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를 포함해 20사단 등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불법 계엄 문건에 언급된 계엄임무 수행부대 몇 곳을 직접 방문한 것으로 9월6일 확인됐다. 일부 지휘관들은 사령관을 만난 사실을 인정하며 지난 8월 참고인 조사 당시의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는 지역별·부대별 담당 부대장을 파견하고 있어 사령관이 직접 일선 부대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계엄 기획·준비 과정에서 사령관과 일선 부대장이 직접 접촉했다는 것 자체가 계엄 문건이 ‘단순 개념 계획’이 아니라 ‘실행 문건’이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기무사령관의 이례적인 방문먼저 기무사령관의 수방사 방문부터 살펴보자. 2016년 11월22일은 박근혜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 의결을 보름 여 앞둔 때다. 이날은 조 전 사령관의 청와대 첫 방문인 11월15일과 두 번째 방문인 12월5일의 중간 시점이기도 하다. 물론 조 전 사령관이 수방사 방문 때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논의를 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날 방문 뒤 두 조직이 날개를 단 듯 움직였다는 것이다.
기무사령관은 청와대-국방부-합동참모본부(합참)-육군본부를 오가며 계엄 ‘기획’ 작업을 본격화하고, 수방사령관은 사령부회의에서 소요 발생시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기무사가 기획한 계엄이 탄핵심판 뒤 실행되면, 수방사는 계엄령 전인 위수령 단계에서 가장 먼저 투입될 부대였다. 기무사와 수방사가 경쟁하고 공조한 결과는 이미 1979년 12·12 쿠데타로 확인된 바 있다. 당시 기무사(옛 보안사)와 수방사(옛 수경사)는 한 몸처럼 움직였고, 부대장이던 전두환, 노태우 사령관은 차례로 대통령이 됐다.
조 전 사령관이 방문한 부대는 수방사만이 아니다. 합동수사단(합수단)은 조 전 사령관이 수도권 인근 몇 개 부대를 더 방문한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 중이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부대는 이른바 ‘충정부대’로 분류되는 ‘20사단’이다. 군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친위 쿠데타의 시작과 끝은 군 장악이다. 이를 위해 ‘20사단’은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국방부와 합참에 출동하기로 돼 있었다”며 “20사단도 수방사와 함께 12·12 쿠데타 주축 부대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방문 시기도 중요하다. 조 전 사령관이 경기도 양평의 20사단을 방문한 2017년 2월28일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까지 열흘이 채 남지 않은 때였다. 20사단 지휘관이던 강아무개 소장의 이력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는 20사단장 부임 직전까지 국방부 핵심 요직인 정책기획차장으로 있으면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기무사령관이 양평의 20사단에 머문 시간은 5시간이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8월 일선 부대 지휘관 조사가 성과 없이 끝난 것과 달리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일부 지휘관이 기무사령관을 만난 사실을 인정하는 등 진술을 번복하면서 국방부 분위기는 반전됐다.
일선 지휘관 진술 번복하고 기무사 접촉 시인이제 남은 것은 조 전 사령관이다. 친위 쿠데타 모의(청와대 방문), 기획(문건 작성), 실행 예비(부대 접촉) 등의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지만 정작 핵심 당사자인 조 전 사령관의 입국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조 전 사령관 수사가 진도를 나가지 못하면서 윗선인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나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 등의 소환도 기약하기 어려운 상태다. 박 전 대통령까지는 길이 보이지도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합수단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7월11일 출범한 국방부 특별수사단(이후 민군 합동수사단으로 재편)은 애초 여권 무효화 조처 필요성을 인식했다. 여당도 나섰다. 7월22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윗선 수사를 위해) 조 전 사령관의 여권 무효화를 요청해 즉각 신병을 확보하라”고 촉구했다. 실제 ‘여권 무효’라는 압박 카드가 통하는 듯했다.
7월 말께 당시 조 전 사령관은 지인을 통해 “미국에 더 머물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조만간 자진 귀국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8월 초 합수단이 여권 무효화 등의 절차보다는 자진 귀국을 종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당시 합수단 관계자는 “여권 무효화 조처가 여권 반납 명령과 반납 명령 공시 절차 등으로 최소 2개월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여 실익이 없다”며 “변호인 등을 통해 귀국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권 무효화 방침이 나온 7월 “자진 귀국하겠다”고 했던 조 전 사령관이 8월 말 귀국 의사가 없음을 전하면서다. 여전히 합수단은 원래 계획대로 설득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분위기다. 현재는 국내 송환을 위한 강제 절차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합수단 관계자는 “여권 무효화 조처를 하려면 기소를 하거나 체포영장 또는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범죄 소명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여권 무효가 된다고 국내로 바로 송환되는 것도 아니다. 잘못하면 두 달이 아니라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설득해 데려오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설명했다.
조 전 사령관의 귀국 문제는 국정 농단의 주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국내 송환과 비교된다. 2016년 12월2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외교부에 정씨의 여권 무효화 절차를 요청했다. 특검 수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지 하루 만이다. 외교부는 곧바로 여권법에 따라 정씨에 대한 여권 반납 명령에 착수했다. 당시에도 실제 무효화 조처까지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검은 무효화 조처 외에 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기소 중지와 지명수배 절차에 들어가고, ‘인터폴 적색수배’(특정 국가가 외국으로 도피한 중요 범죄 용의자의 체포를 해당 국가에 긴급히 요청하는 것) 절차도 밟았다. 덴마크 경찰이 정씨의 신병을 확보한 것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2017년 1월2일이었다. 이후에도 특검팀은 법무부를 통해 긴급인도구속 청구 절차를 밟고, 덴마크 사법 당국의 협조로 신속한 강제출국 조처도 했다. 정씨는 송환 거부 소송을 벌였다. 결국 정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5월이다. 할 수 있는 조처를 다 했음에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출범 두 달째 피의자 설득 중인 합수단박영수 특검팀 관계자는 조 전 사령관과 정씨를 단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말했다. “정씨 송환에 결과적으로 모든 방법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썼다. 조 전 사령관의 경우 인터폴 적색수배로 범죄인 인도를 받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중요한 건, 주요 범죄 피의자의 자진 입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조 전 사령관의 국내 송환이 미뤄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내란죄는 중범죄다. 여권 무효화 조처 등 기본적인 절차는 시작도 하지 않고 중범죄 피의자를 설득해서 데려오겠다고 하면 누가 그 수사팀의 수사 의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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