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자 대학’의 노조 죽이기?

청소노동자 본관 농성 40일 연세대… 2017년 운영수입 8천억,

국고보조금 1위 달해 세브란스 노조 파괴 논란 등 노조 말살 의심
등록 2018-02-27 15:49 수정 2020-05-03 04:28
2월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기 위해 학생회관 쪽으로 이동하고있다. 이날 본관 건물 뒤 연희관에선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논하는 지식인들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2월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집회를 열기 위해 학생회관 쪽으로 이동하고있다. 이날 본관 건물 뒤 연희관에선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논하는 지식인들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5307억원이나 되는 적립금을 보유한 학교가 월 200만원도 못 받는 청소·경비노동자들 임금이 부담된다며 알바로 채운다는 게 말이 되나요. 교수들 연봉은 1억6천만원이나 주면서, 너무하잖아요.”

2월2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본관에서 만난 재학생 김아무개(23)씨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학내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가끔 농성장을 찾는다는 그는 “사회학과 교수 출신인 김용학 총장이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교수 출신 전임 총장보다 더 기업 마인드를 지녔을 줄은 몰랐다. ‘존중하고 존경받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총장의 비전은 말뿐이었냐”고 되물었다.

교수들 침묵… 졸업생들 연대 나서

지난해 말 연세대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정년퇴직한 청소·경비노동자 31명의 자리를 충원하지 않거나 초단시간 아르바이트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청소·경비노동자가 소속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연세대분회는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1월16일부터 본관에서 농성 중이지만, 40일이 지나도록 학교는 답이 없다. 조합원 100여 명이 돌아가면서 본관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설 명절을 지내는 동안, 평소 진보와 연대를 노래한 연세대 교수들도 당최 말이 없다.

교수 사회가 침묵하는 사이, 학교를 떠난 졸업생들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날 오전, ‘연세대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지하는 졸업생 모임’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쪽에 청소·경비노동자 인원 감축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본관 점거 시점에 나온 성명에 이어 두 번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치외교학과 졸업생 최하림(27)씨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길에 연세대만 역행하고 있다. 학적이 부끄럽지 않도록 학교가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학과 졸업생 김윤중(32)씨는 “학부생 시절 현 총장인 김용학 교수의 사회학입문 수업을 수강하고 존경했다. 그런데 총장에 부임하더니 과거 다른 총장보다 악랄하게 학내 노동자를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설 연휴가 지나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지금도 노동자들은 추운 바닥에서 총장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고려대와 홍익대가 부당해고와 인력 감축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세대가 응답할 차례다”라고 말했다.

2월7일 민동준 행정대외부총장이 동문들에게 ‘학교 쪽의 다각적인 노력에도 노조 쪽이 무단점거와 시위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전자우편을 보낸 것에도 비판이 이어졌다. 졸업생들은 “부총장이 동문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오히려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 학교 쪽은 노동자를 탄압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졸업생들이 든 펼침막에는 “우리는 연세대학교가 부끄럽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연세대가 졸업생들로부터 수치스럽다는 비난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4월에는 연세대 출신 국회의원들이 이례적인 ‘모교 성토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연세대가 학내에서 천막농성을 벌여온 해고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퇴거 단행 가처분신청’과 함께 하루에 100만원씩 강제금 부과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새정치연합의 김현미·우원식·우상호·장하나 의원은 “모교 연세대가 요즘처럼 수치스러웠던 적이 없다”며 “이런 짓을 벌이고도 ‘명문 사학’을 자처할 수 있느냐. 부끄럽고 치가 떨린다”고 비판했다.

전체 등록금의 8.5% 불과해
2월21일 오후,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본관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월21일 오후,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본관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초 연세대는 청소 용역업체와 계약하면서 최근 5년간 용역비가 과다 상승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인원 감축을 업체 쪽에 요구했고, 업체는 청소노동자 38명 가운데 12명을 해고했다. 의원들은 “청소 용역비 상승은 연세대가 송도 국제캠퍼스를 개교하면서 강의동과 연구시설을 늘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도, 대학은 용역비 상승 책임을 인원 감축이라는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전가했다. 노동자 해고와 이후 농성 사태의 모든 책임이 연세대에 있는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3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정부·여당의 시선도 싸늘하다. 2015년 기자회견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2월5일 서경지부와 만나 “2015년 연세대 송도캠퍼스 청소·경비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이후 또다시 연세대에서 비정규 노동자 문제가 발생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 연세대 출신으로 비정규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만큼 이번 사안도 신경 쓰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1월15일 청와대 일자리수석도 연세대를 찾아 서경지부와 면담하고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같은 날 교육부 차관도 “대학이 취약계층 고용 안정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학생과 동문들의 날선 비난과 부정적인 사회 여론에도 연세대는 요지부동이다. 재정 상황이 어렵기 때문일까. 2월7일 민동준 부총장이 동문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을 보면 “지난해 8월 청소·경비 용역 관련 업체와 상생협력 차원에서 ‘70세 고용을 보장·승계하고 올해 법정 최저시급(7530원)을 웃도는 7780원을 지급함과 동시에 70세를 정년으로 퇴직하는 인원을 충원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정년퇴직자 31명 추가 충원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이미 합의해놓고 이제 와 딴소리라는 얘기다. 그는 또 “고용인원 714명의 용역비 지출이 연 226억원에 이른다. 학부 등록금 수익 1500억여원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학교에 큰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민 부총장의 주장을 자세히 다뤘다. 김 총장의 오른팔 격인 진보 성향의 김아무개 보직 교수도 최근 학생들에게 이런 논리를 들어 설득전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서경지부 연세대 분회는 학교와 용역업체가 했다는 합의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학교와 용역업체가 인력 규모와 노동조건이 달라질 수 있는 합의를 하면서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노조를 배제한 것이다. 또 청소·경비노동자의 임금이 학부 등록금 수입의 15%라는 학교의 주장도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는 2월12일 성명을 내 “등록금은 학부생뿐만 아니라 대학원생도 내야 한다. 대학 알리미(대학정보공시제도)에 따르면, 2016년 연세대 대학원생 등록금 수입은 1192억원이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등록금을 합하면 2673억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연세대가 226억원의 용역비를 지출한 노동자들은 학부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대학원생을 위해서도 노동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대학이 주장하는 15%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8.5%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공대 교수인 민 부총장이 이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실수했다면 한심한 노릇이고, 의도했다면 치졸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대목이다.

2016년 국고보조금 3105억원 1위
2월21일 오후,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학생회관 앞에서 학교 쪽에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2월21일 오후,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학생회관 앞에서 학교 쪽에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용역비 226억원을 운운한 점도 노동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용역업체가 받는 용역비까지 포함된 금액을 내세우며 노동자들이 거액의 연봉을 받는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본관에서 만난 한 청소노동자는 “6년 전 처음 일했을 때 90만원을 받았다. 최저임금이 올라 지금은 140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우리가 연봉 3천만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한번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렇게 편하고 월급을 많이 주면 와서 한번 일해보라”고 했다. 그가 일하는 대학 건물 청소용 세면대엔 온수용 수도꼭지가 없다. 3년 전 비용을 아낀다며 학교가 수도꼭지를 떼어갔기 때문이다.

연세대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 수입에는 등록금뿐만 아니라 법인전입금, 기부금, 국고보조금, 기타 수입 등 여러 항목이 있다. 단적인 예로 2016년 기준 대학별 국고지원금 규모(이하 본·분교 합산)에서 연세대는 154개 사립대 중 최다인 3105억원을 기록했다. 대학 알리미를 보면, 등록금·전입금·기부금·국고보조금 등 교비회계 운영계산서에 명시된 수입항목의 금액을 전부 더해서 산정하는 연세대의 운영수입 총계는 8837여억원(2017년 기준)에 이른다. 여기에 2017년 교비회계 적립금이 5307여억원이나 된다. 청소·경비노동자 31명을 채용하는 데 드는 10억원에 비하면 천문학적 금액이다.

적립금을 사용하라는 요구에 연세대 쪽은 “대부분 장학금이거나 기부자가 사용 목적을 지정한 기부금이라 전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사학 관련 소송을 줄곧 맡아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김정인 변호사는 “사립대 적립금은 적립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특례규칙을 둬 전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사장과 학교장의 의지만 있으면 전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연세대는 2011년 건축기금 477억원을 전환해 기존 장학기금 523억원을 1천억원으로 증액했고 이 사실을 교육부에 보고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연세대는 유독 등록금, 그것도 학부생 등록금만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연세대가 ‘돈이 없다’며 내세우는 또 다른 지출 항목은 장학금이다. 대학 알리미를 보면 장학금 지급 대상이 확대되면서 2016년 장학금으로 615억여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장학금 지급액은 전체 운영수입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평균 1억6천만원인 정교수의 평균연봉(조교수 1억여원)도 학교 지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연봉 2천만원도 안되는 청소노동자들의 인건비는 부담스럽다는 연세대가 교수들의 억대 연봉에 대해서는 일절 말이 없다.

연세대 관계자는 2월23일 과한 통화에서 “서로 입장 차가 너무 커서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년째 동결된 등록금에 인건비 상승으로 매해 10%의 운영비 절감에 나서고 있다. 구조조정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연세대의 민주노총 말살 전략?

결국 돈을 아껴야 한다는 해명이지만, 청소·경비노동자에게만 유달리 야박한 연세대의 행보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경쟁 대학들은 이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애초 세워둔 구조조정 계획을 백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민 부총장이 전자우편을 보낸 2월7일, 서울대는 “청소·경비·시설 용역 파견 근로자 760여 명을 대상으로 다음달 1일부터 계약이 종료되는 근로자부터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 2019년 4월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비슷한 홍역을 치른 홍익대와 고려대도 청소노동자 구조조정 방침을 철회했다. 노동계는 최근 어용노조 가입 강요 논란( 2월7일치 ‘세브란스병원은 민주노총 싫어해’)을 일으킨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연세대가 민주노조 죽이기의 일환으로 구조조정을 기획했다고 보고 있다.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