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언제부터 ‘한 방에 간다, 한 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 방이 어디에 갔습니까?”
11년 만에 ‘한 방’이 왔다. 2007년 8월6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이명박 후보가 부르짖으며 찾던 그 ‘한 방’이. 3월14일 오전 9시23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고 말문을 뗀 이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간 뒤 21시간 만에 나왔다.
언론에 보도된 이 전 대통령의 혐의는 20개 안팎이다. 하지만 이 숫자는 정확하지 않다. 수사 과정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추려 셈한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숨겨둔 ‘패’가 더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잔가지를 잘라내고 줄기를 볼 필요가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리 백화점’ 방불케 하는 MB </font></font>가장 큰 줄기는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다스가 비비케이(BBK)에 투자한 돈 140억원을 돌려달라고 미국에서 소송을 걸며 든 비용을 삼성이 대납해줬다고 본다. 그 규모는 60억원 수준이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신분이었기 때문에 삼성이 변호사 비용을 대납했다면, 뇌물죄에 해당한다. 투자금을 돌려받으려고 김재수 전 LA 총영사가 김경준 전 BBK 대표를 압박한 것에는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로 드러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범죄 혐의도 있다. 다스의 비자금 조성 책임을 이 전 대통령에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스와 다스 관계사에서 만든 비자금은 수백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여기에 횡령 등 재산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이 밖에 국정원 특수활동비 17억5천만원을 상납받은 것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 김소남 전 의원 등에게서 따로 받은 30여억원에도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영포빌딩에 청와대 문건을 쌓아둔 것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등 각종 재산을 친·인척 등의 명의를 이용해 보유한 것은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이다.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만 110억원이 넘는다. 혐의 사실도 단순하고 명쾌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을 경유지로 이용하거나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뇌물죄 적용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대부분 ‘직접’ 받았다. 박 전 대통령처럼 제3자 뇌물죄 같은 복잡한 죄명을 끌고 들어올 필요가 없다. 대가성도 명확해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일부 기업들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낸 돈이 ‘뇌물’이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은 강요의 피해자라는 항변이었다. 대가성이 명확하지 않은 틈을 비집고 내놓은 논리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공천, 인사 청탁, 사업 수주 등 받은 돈마다 명확해 보이는 대가들이 줄줄이 나온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MB 소환은 소명을 듣는 절차일 뿐 </font></font>검찰은 오래전부터 이 전 대통령의 여러 범죄 혐의를 확인한 뒤 관련 증거와 진술을 대부분 확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2월 초 과 한 통화에서 “밖에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다스의 실소유주 입증은 이 무렵 이미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을 소환하기 어려웠던 ‘평창겨울올림픽 기간’(2월9~25일)을 이용해 다른 혐의들에 대한 ‘다지기’ 수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은 진술을 쏟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3월14일 이뤄진 이 전 대통령 소환은 매우 ‘상징적 사건’이긴 하지만, 전체 수사 차원에서는 피의자 소명을 듣는 하나의 절차를 밟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리라는 점은 이미 예상된 일이다. 이 전 대통령은 실제 “나는 모르는 일이다” “기억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보고하지 않았다” “서류가 조작됐을 것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때 측근이었던 이들의 진술에 대해서는 “본인이 처벌을 가볍게 받기 위해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혐의에 대한 수사와 대부분의 절차는 끝났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전 대통령은 후임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구속 기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사건이 여기서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구속 기소는 전초전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나온 혐의는 대부분 다스와 관련됐거나 많아야 수억원 단위의 뇌물 혐의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활용한, 규모가 큰 혐의는 삼성의 다스 소송 비용 대납 정도다.
남은 것들이 더 크고 더 많다. 제2롯데월드 건설에 이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이 나왔다. 또 수십조원의 혈세를 낭비한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국가정보원과 군의 여론 조작 사건에 대한 책임도 아직 묻지 못했다. 최근 이 작업에 경찰이 가담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또 다른 뇌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font></font>이 전 대통령의 여러 범죄 혐의가 지금에야 드러난 것은, 그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이 타도되며, 이 전 대통령이 유지하고 있던 구심력이 크게 줄었다. 그와 함께 측근들이 등을 돌렸다. 구속 기소 이후에는 ‘구심’ 자체가 사라진다. 입을 열 사람들이 더 나올 수 있다.
징후는 이 전 대통령 임기 말 터졌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에서 나왔다. 이 사건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 건설 인허가 과정에서 부지용도 변경 등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다. 특혜에는 로비가 따랐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이 의혹으로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와 돈을 받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왕차관’이라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구속됐다. 측근은 구속됐지만 이 전 대통령은 무사했다. 진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배 전 대표는 최근 자신이 수감된 교도소에서 KBS 취재진을 만나 “인허가 로비 당시 이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의 고백이 이 전 대통령 수사의 ‘시즌2’를 알리는 예고편이 될 수 있을까.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새로운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즌2가 시작된다면, 그 규모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블록버스터’일 것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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