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5년 12월 대학에서 나왔다. 지금은 작가나 출판 기획자로 소개되고 대리운전을 비롯한 이런저런 노동을 하며 생계를 영위하지만, 원래는 대학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학에서 쫓겨난 사람”이라 손가락질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학 문을 박차고 당당하게 나온 사람”이라 미화한다. 그러나 둘 다 사실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거나 초라하게만 구성되지는 않는다.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다대학은 나에게 소중한 공간이었다. 강의하고 연구하면서 행복했고 거기에서 계속 버텨내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점점 잊어간 행위가 있는데, 스스로를 위한 물음표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특별한 개인들은 어디에서든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간을 향한 물음표를 만들고 사유와 성찰을 통해 그에 답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함께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몹시 평범한 개인이었고 어느 경험을 통해 간신히, 문득 “나는 여기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하고 묻게 된다. 돌이켜보면,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였다.
결혼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별다른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다. 대신 두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내가 가져다줄 수 있는 생활비가 한 달에 80만원 정도일 텐데 괜찮을지 하는 것이었다. 대학에서 시급 5만원 기준으로 6~8학점 강의를 하는 것으로는 그만큼을 버는 것이 고작이었다. 방학 중에는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까 언제든 돈을 아껴야 했고,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80만원은 만들어보겠다고, 정확히는 도둑질을 해서라도 그만큼의 돈은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내가 돈 못 버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짐작보다 더욱 그렇다면서 두 번째 조건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답했다. 아내는 이번엔 정색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대학에선 건강보험을 보장해주지 않아.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그러면 한 달에 10만원 넘는 돈을 내야 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 돈을 내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다.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생활비 80만원에서 10만원 넘는 돈을 건강보험으로 내느니 그런 편법을 동원하는 편이 나았다. 이것은 온전히 생계의 문제였다.
언젠가 선배들과 밥을 먹다가 “저, 이번에 혼인신고도 못하게 됐어요”라고 뭔가 자조 어린 말을 건넨 일이 있다. 나는 그들이 위로해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웃었고, 곧 나에게 “너만 안 한 게 아니야. 다들 안 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고 제도의 문제임을 짐작했다. 동시에 큰 물음표가 찾아왔다. 강단에서는 ‘교수님’이라고 호칭되는, 겉으로는 학자의 삶을 사는 나의 동료들은 과연 괜찮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에 더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이 대학이라는 공간은 괜찮은가, 왜 강의하는 이들을 결혼을 증명할 수 없는 유령처럼 만드는가, 무엇보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싶어졌다.
결혼을 준비하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하면 ‘집’이었다. 교무처 교직원은 (정확히는 그들을 보조하는 학부생 조교는) 나에게 “선생님은 정규직 교수가 아니시잖아요. 재직증명서는 발급되지 않아요”라며 대신 경력증명서라는 것을 발급해주었다. 경력증명서를 은행에 제출하자 대출 상담사는 “아니 선생님, 제가 여기에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이런 서류는 처음 봅니다. 이건 저희가 사용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은행에서 나오는 동안, 무언가 지면에서 붕 떠서 걷고 있는 기분이 되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그랬을 텐데, 마치 유령이 되어 부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나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서류로서) 증명할 수 없는가, 몹시 슬퍼졌다.
내 노동은 서류로 증명되지 않는다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야 할 때가, 그리고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연구하고 강의하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일을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개인적인 슬픔인 동시에 사회적인 슬픔이었다.
내가 강의 준비에 소홀하게 되면 그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학생들이다. 나를 닮은 시간강사들이 대학 강의의 절반 가까이를 책임지고 있다. (내가 강의한 대학의 경우 시간강사들의 강의 담당 비율이 2018년 기준 43.74%에 이른다.)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없는 한 개인의 슬픔은 그의 노동과 연결된 모두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평생 문학 공부만 해온 서른두 살의 성인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월급 50만원 이상 보장, 4대보험 보장, 월수금 오전만 출근”이라는 구인 공고를 보았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은 그곳으로, 나는 무언가 홀린 것처럼 들어갔다. 맥도날드에서 물류 상하차를 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점장은 나에게 대학생들이 3일만 일하면 모두 도망가서 연락이 안 된다며, 무척 몸이 힘든 일이지만 3개월만 성실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고 1년 3개월 동안 결근 없이 근무했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성실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족의 건강보험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라도 결근을 하면 그달의 건강보험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담이지만, 아침부터 냉동 패티 150 상자를 상하차하고 오후 1시 수업에 들어가면 강단 위에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교탁 바깥으로 나가면 학생들이 “교수님! 어제 뭐 하셨나요!”라고 장난스럽게 물을 것 같아 나는 출석을 부르고 다리가 괜찮아질 때까지 교탁에 숨어서 강의를 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언제든 적응하기 마련이어서 두 달 정도 지나니 교탁에 숨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전에 없이 몸이 건강해져서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착취로 굴러가는 대학 교육어느 날, 나는 더욱 커진 물음표에 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언젠가 맥도날드 점장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희 가족이 건강보험을 보장받고 있어요” 하고 말하자, 그가 “민섭님, 저희는 그냥 법을 지키는 거예요.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반응했을 때다. 그때 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어째서 지식을 만드는 대학이라는 공간보다 햄버거를 만드는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이 더욱 나를 한 인간으로서, 무엇보다 노동자로서 존중하는가 하는 절망감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 ‘지방시’라는 축약어로도 알려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폭로라거나 고발이라고도 하지만, 이것은 “나는 누구인가, 대학은 어떠한 공간인가”에 답하기 위한 것이었고, 굳이 규정하자면 ‘고백’이었다. 별생각 없이 온라인의 조용한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린 이 글은 조회수가 8만 건을 넘어가면서 계속 관심을 받았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들에게서 “나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요”라는 메시지가 많이 들어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누적 조회수가 200만 건이 넘어가면서 출간 제안이 들어왔고, 나는 책이 나온 이후 대학에서 나왔다. 절반은 타의로, 절반은 자의로 나온 것인데, 교수나 교직원이 아닌 동료들이 나를 찾아온 다음날 합동연구실 자리를 비웠다. 무엇보다도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더욱 크게 마련되어 있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든 나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음을 배웠다. 더 큰 강의실로 가보자는 마음으로, 내 청춘을 갈아 넣은 그 공간에서 나왔다.
2018년 겨울(11월29일)에 ‘시간강사 처우 개선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9년부터는 대학 시간강사들이 교원 지위를 부여받고 4대보험, 퇴직금, 방학 중 임금 지급, 1년 이상 고용 등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대학 쪽이 이 비용을 줄이려고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할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여러 대학이 그런 방식의 구조조정을 예고했거나 준비 중이다.
대학은 원래 위법은 잘 저지르지 않아도 온갖 편법을 자행해온 집단이다. 대형 강의를 편성한다든지, 온라인 강의 비율을 높인다든지, 졸업 학점을 낮춰 전체 강의 수를 줄인다든지, 정규직 교수의 책임 강의 시수를 몇 학점씩 올린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시간강사를 이전보다 덜 고용할 것이다. 시간강사 당사자들도, 그 여파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정규직 교수들도 모두 대학의 대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의 대학이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우선 돌아보아야 한다. 맥도날드는 맛있는 햄버거라도 저렴한 가격에 만들어 모두를 기쁘게 하지만, 대학이 햄버거만 한 지식이라도 제대로 생산하고 있는지, 무엇보다도 강의·연구·행정 노동에 동원된 이들을 제대로 노동자로 대우하고 있는지 나는 별로 자신 있게 답할 수가 없다. 적어도 염치가 있다면 그 구조 안에서 착취당해온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조롱해서는 안 된다. 비판도 비난도 그동안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대학을 향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어느 말도 안 되는 노동으로 대학 교육의 한 축을 지탱해온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지방시’의 서사가 반복되지 않기를다시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지방시’의 서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강사법이 일찍 시행되었더라면 라는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강의할 자격을 얻지 못했을 확률이 더 크겠지만, 그것은 온전히 개인적인 슬픔이고 대학 안에서 다른 삶의 방편을 찾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대학 바깥에서 새로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나 같은 저작은 그 결과물이다. 강사법 시행을 환영하며, 대학이든 정부든 그에 대한 비용을 그들의 노동을 존중하는 만큼 책정하고,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끌어올리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어느 때보다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것처럼 대학의 젊은 연구자들이 그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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