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과 교섭으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교통비·급식비)를 올려놨는데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된다니 허탈하다. 그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민주노총 산하 교육공무직 안명자 본부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 개정을 비판했다. 안 본부장은 학교에서 비정규직 특수교육 지도사로 일하고 있다.
최대 연 433만원 피해볼 수도안 본부장이 밝힌 근속연수 1년차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명세 내용을 보면 연봉은 2440만2520원이다. 매월 186만2710원(기본급 164만2710원, 급식비 13만원, 교통비 6만원, 근속수당 근속 1년당 3만원)을 받고, 연간 205만원(상여금 60만원, 명절휴가비 100만원, 맞춤형 복지비 45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국회가 통과시킨 최저임급법 개정안을 보면 전면 시행되는 2024년부터는 이 노동자의 복리후생비인 월 19만원과 연간 받는 상여금 60만원이 기본급에 포함된다. 연 288만원이 기본급에 산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최저임금의 인상 효과는 낮아진다.
안 본부장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명절휴가비 100만원과 맞춤형 복지비 45만원까지 기본급에 산입되면 연 433만원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지현 교육공무직 경기지부장은 과 한 통화에서 “오랜 협상을 거쳐 어렵게 각종 수당을 늘렸다. 오래 일하신 분들은 200만원도 받아, 일할 맛 난다고 만족했는데 이번 개정안 통과로 침통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안 본부장은 “우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파업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국에 조합원 4만5천 명이 있는데 일단 퇴근 뒤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고 6월30일 서울에서 모이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배동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최저임금이 수치상으로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거의 안 오른 것과 다름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사용자 마음대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개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근로기준법의 기반을 약화했다”고 말했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노동현장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국회는 5월28일 본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보면 내년도 최저임금 173만원(10% 인상 가정)을 기준으로 25%(약 43만원)를 초과하는 상여금과 7%(약 12만원) 넘는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한다. 미산입 비율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2024년부터는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산입될 예정이다. 국회는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개정안이다. 산입 범위를 넓혀도 연봉 2500만원 이하 노동자에게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식비 산입 땐 알바도 영향이런 국회의 발표는 5월29일 고용노동부의 발표로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연소득 2500만원 이하 노동자의 2.6%인 21만6천 명이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은 “(21만6천 명은) 2500만원 이하 노동자로서 최저임금 영향을 받는 324만 명의 6.7% 정도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산입 범위 기준을 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노동부의 발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영향받는 것으로 분석했다. 민주노총은 보도자료를 내어 “노동부의 주장(21만6천 명)은 2016년 자료를 근거로 한 수치로 과소 추정됐다. 산입 범위 적용 시점(2019년) 사이 차상위계층 노동자가 늘어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산입 범위 개악이 저임금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연소득 2500만원 이하 노동자로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35%(약 113만 명)의 기대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노동계는 마트·주유소·경비 노동자, 간호조무사 등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손해를 볼 것으로 분석한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법 개정과 관련 없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의 김준호 사무처장은 상여금과 후생복리비를 받지 않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최저임금법 개정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당장 와닿는 것은 식비다. 지금은 고용주의 선심에 기대 식사를 제공받거나 식비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고용주가 식비를 일방적으로 최저임금에 산입하면 노동자 처지에선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최저임금(7530원)을 받으며 맥도날드 배달일을 하는 박정훈(33)씨는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지난해 생명수당 명목으로 시급에 50원씩 더 주던 것을 삭감했다”며 기본급 외에 배달 건당 주는 400원이 복리후생비로 전환돼 최저임금으로 산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최저임금법은 힘이 강한 사장으로부터 노동자의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삭감해도 된다’는 조항이 포함되는 것은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은 생색내기용?당장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정의 피해를 보지는 않지만 법 개정 자체가 문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대학생도 많았다. 주말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김아무개(21)씨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는 식비와 복리후생비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 상태에서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 고용주가 안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법은 그런 고용주를 보호하는 모양새가 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김아무개(20)씨는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이 내려가는 추세라, 학생들은 이번 법률 개정이 점진적으로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공약했는데, 자본의 압력으로 힘들어지니 생색내려는 법 개정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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