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육아종합지원센터. 한겨레
2018년 초 부산 시내 카페에서 만난 두 선생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연말 직장갑질119 익명 단톡방에 ‘두치치’와 ‘고쓰’라는 아이디로 들어와 센터장의 갑질을 상담한 뒤 전자우편을 보냈다. 제보 내용이 심각해 부산에서 직장갑질119 자원활동을 하는 조애진 변호사에게 연락하고, 기자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계약직에 업무 떠넘기고 폭언·폭행한 센터장그녀는 가방에서 자료 한 뭉텅이를 꺼냈다. 부산 기장군이 위탁운영을 맡긴 육아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은 강의계획서, 강의자료, 시험성적 채점과 입력 등 본인이 출강하며 생기는 업무를 직원들에게 시켰다.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한 인터뷰, 자료 정리도 떠넘겼다. 늦은 밤과 주말까지 센터장 개인 업무를 해야 했다. 폭언과 고함은 일상이었고, 폭행도 벌어졌다. 직원들이 사비를 털어 센터장 우유를 배달시켜야 했다. 1년 계약직인 그들은 재계약 탈락이 두려워 센터장의 횡포를 참아야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만성 두통과 탈모, 과민성대장증후군에 시달렸다. 서류 뭉치에는 증거가 빼곡했다. 이른바 ‘빼박’이었다. 직장갑질119를 만난 뒤 한결 밝아진 그녀는 용기 내 언론에 터뜨리기로 했다. 취재에 들어가자 센터장은 자살하겠다며 협박했고,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직원을 감금했다. 그녀는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다. 언론에 보도됐고, 해임된 센터장은 폭행과 강요죄로 조사받고 있다.
“처음엔 정말 두려웠어요. 그런데 저희가 용기를 내자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부산을 비롯해 여러 센터에서 일하는 보육 전문요원 선생님들이 기장군만 그렇겠냐고, 전국에 썩어빠진 센터가 많을 텐데, 다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며, 응원한다고 연락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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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센터장이 그녀들을 비난하고 다녔지만 새 센터장과 위탁기관인 기장군은 센터에 문제가 많았고, 직원들 잘못이 없었다며 선생님들을 보호했다. 계약 종료로 잘리지 않고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센터는 정상화됐고, 선생님들은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다.
11월1일 저녁 서울 홍익대 주변 한 카페에서 직장갑질119 스태프가 출범 1년을 자축하는 조촐한 돌잔치를 열었다. 창립기념일엔 상담도 쉬었다.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노동전문가·노무사·변호사 50여 명이 서로 위로하고 기쁨을 나눴다.
직장갑질119 1년. 전자우편 4910건, 오픈카톡 채팅방 1만4450건, 밴드 3450건으로 총 2만2810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출범 당시 241명이 신청했는데 실제 상담 등을 한 스태프는 170명이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시간을 빼야 하는 일. 전자우편과 소셜네트워크 밴드 답변을 빼고, 익명 단톡방에서 상담한 것만 3176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눈물 젖은 사연이 쏟아졌다. 직장갑질119 단톡방은 직장인들의 갑질 공감 학교이자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노동 교실이 되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단톡방에 오래 머문 이들은 준노무사가 되어 스태프가 모두 퇴근하는 밤 10시 이후 직장인들의 아픔을 달래고, 간단한 법률 지식을 전달했다. 스태프 답변을 저장해놓았다가 비슷한 질문이 오면 보여준다.
선정적 장기자랑이 사라졌다직장갑질119 출범 1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림대성심병원 노동자들은 직장갑질119를 찾아와 선정적 장기자랑과 갑질을 폭로했고, 한 달 만에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체협약을 하고, 갑질을 없앴다. 유명 방송사 기자가 찾아왔다. 신입기자들이 학원까지 다니면서 걸그룹 댄스를 연습해 환영회 때 장기자랑을 했는데, 직장갑질119 때문에 사라졌다며 고맙다고 했다. 쿠쿠전자 회사의 ‘마라톤 갑질’, 101경비단장의 ‘마사지 갑질’, 택시회사의 ‘개목걸이 갑질’이 3대 갑질로 꼽힌다. 마라톤 갑질은 생활가전 회사 쿠쿠에서 마라톤 동호회 가입을 강요해 수도권 직원 210명 중 70% 넘게 가입했고, 일주일 2회 연습, 매년 5번 이상 마라톤대회 참가, 겨울 합숙훈련을 강요한 사건이다. 비용은 모두 직원들이 냈다. 상무이사가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나가는 마라톤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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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을 바꾸는 일은 용기에서 시작했다. 직장갑질119는 “함께하니 쫄지 마!”라며 직장인들에게 힘을 주었고, 용기 낸 직장인들이 갑질에 맞서기 시작했다. 녹음기를 사서 악덕 사장의 폭행과 욕설을 녹음했고, 증거 자료를 모았다. 단톡방과 밴드를 만들어 동료, 동종 업종 노동자를 모았다. 용기, 기록, 모임은 직장 풍경을 조금씩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갑질 문화 등 생활 속 적폐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 사회 못난 갑질은 세계적 수치”라며 공공기관 갑질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발목이 잡혀 있지만, 환경노동위원회는 직장내괴롭힘금지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갑질의 뿌리는 견고하고, 변화는 더디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 갑질이 비정규직·여성·청년에게 집중되고 있다. 오늘도 정규직 대리가 계약직 사원을, 원청 팀장이 하청 직원에게 갑질을 한다. 여론의 질타를 받자 사람들 눈을 피해 괴롭히고 모욕한다.
며칠 전 시설에서 일하는 젊은 사회복지사들을 만났다. 생활인(장애인) 학대, 감금, 폭행, 강제 동원, 성추행, 강제 모금, 강제 여행 등 제보는 충격적이었다. 직원들을 상대로 모금 강요, 강제 동원, 폭언, 성추행도 심각했다. 사돈의 팔촌까지 시설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비리도 상당해 보였다. 대표는 “유명한 로펌을 통해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업계에서 찍힐 것도 두려웠다. 하지만 용기를 냈고 불법과 비리, 갑질과 괴롭힘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며칠 전 다른 지역 육아종합지원센터 직원이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센터장은 지방선거 운동원으로 직원들을 동원했다. 개인 연차를 내고 조를 짜 선거 유세에 나가게 했다. 개악된 업무 규정 강제 서명, 연장근무 강요, 휴가 사용 불허, 집단 괴롭힘, 폭언과 모욕이 예삿일로 벌어졌다. 제보자는 물었다. “저희의 어려움과 고통을 직원들이 퇴사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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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 장기자랑이 보도된 한림대성심병원 직원들은 직장갑질119 카톡방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직원들은 자체적으로 만든 카톡방에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제보가 하나둘 쌓였고, 언론에 보도되고, 국회의원과 고용노동부가 나서도록 만들었다. 비리와 갑질의 온상이 된 어린이집 교사들은 밴드에 모여,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송계갑질119 카톡방에 모여 고민을 나누고 언론에 제보했다. 모임은 변화를 만들고, 노동조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회사 양진호’에 맞서기전국에 100개의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있다. 언론에 보도되면 잠깐 멈췄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고개를 쳐드는 갑질을 막으려면 모여야 한다. 전국에 흩어진 ‘을’들이 뭉쳐 갑질을 고발하고, 언론에 제보하고, 공동으로 맞선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 회사 양진호’의 갑질을 막는 길은 용기, 기록, 모임이다. 직원 100명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2.7%. 주먹은 가깝고 법과 노조는 멀다. 온라인모임으로 뭉쳐 권리를 찾자. 나아가 온라인노조를 만들어 업종 교섭을 요구하고 모범 협약안을 만들어낸다면, ‘갑질민국’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후원계좌 010-119-119-1199 농협)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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