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제보자들은 안다. 공익제보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2018년 1월15일 국민신문고 누리집에 접속한 정아무개씨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전남의 한 사립고 교감 승진 후보자였던 박아무개 교사의 비위 의혹과 관련한 민원 신청을 하면서, 정씨가 친정어머니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주소를 빌려 ‘본인 인증’을 거친 이유다.
이번엔 공익제보 사건을 다루는 담당자들이 알아야 할 차례다. 공익제보자 개인정보 유출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국민신문고를 두드린 지 11개월 반, 정씨의 비극적인 죽음을 마주한 그들이 뼈아픈 교훈을 얻게 되길, 유족이 원하고 아마 고인도 바랄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믿었던 신문고가 고문이 됐다</font></font>“아내는 오지랖이 넓었어요….”
12월24일 오전 전남 남원의 한 식당에서 만난 남편 윤아무개씨는 정씨의 성격을 이야기하다가 목이 멜 정도로 흐느꼈다. 정씨는 전남의 한 사립고 행정실 교무행정사였다. 민원 대상자가 된 박 교사조차 12월26일 전화 인터뷰에서 “정○○씨는 그냥 직원이 아니라 없으면 학교가 안 돌아가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학교 일에 최선을 다했다. 노인정 정자에 앉아서 담배 피우는 남자들을 봐도 신고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이 일 저 일에 나서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내를 잃은 윤씨가 속상한 마음에 “오지랖”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꼭 필요한 소금 같은 존재였다.
정씨가 박 교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남편에게 남긴 말 등을 종합해보면, 2017년 11월 말부터 진행된 교감 승진 인사 과정은 정씨 성격에 눈감기 어려운 ‘불의’에 해당했다. 당시 재단 이사들은 박 교사를 교감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 학교에서 8년이나 일한 정씨가 느끼기에, 박 교사는 교감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진로·진학 상담을 맡은 박 교사는 학교에 띄엄띄엄 출근했고, 학생들은 박 교사를 잘 몰랐다. 교사들 사이에서 평판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정씨가 용납할 수 없는 건 박 교사의 형사처벌 전력이었다. 박 교사는 학교 밖 일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이로 인해 견책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정씨가 생각하기에 학교 발전에 적합한 교감 후보자는 ㄱ교사였다. ㄱ교사의 교원인사자문위원회 임용추천대상자 평가 점수가 박 교사보다 더 높았다. ㄱ교사가 평소 학교에서 보여준 업무능력과 긍정적 마인드, 직원을 대하는 태도 등 여러 면이 정씨에겐 귀감이 됐다. 윤씨는 “아내가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했다. 정권도 바뀌었으니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올리면 일이 잘 해결될 거라 기대했다”고 전했다. 1월15일 정씨가 기어이 국민신문고에 접속한 이유다.
믿었던 국민신문고가 정씨 가족에게 ‘고문’이 된 건 3월 하순 무렵이다.
“귀하의 민원 접수에 의한 고통으로 2달 반 동안 불면의 밤을 보냈습니다./ 오늘 오전에 경찰서에 명예훼손으로 사건 접수합니다./ 명예훼손 당사자는 조사 과정에서 특정이 되겠습니다./ 그전에 연락 주셔서 경위를 설명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를 벌하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받은 고통은 자살충동을 겪어야 했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정씨 어머니)씨가 자초지종을 말씀하시지 않으시면 사안의 중대함을 심각히 간과하신 결과로 초래됩니다./ 신속하게 현명한 판단 바랍니다.”
박 교사가 정씨 어머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박 교사는 12월26일 전화 인터뷰에서 “학교 내부 시스템에서 학생·학부모 정보를 다 볼 수 있는데 우리 학교에 민원인과 이름이 같은 학부모는 없었다. 왜 일면식도 없는 분이 학부모까지 사칭해가며 나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는지 알고 싶었다. 절대 협박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라는 박 교사의 주장과 달리, 어머니는 경찰에 고소하겠다는 박 교사의 말을 협박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보는 눈’이 많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박씨를 만나 무릎을 꿇었다. 울며 용서를 빌던 어머니는 박 교사에게 “딸년을 잘못 둬서 그랬다”고 털어놨고, “딸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정○○(정씨)의 이름을 댔다는 게 박 교사의 설명이다.
4월1일 결국 박 교사와 정씨가 처음 대면했다. 그 뒤로 5월18일까지 한 달 반 동안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만 최소 21차례, 정중하지만 집요한 문자메시지 세례가 이어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21차례 이어진 문자 세례</font></font>“지금도 ○○씨가 내게 그렇게 할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할 이유도 그렇게 할 정도의 사이도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중략) 그동안 어머님께 문자로 두 번에 걸쳐 심경을 전했으나 답이 없어 ○○씨에게 직접 전달합니다. (중략) 오늘 대화를 갖기를 바랍니다.”
“정○○씨가 혼자 알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정○○씨가 직접 이해 당사자도 아닌데 불법을 써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밝혀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사를 통하게 되고 또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다 밝히고 수습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경찰 수사 진행합니다.”
박 교사는 정씨가 단독으로 민원을 접수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배후에 경쟁자 ㄱ교사가 있다고 믿었다. 정씨가 거듭 “ㄱ교사와 무관한 일이며 개인적인 판단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믿지 않았다. 박 교사는 인터뷰에서 “정씨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까무러쳐 죽는 줄 알았다”며 “내가 더 놀랐다”고 했다. 박 교사는 “저희 학교가 대입 수시전형에서 고전하면서 정원이 미달됐고,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진로·진학 전문가인 저를 교감으로 기용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장과의 친분 때문에 교감 추천을 받은 것이 아니며, 저는 운동권 전력 때문에 재단 쪽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다”라는 해명이다. 박 교사는 또 “기소유예 건은 세입자와 권리금 반환 문제로 분쟁하던 중 억울하게 무고를 당한 일이고, 정○○씨 민원 중에는 ㄱ교사가 말해준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사실을 밝히려던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계만큼 무신경한 민원 처리 </font></font>정씨는 어머니의 이름을 빌리고 학부모인 척까지 해가며 애써 신원을 감췄다. 그러나 민감한 민원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정부 시스템, 기계만큼 무신경하지만 기계만큼 정교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업무 처리는 정씨가 애써 만든 보호막을 무력화했다.
정씨는 박 교사와 면담할 때 그가 가지고 있던 A4용지를 똑똑히 봤다. 정씨 어머니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가 그대로 적힌 민원 신청 서류였다. 전남교육청에서 학교로 보낸 민원 서류에는 분명 민원인 개인정보가 지워진 것을 확인했다. 정씨와 가족들은 전남교육청 담당 주무관이 박 교사에게 개인정보를 알려줬을 거라고 강하게 의심했다.
정씨 남편 윤씨가 경찰에 제출한 첨부서류를 보면, 해당 주무관은 4월17일 정씨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교육청 내에서는 민원인의 동의가 없는 한 (민원인 개인정보가) 절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며 “교원소청심사 준비 과정에서 (박 교사가) 민원인 가족을 민원 제기자로 추측해 행동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답변했다. 답변이 애매하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재차 사실관계를 확인하자 “본 청에서는 민원인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없으며, 유출되었다면 해당 학교 내일 것으로 추측한다”며 “해당 학교에서 유출되었다면 민원인이 형사고발을 통하여 해결해야 하며, 이와 관련하여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 유족과 전남교육청,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경찰 등을 통해 확인한 사실은 교육청 주무관의 초기 설명과 달랐다. 정씨의 민원 내용과 친정어머니의 개인정보는 ‘국민신문고 누리집→전남교육청→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거쳐 그대로 박 교사 손에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권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원인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신청하면서 처리기관을 지정하면 시스템상 해당 처리기관의 국민신문고 민원 처리 화면에 자동으로 민원이 표출되어 해당 처리기관이 민원을 접수·처리한다”며 “국민권익위를 경유하거나 국민권익위가 해당 처리기관에 전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국민권익위가 정씨의 개인정보를 전남교육청에 보낸 것이 아니라, 정씨가 전남교육청을 처리기관으로 지정했고 민원이 자동으로 넘겨졌다는 설명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 교사 복직하자 정씨 증세 악화</font></font>박 교사는 3월 교감 승진 탈락에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소를 제기했다. 소청위는 전남교육청에 박 교사를 탈락시킨 근거 자료를 요청했다. 이때 전남교육청 주무관이 소청위에 자료를 넘기면서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삭제하지 않았다. 이 주무관은 전화 통화에서 “보통 민원 처리를 할 때는 민원인 개인정보를 다 지워서 보내는데, 소청 심사를 처음 해보는 거라 그쪽(소청위)에서 걸러질 줄…(알았다)”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반면 소청위 관계자는 “우리가 피청구기관에 안내문을 보내는데, 안내문에는 피청구기관이 제출한 자료는 일절 수정 없이 청구인에게 송고되니 일체의 신상정보를 가려달라고 돼 있다”며 정보 유출 책임을 교육청으로 돌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정씨의 남편 윤씨는 12월21일 전남교육청 주무관과 박 교사를 전남장성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협박 등의 혐의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이 검찰 송치 여부를 결정하는 두 달 이내에 수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진실이 밝혀진대도 추모공원에 안치된 정씨의 삶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정씨는 박 교사와 면담 이후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첫 휴직은 두 달 반 가까이 이어졌다. 정씨는 남편에게 “누가 집 밖에 있는 것 같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 뒤로도 계속된 문자 폭탄에 괴로워하다 응급실에 여러 차례 실려갔다. 우울증과 수면장애 약물을 과다 복용해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정씨의 휴직이 길어지고 논란이 커지자 박 교사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박 교사는 5월18일 학교 누리집 게시판에 “명퇴를 결정할 때는 솔직히 복수심밖에 없었답니다./ 다 부질없는 일이잖아요, 그쵸./ 제가 그렇게 살아서야 안 되죠./ (중략) 저는 전화위복이 되어, 되레 고마워지도록 열심히 잘 살게요!!”라는 글을 남기고 학교를 떠났다. 정씨에게 문자메시지 보내는 일도 중단했다. 이후 정씨는 안정감을 되찾고 학교에 복직했고, 복용 중인 우울증 약을 줄여나가며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10월 초 정씨에게 다시 무시무시한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를 떠났던 박 교사가 재단 행정 책임자로 복귀한다는 얘기였다. 정씨의 증세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학교 일에 책임감이 누구보다 컸던 정씨는 11월15일 대학수학능력시험 관련 행정 업무를 마친 뒤 결국 두 번째 휴직에 들어갔다.
12월3일 남편 윤씨는 처할머니에게 아내를 맡긴 채 일터가 있는 남원으로 불안한 발걸음을 뗐다. 그날 점심 메뉴는 짜장면이었다. 할머니는 약에 취한 듯 내내 잠만 자던 손녀를 불러 깨웠다. 정씨는 방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더니 이내 방문을 걸어잠갔다. 열쇠는 장성에 있는 집이 아니라, 남원에 있는 윤씨한테 있었다. 정씨가 열쇠까지 가지고 들어가 방문을 잠가 윤씨를 놀라게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늦은 오후, 급히 귀가한 윤씨가 방문을 열었을 때 아내의 숨도 부부의 미래도 멈춰 있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전남교육청이 소청위에 개인정보를 가리고 자료를 넘겼더라면, 소청위라도 박 교사에게 개인정보를 넘기지 않았더라면, 박 교사가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정씨와 함께 성탄절을 만끽하고 있었을 12월24일 윤씨는 기자를 마주하고 앉아 꺼이꺼이 연신 울음을 터뜨렸다. 고작 서른 해 만에 딸을 놓쳐버린 어머니는 박 교사에게 딸의 이름을 털어놓은 그 순간을 자책하며 힘들어한다고, 몸져누운 장모를 걱정하던 윤씨가 전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공익제보자 보호 ‘최소한의 감수성’도 없다”</font></font>국민신문고는 인적사항을 통해 본인 인증을 거쳐야 공익제보를 할 수 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지난 4월 개정돼 10월18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면서 변호사를 통한 ‘비실명 대리 신고제’도 가능해졌으나, 온라인으로 민원·제보를 할 경우엔 해당되지 않아 제보자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상존한다.
현재 국민권익위는 제보자만 조사할 수 있고 피신고자나 피제보기관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 그나마 공익제보자 보호 감수성이 높은 국민권익위에 1차 조사 권한을 줘 사실 여부를 확인하게 하면, 굳이 감수성이 떨어지는 해당 기관에 제보자 개인정보까지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장동엽 참여연대 시민감시2팀 상근간사는 “공공기관·위원회 등 조사 과정에서 공익제보자 개인정보가 무책임하게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법 개정 여부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감수성이 너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남원=<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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