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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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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하기 좋은 나라 호흡하기 힘든 나라

미세먼지 국외 영향 평상시 연평균 30~50% 불과, 정부 석탄발전소 7기 건설 예정

최대 원인은 환경 무관심… 대기업 이해와 국민의 호흡권 충돌하는 현실 깨달아야
등록 2018-04-03 16:58 수정 2020-05-03 04:28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에 들어간 3월2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연합뉴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에 들어간 3월2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의 순위를 볼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12등, 물론 세계 순위다. 내가 사용하는 대기 질 정보 애플리케이션(앱)은 전세계에 설치된 수천 개의 공공·민간 대기 관측소의 측정값을 모아서 공개하고, 실시간으로 대기 질 최악의 도시 순위를 매긴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정말 날마다 이 앱을 확인했던 것 같다. 제19대 국회 때 4년 내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일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라돈 같은 자연 방사능과 핵발전소 등에서 비롯하는 인공 방사능, 가습기살균제 같은 생활화학제품, 전자파, 석면, 유전자조작식품(GMO) 등 환경보건 사안을 주야장천 다룬 게 화근이었다. 대한민국은 정말 아이 키우기 나쁜 사회가 맞다.

3월부터 초미세먼지 환경 기준 강화

지난주까지 분명 겨울이었는데, 오늘(3월30일)은 봄을 건너뛸 기세로 초여름이 엄습했다. 다시 하늘은 뿌옇다. 미세먼지로 숨 쉬기 곤란해지자 사람들은 원인이 뭔지, 대책은 없는지 몹시 답답해한다. 나도 화가 난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중국과 중국인 혐오 표현이 넘쳐난다. 환경부 누리집에는 미세먼지의 국외 영향을 평상시 연평균 30~50%, 고농도시에는 60~80%로 추정한다고 쓰여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문제라는 말이다.

물론 새 정부는 지난 정부들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문재인 정부가 작년 9월 발표한 미세먼지 종합대책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국내 감축 목표를 두 배 이상 올린 것이다.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가 국내 배출량을 2021년까지 14% 줄이겠다고 밝힌 데 반해,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30% 줄이겠다고 한다. 국외 영향도 큰 문제지만,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중국에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협약 체결 등을 강하게 요구할 명분이 안 생긴다. 그래서 국내 감축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 3월27일부터 초미세먼지(PM2.5) 환경 기준이 강화되었다. 야호! 이 역시 종합 대책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다.

2015년 4월 장하나 의원실발로 ‘초미세먼지 법정 기준으로는 국민건강 보호 못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임기를 마칠 때까지 많이 애썼다. 이렇게 실현되는 걸 보니 참 기쁘다. 당시 보도자료는 ‘한국의 초미세먼지 기준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주요 국가들의 기준보다 월등히 높다. 이렇게 느슨한 기준으로 국민의 건강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환경 기준을 정할 때 건강 영향이나 환경 편익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계의 편의만 봐줬다.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달성 가능한 수치를 기준 삼았다. 오염원 저감은 기업에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다른 환경 기준도 다 그런 식이다.

국토 면적 대비 석탄발전 밀집도 1위

그런 정부를 둔 덕에 천식·아토피·비염 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도 연간 2만 명에 이르고 있다. 2017년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제3차 한국 환경성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60년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는 인구 100만 명당 1500명으로 현재의 3배쯤 늘어날 추세란다. 이는 중국,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사람 잡는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 감축 목표 30%를 달성할 수 있을까? 작년 9월 미세먼지 종합대책에서 정부는 건설 추진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 9기를 원점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작년 12월 공개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보니 9기 중 2기만 LNG(액화천연가스)발전소로 전환하고 나머지 7기는 예정대로 건설한단다.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다. 폐암 환자가 항암 치료는 않고 담배를 더 피우겠다는 게 바로 지금 우리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3월1일부터 미세먼지를 줄이고자 노후 석탄발전소 5기를 봄철(3~6월) 동안 가동 중단하고 있다. 그리고 4개월간 초미세먼지 813t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작년부터 새로 가동한 6기의 석탄발전소가 같은 기간 809t의 초미세먼지를 뿜어내기 때문에 사실상 저감 효과는 없다 한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국토 면적 대비 석탄발전 밀집도 1위라는 사실을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제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에 따르면 2016년 현재 OECD 전체 밀집도(설비 용량/국토 면적)는 0.017인데 한국은 0.287이다. 게다가 2022년까지 7기의 신규 석탄발전소가 또 세워지면, 밀집도는 0.496까지 치솟는다. 문 닫는 노후 석탄발전소의 설비 용량보다 새로 만드는 발전소의 설비 용량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슨 비장의 무기를 감추고 있는지 몰라도, 이러면 곤란하다. 2022년까지 모든 공무원이 자전거만 타기로 한 게 아니라면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막아야 한다.

국민 건강권 눈감은 황교안

작년 국정감사 때 환경부가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신규 석탄발전소의 초미세먼지 배출 예상량은 신규 LNG발전소의 4.2배이고 미세먼지 2차 생성 물질인 황산화물(SOx)은 100배 이상 많다. 새로 건설되는 석탄발전소 7기에서 생기는 초미세먼지 예상량은 연간 경유 레저용차(RV) 18만6천 대분에 맞먹는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발전사업자의 매몰비용(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국가재정으로 보전할 수도 있다고 본다. 눈먼 돈을 막 퍼주자는 게 아니라, 민관이 참여하는 비용산정위원회를 가동하는 것도 방법이다. 인허가는 지난 정부에서 준 거니까 혹여 덜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다.

2017년 3월, 산업부는 전원개발사업추진위원회(이하 전원개발위원회)를 개최하고 신규 석탄발전소인 당진에코파워의 전원개발 실시 계획을 승인했다. 전원개발위원회는 전원개발촉진법 시행령 제5조에 따라 산업부 제2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기획재정부·미래창조과학부·국방부·행정자치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부·환경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국민안전처 및 산림청의 고위 공무원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기구다. 즉, 당진에코파워 사업 승인은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대선 후보이던 문재인 대통령이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당진에코파워 건설의 전면 재검토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상황이었는데, 임기를 한 달 남짓 남겨둔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죽을힘을 다해 당진에코파워를 허가해줬다. 왜일까? 당진에코파워는 제1호 민간 석탄발전소로 추진되고 있었다. 경영권은 에스케이(SK)가스가 가지고, 에스케이가스의 최대주주는 에스케이케미칼(가습기살균제 원료를 90% 이상 공급한 그 회사다)이고, 에스케이케미칼의 최대주주는 최창원 부회장이고, 그는 에스케이그룹 창업주인 최종건의 3남이자 최태원 회장(노태우씨 사위)의 사촌이다. 국민들이 촛불로 박근혜 게이트를 심판하고 정권을 교체해낸 그 순간에도 재벌 대기업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성심을 다한 황교안이란 사람을 잊으면 안 된다.

정권이 바뀌고 LNG발전소로 전환된 2기가 바로 당진에코파워다. 하지만 건설이 강행되는 삼척포스파워 1·2호기는 포스코에너지가 투자하고 포스코건설과 두산중공업이 건설한다. 강릉안인화력발전소 1·2호기는 삼성물산이 투자하고 케이비(KB)국민은행이 금융 조달에 참여한다. 고성하이화력발전소 1·2호기 사업에는 당진에코파워와 마찬가지로 에스케이가스·에스케이건설이 참여한다. 재벌 대기업의 이해와 우리 가족의 호흡권이 마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전기차보다 노후 경유차 폐차에 지원을

이 투자 기업들은 각기 수천억원대의 투자비용의 매몰을 주장하고, 향후 수익에 대해서도 손실을 주장했다. 예컨대 강릉안인화력발전소의 경우, 삼성물산은 총 5조원의 건설비용이 들어가고 앞으로 해마다 2500억원의 영업이익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공정률 10% 미만 신규 석탄발전소 전면 재검토를 발표했을 때, 이들 기업은 법적 대응도 불사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미세먼지 대책 예산을 짚어야 한다. 쉽게 말해 2017년 예산은 박근혜 예산이고, 2018년 예산은 문재인 예산이라 할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작년 5276억원이던 미세먼지 예산을 7043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그런데 2017년 미세먼지 예산 중 3592억원, 즉 70% 가까운 돈이 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구매 보조금과 충전소 설치 등에 쓰였다.

친환경 승용차는 좋은 거니까, 자칫 좋아 보일 수 있는 ‘나쁜 예산’이다. 환경부가 해마다 수천억원씩 쏟아붓는 친환경 승용차 보급 사업은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거의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의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정부의 친환경 승용차 보급 150만 대 목표가 달성돼도 이는 2015년 현재 전체 자동차 등록 대수 약 2100만 대의 7.1% 수준에 불과하다. 수송 분야의 미세먼지는 대부분 경유차 중 화물·특수차(70%)에서 배출되므로 승용차 위주의 친환경차 보급 사업으로 대기 질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국회에 있을 때 이 예산을 깎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때도 현대·기아차의 국회 로비가 엄청났다.

그런데 2018년 예산안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하이브리드차 예산은 200억원 깎였지만 전기차에서 640억원이 또 늘어났다. 환경부가 2017년 4월에 발표한 ‘2017년 주요 미세먼지 삭감 실적 및 계획’을 보면, 친환경차 1대 보급시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연간 0.1kg인 반면, 노후 경유차를 1대 폐차할 때 저감 효과는 연간 1.5kg, 경유차 버스를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대체하면 무려 25kg의 저감 효과가 생긴다. 친환경차 보급보다 경유차 개선 사업이 시급하다. 2022년까지 3조5천억원이나 되는 미세먼지 대책 예산을 제대로만 쓰면 국내 감축 목표 30%에 근접할 수도 있다. 현대·기아차에 퍼주다보면 미세먼지 관련해서는 박근혜 정부보다 조금 나은 정부에 그칠 수도 있다.

중국은 한국 기업에 매우 효과적인 방패막

국회에 4년 있다보니 정치는 8할이 돈 문제구나 싶었다. 해마다 400조원 넘는 예산은 어디로 가는지. 대규모 개발 사업이 추진될 때 정부는 환경권·건강권·주거권 등 개인의 권리를 제대로 옹호하고 있는지. 미세먼지 문제에 중국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방패막이 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호흡하기 좋은 나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장하나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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