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
세월호에서 전송된 마지막 메시지. 많은 국민이 ‘기다리라’는 말에 분노했고, 살아나오지 못한 희생자를 애도했다. 그 순간 다른 데에 관심이 있었던 무리가 있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17분. 마지막 메시지가 전남 진도 서거차도 해상을 떠나와 뭍에 닿은 시간. 박근혜의 청와대는 그 시간을 ‘골든타임’의 마지막 순간으로 봤다. 대통령은 골든타임 이전에 세월호 사고 상황을 알고 있어야 했다.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은 조작되기 시작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근혜 쪽은 “2014년 4월16일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었고, 피청구인(박근혜)의 몸이 좋지 않아 본관 집무실에 가지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각종 보고서를 검토하였고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를 받거나 전화로 지시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며 “(오전) 10시께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처음 서면보고를 받아 사고 발생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10시15분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파악한 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하였고 “10시22분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하여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해라’라고 강조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이후 “15시30분께까지 세월호의 침몰 상황과 구조 현황 등에 대하여 국가안보실로부터 5회(서면 2회, 유선 3회), 사회안전비서관으로부터 서면으로 7회, 행정자치비서관실로부터 서면으로 1회 보고받아 검토하고 필요한 지시”를 했고 “대통령이 현장 상황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구조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구조 상황에 대한 진척된 보고를 기다렸다”고 참사 당일 행적을 전했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검찰은 3월28일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등’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 수사 결과 국가안보실에서 작성된 첫 보고서가 박근혜에게 전달된 것은 오전 10시가 아닌 10시20분께였다. 보고서는 인편으로 청와대 관저 요리사인 김아무개씨에게 전달됐고, 김씨는 이 보고서를 평소처럼 박근혜의 침실 앞 탁자에 올려뒀다.
보고서 완성 직전인 10시10분께부터 김장수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박근혜에게 두 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궁여지책으로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사실을 알렸다. 안 전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의 첫 보고서가 도착한 것과 비슷한 시각인 10시20분께 박근혜의 침실 앞에 섰다. 안 전 비서관이 문 밖에서 여러 차례 부른 뒤에야 박근혜는 침실 밖으로 나왔다.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합니다!” 안 전 비서관의 말을 들은 박근혜는 “그래요?”라고 말한 뒤 침실로 들어가 김 전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이 10시22분.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되기 9분 전이었다. 박근혜가 10시15분에 처음으로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참사 대응을 지시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여러 차례 부른 뒤에야…첫 보고, 첫 지시만 거짓이 아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정호성 당시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에게 오전 10시36분부터 밤 10시9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전자우편으로 세월호 사고 상황을 전했다. 집무실에 있었던 정 전 비서관은 오후와 저녁에 각각 한 번씩 구문이 된 보고서를 한꺼번에 뽑아 관저에 있던 박근혜에게 전달했다. 실시간 보고나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가 기다리던 것은 따로 있었다. 검색 절차 없이 청와대 관저에 방문할 수 있는 ‘A급 보안손님’인 최순실씨는 이날 오후 2시15분께 박근혜를 만났다. 박근혜, 최씨 그리고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이재만·안봉근이 청와대 관저 내실에서 회의를 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미용사를 불러 관저에서 올림머리를 한 박근혜는 이날 오후 4시33분께 청와대 관저를 출발해 오후 5시15분께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중대본에 도착했다. 박근혜는 이 자리에서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며 세월호 침몰 현장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듯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오후 6시께 다시 청와대 관저로 돌아와 머물렀다. 박근혜는 국가적인 대형 참사가 벌어진 이날 하루 종일 집무실에 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의 행적이 문제가 되자 청와대는 기록을 바꿨다. 첫 보고와 지시 시간을 자신들이 판단한 골든타임인 오전 10시17분 이전으로 당겼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사고와 관련해) 비서실에서 20~30분 단위로 간단없이 실시간으로 시시각각 보고를 하였기 때문에 대통령을 직접 대면보고 받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거짓 해명을 내놓았다.
훈령마저 볼펜으로 수정박근혜 청와대는 국가 위기 및 재난 등 업무와 관련한 대통령 훈령인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위기관리지침)도 바꿨다. 청와대가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재난 상황의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라고 적힌 대목을 ‘국가안보실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만 대통령을 보좌한다’라는 취지로 수정했다. 이처럼 위기관리지침의 10개조 14개항이 볼펜으로 수정됐다. 물론 관계 기관장에게 의견을 조회하는 등의 훈령 개정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304명의 생명이 사라진 그날,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없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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