음날인 1월12일 개인 블로그에 ‘이제 포토라인 악습도 걷어내자’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포토라인을 두고 “국민의 알 권리를 구실로 유죄 심증을 퍼뜨려 무죄 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 현대판 멍석말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포토라인에 서고 안 서고를 검찰이 자의적으로 선별할 권한은 누가 부여했나”라며 검찰을 정조준하기도 했다.

포토라인 이슈화하는 불순한(?) 의도

일부 언론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사법 농단 수사에 비판적인 언론들이다. 는 “검찰의 포토라인 세우기가 중세 시련 재판(물·불·독 등으로 피고에게 고통을 주고 그 결과에 따라 죄의 유무를 가리는 재판)을 연상시킨다” “형사소송법엔 피의자가 공개 소환과 포토라인의 시련을 감내해야 할 의무 조항이 없다”는 등 판사들의 말을 소개하며 “검찰 악습을 걷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는 “포토라인이 거의 모든 현대사의 여론 재판장 역할을 했다” “이제는 포토라인이 피고인석에 서야 할 때인 것 같다”는 판사들의 반응을 전했다.

사법 농단 수사팀은 법원의 ‘포토라인 이슈화’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포토라인은 이미 오래전에 정착된 관행인데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법원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사법 농단 수사에 흠집을 내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 때는 피의자가 수갑을 찬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다. 검찰 소환보다 피의자에게 훨씬 더 큰 타격을 주는데도 검찰의 공개 소환만 공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조사받던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비극적 선택을 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게 바로 영장실질심사 때 수갑을 찬 모습이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법원이 그동안 이번 수사에 이런저런 시비를 건 것도 수사팀의 의심을 부추긴다. 사법 농단 수사 초기에 법원에서는 “과도한 압수수색과 밤샘조사(수사가 밤 12시를 넘기는 것으로 검찰은 ‘심야조사’라 한다)가 남발하는 무리한 수사”라고 지적했다. 판사 100여 명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예상 밖의 ‘봉변’을 당한 사례도 공개됐다. 수사팀은 법원이 사실을 왜곡, 과장한다고 반박한다. 압수수색은 영장 기각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법원이 까다롭게 심사해 오히려 증거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밤샘조사도 판사들이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수사팀의 설명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판사들이 재판 등의 업무를 마치고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온 때가 대개 오후라서 조사가 밤늦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다. 수사팀은 다음날 조사받기를 권했지만 검찰에 다시 나오기 싫다며 밤 12시를 넘겨 조사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수사 대상 판사들의 불만

양 전 대법원장의 조서 열람 방식도 뒷말을 낳았다. 그는 조서 열람만을 위해 검찰에 나가, 조사 때보다 더 긴 시간을 들여 조서를 검토했다. 조서 열람권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권리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피의자는 조사가 끝난 뒤 자신이 진술한 대로 조서가 작성됐는지 확인한 뒤 조서에 일일이 지장을 찍는다. 진술과 다른 내용이 적혔다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조서는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조서 열람은 검찰 조사가 끝난 뒤 곧바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장시간 조사에 지친 피의자가 조서를 제대로 검토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데 양 전 대법원장은 긴 시간 조사에 따른 피로감을 들어 조사받은 다음날 조서를 열람하겠다고 했다 한다. 그것도 조사 시간보다 한두 시간 더 들여 조서를 검토했다. 한 법원 출신 변호사는 “조서 열람권이 법에 보장된 권리긴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처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검찰 조사실 분위기에 눌려 조서를 고쳐달라고 요구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장시간 조서 열람을 검찰 조서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에 검찰 조사를 받은 법원 관계자들 가운데는 “조서가 진술한 대로 작성되지 않았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수사팀은 “조서에 문제가 있으면 지장을 안 찍으면 된다. 법원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조서 열람 방식이 전혀 새로울 게 없다고 밝혔다. 이미 오래전부터 피의자의 조서 열람을 자유롭게 허용했다는 설명이다. 양 전 대법원장처럼 긴 시간을 들인 것은 아니지만, 최근 서울중앙지검의 방위산업 비리 수사에서도 납품업자들이 조사 다음날 조서 열람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 농단 수사 방식에 대한 일부 판사들의 문제 제기는 과거 그들이 검찰 시보 생활을 할 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 같다. 20년이 훨씬 지난 과거를 기준으로 지금의 검찰 수사를 재단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권·검 유착 견제하던 포토라인
1993년 1월15일 고 정주영 당시 국민당 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다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1993년 1월15일 고 정주영 당시 국민당 대표가 검찰에 출석하다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포토라인 폐지 논란 촉발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겨레 백소아 기자

포토라인 폐지 논란 촉발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한겨레 백소아 기자

사법 농단 수사에 대한 시각차로 논점이 흐려진 측면이 있지만 법원이 제기한 포토라인의 문제점은 진지하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포토라인은 피의자 인권뿐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도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성격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법적인 관점만 부각되면 자칫 포토라인의 긍정적 기능까지 잃을 수 있다.

포토라인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 제도가 만들어진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토라인은 1993년 1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석할 때 일어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취재 경쟁을 벌이는 사진기자들과 이를 제지하려는 현대그룹 관계자들이 뒤엉키는 과정에서 정 회장이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이마를 찍혀 피를 흘렸다. 이를 계기로 언론계를 중심으로 과도한 취재 경쟁에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듬해인 1994년 12월 한국사진기자협회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이 발표됐다. 이는 2006년 포토라인 시행 준칙으로 다듬어졌다.

당시 언론이 권력형 비리 사건 피의자의 검찰 소환 장면 취재에 열을 올린 것은 검찰 수사를 견제, 감시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검찰은 유력 정치인과 재벌 총수, 고위 공직자가 관련된 수사를 정치적으로 처리하는 일이 많았다. 검찰 수뇌부는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 결과를 내놓기 위해 아예 수사에 대놓고 개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사 결과를 ‘마사지’하려면 수사를 비밀리에 진행해야 했다. 주요 피의자가 언론에 공개돼 취재 대상이 되면 수사에서 그들을 봐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검찰에서는 주요 피의자의 소환 장면을 숨기려는 수사팀과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대형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청 지하 주차장 등에서 ‘뻗치기’를 하는 기자들의 행위는 낯익은 모습이었다.

검찰은 언론의 물 샐 틈 없는 취재망을 피하기 위해 주요 인사를 검찰 밖에서 조사하기도 했다. 검찰 밖에서 한 조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1996년 한보 비리 수사에서 당시 김수한 국회의장은 의장 공간에서 조사를 받고 무혐의 처리됐다. 2005년 삼성 ‘엑스파일’(국가정보원 도청 녹취록) 사건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검찰 수사를 피해 미국에 머물렀는데, 검찰은 이 회장을 서면 조사한 뒤 역시 무혐의 처리했다. 황교안(전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자, “이건희 회장의 현금성 재산이 900억원이라는 사실을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밝혀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두 달 뒤 삼성은 이 회장의 개인 재산(현금성 재산)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밝혀, 900억원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가 엉터리였음을 ‘입증’했다.

누가 포토라인에 섰나
1월15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 공동 주최로 열린 포토라인 토론회에서 김창룡 인제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1월15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 공동 주최로 열린 포토라인 토론회에서 김창룡 인제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포토라인은 특별검사 제도와 함께 검찰의 부실 수사를 견제한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포토라인에 서면 수사팀도 그만큼 부담을 느낀다. 그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 있고, 언론에 검증받을 자세가 돼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포토라인이 재벌 총수 등을 봐주기 수사하는 관행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포토라인의 긍정적 기능은 학계와 언론계에서 강조된다. 1월15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법조언론인클럽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한 김창룡 인제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전직 대통령과 재벌 총수가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을 보면서 힘없는 서민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또 이런 분위기가 검찰 수사를 감시하는 것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포토라인은 법적 근거가 없지만, 공공성과 공익성이 인정되는 만큼 폐지해서는 안 된다. 다만 피의자 인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규정을 세분화,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두걸 논설위원도 “선진국에 비해 공직사회에 대한 신뢰가 현저하게 낮은 현실을 고려하면 포토라인의 긍정적 기능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법조계를 대표해 참석한 송해연 변협 공보이사(변호사)는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하물며 피고인도 아닌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우고 혐의 사실을 일부라도 공개하는 것은 무죄 추정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알 권리와 인격권의 접점은

문무일 검찰총장은 1월16일 월례간부회의에서 “(포토라인이)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인격권 사이에서 조화로운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언론계와 학계 등과 함께 포토라인 개선 작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법 농단 수사가 포토라인 관행까지 바꿀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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