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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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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화 배제 tbs 작가의 눈물

박원순 시장의 정규직화 약속 이행 중인 tbs…

작가 직군에게만 비정규직 다름없는 계약 종용 논란
등록 2018-09-11 10:55 수정 2020-05-03 04:29
‘노동존중특별시’를 내건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7년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전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노동존중특별시’를 내건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7년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전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김어준임다.”

매일 아침 7시6분, 졸리운 듯한 음성, 부정확한 발음의 브리핑이 시작된다. 진행자는 공장장을 자처하는데, 청취자들은 시사 ‘요정’, 시사 ‘요괴’로 부르며 키득거리는 방송.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문재인 정부를 허투루 비판하면 분기탱천하고,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죽음을 말할 때는 안 우는 척 많이도 울었다. 김어준의 타고난 방송 감각이라는 찬사와 계산된 대중 동원 능력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교통방송(tbs) . 2016년 가을 ‘촛불’방송을 자임하던 이 프로그램은 1년 만에 2018년 상반기 라디오 청취율 1위와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모두 가져갔다.

작가 없이 가능했을까
‘공장장’ 명패 뒤 김어준은 빈틈없이 예민하고 섬세하다 tbs방송화면 갈무리

‘공장장’ 명패 뒤 김어준은 빈틈없이 예민하고 섬세하다 tbs방송화면 갈무리

하지만 누가 알까. 김어준이 ‘현인’이라 칭하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먹거리를 챙겨두고, 생방송 중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한 베트남 현지 분위기가 궁금하다”는 진행자의 멘트에 베트남 교민 연락처를 뒤져 현지시각 6시에 다짜고짜 섭외 전화를 거는 사람이 누군지, ‘냉면 드립’이 대박을 친 4·27 남북 정상회담 방송 당일 취소된 코너의 섭외자가 쏟아내는 독설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게 누군지, 출연자가 늦고 섭외가 불발되고 청취자가 항의라도 할라치면 “죄송합니다”는 말을 누가 하는지, 스태프가 매일 마시는 율무차를 타는 사람, “막내는 좀 웃어야 하는 것 아니니”라는 피디의 말도 아무 일 없는 듯 참아내야 하는 사람, 그는 누구인가? 정답은 작가다.

또 누가 알까. 피디부터 작가, 엔지니어까지 을 만드는 노동자는 10여 명, ‘노동존중특별시’를 앞세우는 서울시 산하 tbs의 대표 콘텐츠인 을 만드는 그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피디 또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이다). 물론 만이 아니다. tbs의 기자·피디·아나운서는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기제 공무원이나 프리랜서다. 촬영감독, 조연출, 그래픽디자이너, 편집감독, 엔지니어 등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만 해도 비정규직 비율은 96%에 이르렀다.

2017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타오른 ‘촛불혁명’의 와중에 tbs 내에 기존 서울특별시공무원노동조합 tbs교통방송지부와 다른 새로운 노조 결성 움직임이 생겼다. 그리고 올해 1월19일 전국언론노조 tbs지부가 출범했고, 이들은 고용안정과 최소한의 복지를 내걸었다. 닷새 만에 박원순 시장이 직접 나섰다. 1월24일 박 시장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tbs 내 프리랜서·파견용역 등 비정규직을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 방송사와 공공기관 중 프리랜서를 포함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울시는 당시 “2019년 7월 tbs 독립 재단법인이 설립되면 정규직화를 본격 추진하되 그 이전에 (계약직) 직접고용을 통해 현재와 같은 왜곡된 고용 형태와 차별 요소를 최대한 근절한다”고 밝혔다. tbs 내 프리랜서 272명 가운데 259명을 먼저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연차휴가, 퇴직금, 4대 보험(고용·건강·국민·산재), 후생복지 등 기본 처우를 보장하겠다는 뜻도 보탰다. 정규직화를 위한 징검다리인 셈이었다.

일은 순조롭게 처리되는 듯 보였다. 2019년 7월 법인화를 목표로 프리랜서 직종의 직접고용(계약)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계약 조건은 1년이었다. 그런데 협상 막바지에 문제가 생겼다. 회사 쪽에서 전체 직군 중 작가만 계약 기간을 다르게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1년이 아닌 다음 개편(8개월)을 전제로 한 계약서를 내밀자 작가들이 동요했다. 회사 쪽은 막내 작가 1년, 메인·서브 작가는 8개월이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 의도는 분명했다. 프로그램 개편시 작가와의 재계약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근 회사 쪽이 제작 담당 피디들과 실·국의 목소리라며 작가와의 1년 계약 체결이 어려운 이유를 노조에 밝혔고, 이 사실이 사내에 알려지면서 동요가 더 커졌다. 1년 계약 체결이 어려운 이유를 간추리면 프로그램 질 저하, 운영·업무상 효율 저하, tbs 외부 방송 환경과 타사와의 경쟁 등이었다.

당사자인 작가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나가라고 하고 싶을 때 나가라고 할 수 있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는 거죠.”

작가의 불안을 이용하려는 이들
지난 1월 출범한 전국언론노조 tbs지부 집행부. 왼쪽부터 이윤정 부지부장, 이강훈 지부장, 문숙희 사무국장. 연합뉴스

지난 1월 출범한 전국언론노조 tbs지부 집행부. 왼쪽부터 이윤정 부지부장, 이강훈 지부장, 문숙희 사무국장. 연합뉴스

늘 있었던 관행과 마주한 것이지만 감정의 골은 예상보다 더 깊었다. 기자와 만난 한 작가는 한숨 끝에 눈물을 보였다. 함께한 다른 작가도 울분을 참지 못했다. 피디를 포함한 모두가 비정규직이었고, 이제 모두가 정규직이 되는 상황인데 유독 작가만 이렇게 대우받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특히 ‘프로그램 질 저하’에 대해 작가들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한 작가는 “프로그램의 질이 작가를 쉽게 해고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폭력적”이라며 “손석희 사장의 JTBC 이나 나영석 피디의 등의 작가는 손 사장, 나 피디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콘텐츠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음에도 여러 스태프 중 유독 작가를 쉽게 교체해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운영·업무상의 효율’도 마찬가지다. 다른 작가는 “효율이라는 말은 해고라는 말과 같다. 개편 때 고용이 보장돼 있으면 프로그램에서 작가를 교체하는 절차가 복잡해지니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업무 효율성(을 이유로 한 해고)은 비정규직 제도를 고수하는 회사의 오랜 논리이기도 하다.

‘tbs 외부 방송 환경과 타사와의 경쟁’도 작가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타사와의 경쟁을 책임지는 위치에 작가를 두는 것에 작가들은 동의하기 어려워했다. 외부와의 경쟁을 위해 작가직군만 계약을 달리하겠다는 논리가 허약하다. 타사와의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의 작가라고 사정이 다를 리 없다. 에는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지부장 이미지 작가와 tbs 노조 부지부장 이윤정 작가가 있다. 그들도 회사 쪽 의도대로 계약이 성사되면 다음 개편 때 고용이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다. “이 청취율 12%로 1위예요. 10%로 1위를 하면 우리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가요, 아닌가요? 그것을 결정할 주체와 기준은 뭔가요?”

이윤정 작가는 오히려 작가직군이 이번 일로 고립될까 난감해했다.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피디부터 막내 작가까지 내년까지 정규직을 희망하는 상황인데 내부 갈등으로 일을 그르칠까 조심스러운 점도 있었다. “우리가 일을 다 한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도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78명 중 9명뿐인데

모든 작가가 정규직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2019년 tbs 법인화 뒤 본격적으로 추진될 정규직화에서 작가 78명 중 9명이 정규직 대상자다. tbs 노조는 일부라도 정규직이 되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정규직의 전 단계인 1년 계약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까지 회사 쪽이 협상에 나설 여지는 적어 보인다. 지금도 6개월 계약을 전제로 개별 협상을 하고 있다. 회사 쪽 관계자는 “작가직군은 다른 프리랜서 직군과 비교할 대상이 없어 협상 진행에 어려움이 많다”며 “여러 관행에 직군별 이해관계가 달라 서울시가 결단해야 할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쪽 관계자가 말하는 ‘관행’의 다른 당사자인 tbs 피디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같은 비정규직이면서도 ‘갑질’ 관행을 유지하려는 세력으로 몰리는 것도 불편하다. 노-노 갈등처럼 비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와중에 주축 직군이 피디인 서울시공무원노조 tbs지부는 9월5일 “tbs 편성권자를 중심으로 직무의 특수성을 판단, 각 직군별·직책별 계약 기간을 달리하는 것은 한 방송사의 고유한 운영 정책이며 이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하는 것은 한 방송사의 체계를 뒤흔드는 명백한 월권”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tbs의 한 피디는 “피디들이 6개월이나 1년 순환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작가 교체다. 작가가 프로그램 성격을 바꿀 만큼 핵심 인력인 것은 맞다”며 “작가 교체가 피디의 연출권 중 하나로 여겨지는 풍토는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일부 피디는 이번 기회에 작가 교체라는 관행을 바꾸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연차가 낮은 한 피디는 “작가들이 차별이라고 느낄 만하다”며 “tbs의 정규직화가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한다. 자신에게 맞는 팀원을 운용해 성과를 내려는 팀장이 팀원을 모두 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일반 회사에서도 팀원의 의사와 팀장의 뜻을 고루 반영해 팀을 꾸리듯, 피디와 작가도 그런 방식의 인사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봄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럴 줄 알았다

tbs 작가들은 올해 초 정규직이 된다는 소식에 KBS, MBC, SBS 등 옛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지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듣는다. 시사프로그램의 한 작가는 “평소 개편 때만 되면 그만두게 될까 싶어 보험 삼아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정규직이 되면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다른 인생 계획도 세워보려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걸 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모두 보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내년 9월 법인화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갈 길은 더 멀어 보인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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