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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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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이 준 킬리만자로의 선물

협동조합 커피 알리러 한국 찾은 르완다 청년

“아름다운커피와 거래한 뒤 수익 늘어”
등록 2018-11-05 20:15 수정 2020-05-02 04:29
르완다에서 생산한 공정무역 커피를 알리려고 한국을 찾은 조시아스(왼쪽)와 베스틴이 지난 10월30일 ‘아름다운커피’ 서울 경복궁역점 앞에서 웃고 있다. 김진수 기자

르완다에서 생산한 공정무역 커피를 알리려고 한국을 찾은 조시아스(왼쪽)와 베스틴이 지난 10월30일 ‘아름다운커피’ 서울 경복궁역점 앞에서 웃고 있다. 김진수 기자

“‘킬리만자로의 선물’이라는 이름이 꽤 맘에 든다. 킬리만자로는 좋은 산이지 않나.” 본격적으로 ‘커피 인생’을 살기 시작한 르완다 청년 조시아스(36)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베스틴(31)이 재미있다는 듯 조시아스를 보며 웃었다. 베스틴은 “한국에서 마시는 커피가 르완다에서보다 맛있다”고 했다.

10월30일 ‘아름다운커피’ 경복궁점에서 조시아스와 베스틴을 만났다. 이들은 자신들이 아름다운커피에 파는 킬리만자로의 선물 대신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이유를 묻자 조시아스가 말했다. “우리 협동조합과 거래하는 아름다운커피에서 파는 다른 커피를 맛보고 싶었다.” 이들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다 마셨다.

집안 대대로 커피 농사 지은 조시아스

킬리만자로의 선물은 르완다 서쪽 지역 무사사의 커피 농부들이 꾸린 쿠카무 협동조합에서 생산하는 커피다. 커피 농부들에게 공정한 수익이 돌아가도록 공정무역을 하는 아름다운커피는 쿠카무 협동조합한테서 2017년부터 원두를 샀다. 아름다운커피 르완다센터에서 일하는 조시아스와 베스틴은 르완다 커피를 알리려 10월 말 한국을 찾았다.

르완다의 연관어는 ‘천 개의 언덕’과 ‘집단학살’이다. 르완다 커피의 역사는 이 둘과 등락을 함께한다. 르완다는 높은 고도와 화산 토양, 충분한 일조량 등 좋은 커피를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을 가졌지만 1994년 후투와 투치 두 종족 간에 벌어진 내전으로 인구 20%에 가까운 80만 명이 학살당했다. 남성이 주로 피해를 보면서 르완다의 커피 산업은 황폐해졌다. 2000년대에는 워싱스테이션(커피 열매를 수세식으로 가공하는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르완다의 커피는 주변국인 에티오피아나 케냐보다 훨씬 낮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 들어 커피 질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르완다 커피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 불과 1~2년 전만 해도 케냐 농가가 생두(그린빈)를 ㎏당 7~8달러 받고 판다면, 르완다는 그것의 3분의 1인 2.5달러 정도 받고 팔았다.

르완다 커피는 99%가 수출된다. 2017~2018년 2만4500t이 국외로 나갔다. 1930년대 벨기에 식민지일 때 ‘커피=판매’로 생각하기 시작한 르완다 사람들에게 아직도 커피는 돈이지 이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아니다. 커피는 영국 등 유럽의 부자 나라에 팔아야 할 것으로,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제국주의의 산물이었다. 하루 2잔씩 커피를 마시는 베스틴은 르완다에서 흔한 경우는 아닌 셈이다. 베스틴은 “이전엔 커피를 마시면 아플 줄 알았다”고 말하며 머쓱한 듯 웃었다.

커피 농사는 대다수 르완다 국민의 생활 기반이기 때문에 집단학살 이후 르완다 정부는 커피 열매의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협동조합 결성을 장려하는 등 커피 산업 육성책을 폈다. 이에 따라 2003년 4개였던 워싱스테이션이 2015년 245개로 늘었다.

르완다의 원두는 미국 뉴욕에서 커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 심사위원으로부터 세계 2위에 선정됐다. 쿠카무에서 생산한 커피는 “부드러운 산미와 쾌적한 보디감, 가벼운 오렌지꽃 향기, 달콤한 만다린과 캐러멜 맛을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시아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커피와 함께였다. 조시아스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커피 농부였다. 조시아스의 열 형제에겐 커피밭이 ‘놀이터’였다. 7살 때부터 조시아스는 커피밭에 비료를 주고 커피 열매를 따먹으며 자랐다. “농사가 잘되면 부모님이 장난감과 학용품을 사주셔서 커피 수확할 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르완다는 국민의 90%가 농사를 짓고, 그중 60%가 커피나무를 가꾸지만 커피 농사는 돈이 되지 않았다. 조시아스의 부모님, 친척, 마을 이웃은 하루 12시간씩 커피밭에 매달렸지만 더 가난해졌다. 농부들끼리 협동조합을 꾸려도 커피를 착취하듯 싼값에 사가는 독점 대기업에 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름다운커피와 거래로 살아난 쿠카무 조합

협동조합은 농부 조합원들이 가지고 오는 커피 열매에 따라 돈을 지급하고, 생두로 가공한다. 하지만 자본이 부족한 탓에 협동조합은 커피를 사들이는 도르만, 아르티시(RTC) 같은 대기업에서 커피를 가공할 돈을 미리 받아야 했다. 기업들은 협동조합에 선급금을 주며 자신들 몫인 마케팅 비용까지 조합에 떠넘기고, 선급금 대출이자까지 챙겼다. 조합은 자국 기업에 받은 돈의 약 25%를 이자로 내야 했다.

조시아스는 “국내 기업들은 매매계약할 때 다른 기업에는 팔지 말라는 조건까지 건다. 외국으로 판로가 없는 소규모 협동조합들은 팔 곳이 딱히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국내 기업에 팔 수밖에 없다”며 “이 탓에 커피 농부들은 커피를 팔아도 수익이 남지 않는다. 돈 대신 빵을 들고 와서 커피와 물물교환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조시아스는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들의 현실을 바꿔보려 2010년 쿠카무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첫 조합원은 16명이었다.

쿠카무 협동조합은 초창기에 돈이 없어 어려웠다. 조시아스가 보수도 받지 않고 조합을 관리하는 일을 자처했다. 자본력이 없는 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사업은 없었다. 농부들은 커피 열매를 조합에 넘길 때 대금을 바로 받는 대신, 조합이 커피 열매를 가공해 기업에 팔았을 때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조합을 키웠다. 2014년 쿠카무 협동조합은 공정무역 인증을 받고 워싱스테이션을 지었다. 하지만 가공 시설을 가동할 자본이 없어 3년 동안 쿠카무 협동조합의 이름을 내건 커피를 팔 수가 없었다. 그러다 2017년 아름다운커피를 만났다.

“아름다운커피와 거래한 뒤 수익이 늘었다.” 조시아스는 이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커피와 첫 국외 거래를 하면서 번 돈으로 기자재 등을 샀다. 가공 기술이 좋아지니 더 품질 좋은 커피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다른 나라 바이어들도 수출 경험이 있는 쿠카무 협동조합의 커피를 신뢰했다.

쿠카무 협동조합은 한국뿐 아니라 영국 등 유럽에 커피를 팔고 있다. 생산량은 한 해 75t 정도다. 올해 33.6t을 외국에 팔았고(아름다운커피 포함), 나머지는 자국 기업에 팔았다. 아름다운커피는 지난해 6.5t, 올해 10t을 샀다. 쿠카무 협동조합은 국외 바이어들과 거래를 늘리면서 자국 기업들과 하던 거래를 줄이고 있다. 착취 수준이었던 고금리 이자가 없는 지속가능한 거래처가 생기면서 사업의 미래도 꿈꿀 수 있게 됐다.

조시아스는 “조합원들이 조합에 낸 커피 열매에 따라 1㎏당 10프랑(약 12.8원)씩 수익을 나눴다”고 밝혔다. 쿠카무 협동조합은 남은 수익으로 기자재를 사며 재투자를 하고, 농부들이 더 많은 커피를 생산할 수 있도록 묘목도 줬다. “형편이 어려운 농부 10명을 선정해 의료보험료를 대납해주기도 했다.” 조시아스는 뿌듯한 듯 웃으며 말했다. 쿠카무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368명으로 늘었다.

‘여성 커피 농부 프로젝트’를 꿈꾸다
지난 8월 아름다운커피 르완다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쿠카무 협동조합에서 생산한 커피 ‘킬리만자로의 선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맨 왼쪽이 조시아스, 맨 오른쪽이 베스틴. 아름다운커피 제공

지난 8월 아름다운커피 르완다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쿠카무 협동조합에서 생산한 커피 ‘킬리만자로의 선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맨 왼쪽이 조시아스, 맨 오른쪽이 베스틴. 아름다운커피 제공

조시아스는 커피밭 2㏊(6050평)를 가진 농부이기도 하지만, 13년간 임상병리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꿈은 ‘커피 비즈니스맨’이다. 커피를 뺀 인생을 상상할 수 없는 가족, 마을 사람들과 함께 르완다 최고의 커피를 키워 이윤을 나누는 것이 조시아스의 목표다. 조시아스는 병원 일을 그만두고 아름다운커피 르완다센터로 직장을 옮겨 커피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월급이 3분의 1로 줄었지만 마을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자국 기업이 남성 농부들을 착취했다면, 남성 농부는 여성 농부들을 착취한다. 커피는 식민지의 산물이기도 하면서 ‘남성 작물’로 여기기 때문에 여성들은 노동과 시간을 들이면서도 수익을 손에 쥐지 못한다. 베스틴은 “1994년 집단학살 때 남성이 집중 타깃이 되면서 르완다에서 여성 인구 비율이 절반을 넘고, 이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므로 지속가능한 커피 생산을 위해서는 여성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베스틴은 미국의 국제개발단체 ‘서스테이너블 하베스트’에서 약 2년 동안 여성 커피 농부를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맡았다. 이때 공정무역 커피가 르완다 여성에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다양한 기회를 준다는 것을 확신했다. 베스틴은 “여성 농부들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논의의 주체로 참여하지 못한다”며 “여성 농부들을 교육할 때 남성들이 ‘우리가 만든 커피를 여자 주려고 하냐’고 항의하며 여성 농부들의 교육을 막기도 했다”고 말했다.

베스틴은 ‘여성 커피 농부 프로젝트’를 아름다운커피에서도 해보고 싶다. “여성은 커피 열매를 가꾸고 수확만 하지 가공하거나 판매·마케팅·교육 등에 참여하지 못한다. 여성 중심으로 커피 사업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베스틴은 인도네시아의 ‘282 여인들’이라는 커피처럼 아름다운커피에서도 ‘여성 커피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전세계적으로 성평등이 이슈다. 여성이 만든 커피 이야기에 관심 갖지 않을까?”

2003년 아시아의 수공예품을 수입하며 첫 공정무역을 시작한 아름다운커피는 쿠카무 협동조합과 거래할 뿐만 아니라 르완다 내 협동조합 세 곳이 공정무역 인증을 받도록 돕고 있다. ‘인큐베이팅’ 구실을 하는 것이다. 김다영 아름다운커피 르완다센터장은 “아름다운커피는 르완다 내 기업들이 협동조합에서 사는 커피 가격의 1.6배를 준다. 협동조합이 자신의 이름으로 커피를 팔도록 하고, 국외 판로를 연결해 이들의 빈곤 구조를 깨고 싶다”고 밝혔다.

11월8~9일 공정무역 캠페인 열려

공정무역에 대한 찬사는 이어지는데, 한계는 없을까.

베스틴은 “물론 있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기업이 적어서 일부 협동조합만 공정무역으로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다.” 사실상 공정무역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다양한 기업의 참여를 촉구하는 셈이다. 베스틴은 “많은 소규모 협동조합이 공정무역을 하면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친환경적 재배 방법으로 환경과 건강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르완다 커피 맛있다. 한국 사람들이 케냐 커피를 좋아하는 것만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커피로 오라.”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에 온 베스틴과 조시아스는 11월8~9일 이틀 동안 ‘2018 서울카페쇼 아름다운커피 공정무역 캠페인’ 부스에서 한국 커피 애호가들을 만난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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