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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대사’ 다양성을 외치다

‘퀴어라운드’ 참석한 주한 뉴질랜드 대사 터너-이케다 동성 부부…

“성소수자 존재 그대로 인정해주길”
등록 2018-07-24 07:23 수정 2020-05-02 19:28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왼쪽)와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왼쪽)와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

7월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6만여 명의 무지개(주최 쪽 추산)로 가득했다. 축제에는 미국·캐나다·뉴질랜드 등 각국 대사관들도 부스를 설치했다. 자국의 성소수자 인권 향상 노력을 알리며 한국 성소수자들에게 지지를 보낸다는 취지였다. 이 행렬에 필립 터너(57) 신임 주한 뉴질랜드 대사와 배우자 이케다 히로시(58)도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했다. 두 사람은 동성 결혼 부부다. 주한 대사가 동성인 배우자와 같이 온 경우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질랜드의 다양성 강화 역사

7월16일 서울 중구 정동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만난 터너 대사는 “뉴질랜드가 추구하는 다양성이란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참여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기류도 봤다”고 퀴어축제 참여 이유를 밝혔다. 이케다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목소리와 반대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크게 터져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2005년 동성애 커플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결합’을 허용했고, 2013년 의회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4년간 함께해온 두 사람에게 동성 간의 사랑과 결혼은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동성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에 온 소감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터너 대사는 “한국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는 한국인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뉴질랜드 사회가 그동안 겪어온 ‘다양성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까지 동성 간의 관계는 불법이었습니다. 사회적 환경 때문에 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억압된 면이 있었죠.” 뉴질랜드는 1986년 ‘동성애 개혁법’ 제정 전까지 동성애자를 처벌한 나라였다. 하지만 1986년 법 제정 뒤 1994년 ‘인권법’까지 통과시키며 성소수자, 마오리인, 장애인 등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갔다. 터너 대사는 “이는 단지 관용을 베푼 게 아니라 다양성을 강화하고 소중하게 여긴 역사였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어우러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게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인식이 뉴질랜드 사회에 자리잡았다는 이야기다.

이케다는 일본에 있는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성소수자를 보는 일본 사회의 ‘색안경’에 대해 “성소수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존재 그대로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해 “성수소자들이 어떻게 지내고, 고통을 받는지 차분하게 봐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당신 곁에 늘 있는 성소수자

지난 4월 말 한국에 온 터너 대사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 제스프리 키위를 재배하는 제주 농가와 뉴질랜드 영화가 출품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다. 영화제에는 이케다도 함께했다. 1990년대 중반 주 일본 뉴질랜드 대사관 근무 시절부터 한국을 지켜본 터너 대사는 “지난 수십 년간 경제와 사회가 역동적으로 발전해온 한국에 오니 정말 기쁘다”고, 대학에서 한·중·일 고대사를 공부한 이케다는 “고향에 온 느낌”이라며 한국에서 보낸 두 달여의 시간을 설명했다. 올해 19회를 맞는 퀴어축제의 슬로건은 ‘퀴어라운드’(Queeround)였다. ‘당신 주변에는 늘 성소수자가 있다’는 뜻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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