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20년 넘게 이어지는 자동차 부품 업체 다스 핵심 관계자들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며, 다스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음성 파일이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까닭은 그 속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140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BBK 이래 해가꼬”여러 언론 보도에서 일부 내용이 공개된 다스 핵심 관계자들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은 다스에서 운전기사로 일했던 김종백씨가 만든 것으로 확인된다. 김씨는 이상은 다스 회장(MB의 큰형)의 최측근으로 다스에서 18년 동안 근무했다. 그는 이동형 부사장(이상은 회장의 아들)과 이시형 전무(MB의 아들) 등 다스의 핵심 인물 여러 명과 통화한 내용을 녹음했다.
이 파일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은 물론 이 전 대통령의 사법 처리 여부와 그 수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140억원’ 관련 언급 때문이다. 이 파일에서 140억원을 언급하는 이는 MB의 조카로, 2002년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 때 특보를 지낸 김동혁씨다. 그는 현재 다스에 납품하는 업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김씨는 김종백씨와 통화에서 여러 차례 140억원을 언급한다. 구체적인 발언 내용을 보자. “그 140억 갖다줬잖아. 그래갖고는 몇 년 전에 ‘영감’이 시형이 보고 달라 그래가지고 시형이가 이상은씨 보고 ‘내놓으시오’ 했더니 ‘난 모른다. 동형이가 안다’ 이렇게 된 거야.” 여기서 영감은 문맥상 이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 대통령이 아들 이시형 전무를 시켜서 이상은 회장에게 140억원을 달라고 했는데, 이 회장이 이 돈을 반환하는 일을 아들 이동형 부사장에게 떠넘겼다는 의미다. 이 대화가 성립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이 전 대통령이 140억원의 실소유주임을 등장인물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돈의 성격을 둘러싸고 △BBK로부터 회수한 투자금 △도곡동 땅을 판 돈 △다스에서 조성한 비자금이라는 세 가지 가설이 떠돌고 있다.
먼저 첫 번째 가설을 보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월26일 이 녹취록을 일부 공개하면서 “김동혁은 대화 중간에 BBK를 언급함으로써 140억원이 스위스에서 반환된 돈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는 1985년 15여억원을 모아서 도곡동 땅 1천여 평을 이 전 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현대건설 등에서 샀다. 이들은 1995년 이 땅을 포스코개발에 263억원을 받고 팔았다. 그 매매자금 263억원 가운데 190억원이 다스에 흘러 들어가고, 그 돈이 김경준씨가 운영하던 BBK로 투자되고, 이 돈은 BBK가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를 상대로 벌인 주가조작 대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나온다. 다스는 2011년 이 돈 가운데 140억원을 김경준 BBK 사장의 스위스 계좌를 통해 반환받았다.
김종백은 비자금이라 주장녹음파일을 들어보면 BBK로부터 받은 돈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김종백씨가 “난 그거 갖다줬는데, 제가. 그 돈 140억. 그 자기앞수표로 만들어갖고 갖다줬어요. 제가 갖다줬어요”라고 말하자 김동혁씨가 “BBK 이래 해가꼬”라고 맞장구를 친다. 만약 다스가 BBK로부터 회수한 돈이 맞고, 이 전 대통령이 이 돈의 실소유주라면, 이 전 대통령에게 BBK 주가조작 사건의 책임을 물을 근거가 된다.
반면 SBS는 1월27일 140억원이 ‘도곡동 땅을 판 돈’이라고 보도했다. 김동혁씨 발언 중에 “땅 판 거 있잖아. 너도 잘 알 텐데. 김재정·이상은 반반 통장에 들어갔잖아. 그 140억이 그리 갔잖아”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도곡동 땅을 판 돈은 140억원이 아니다. 매각 대금은 263억원이고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뗀 돈이 200억원에 이른다. 김재정, 이상은씨는 이 돈을 나눠갖지만, 금액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이 음성 파일을 녹음한 당사자인 김종백씨는 1월28일 MBC와 한 인터뷰에서 두 해석이 모두 아니라고 말했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140억원은 다스에서 조성한 비자금”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8년 정호영 특검 당시에 드러난 비자금 120억원과 2005년도에 20억원 정도 소규모의 비자금이 나왔다. 그것을 합친 돈이 140억원”이라고 말했다. 앞서 2008년 정호영 특검은 다스 비자금 120억원을 발견하고도 ‘경리 직원 조○○ 개인이 저지른 비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종백씨의 말이 맞다면 다스 비자금은 다스의 실소유주로 보이는 이 전 대통령이 개입한 조직적 횡령이 된다.
김종백씨는 김동혁씨와 통화한 녹음파일에서도 이 돈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특검 때 걸려가지고 이 돈(100억대 비자금) 어디 갔냐고 해서 제가 세광 이△△ 만나서 경주 외환은행에서 한 장짜리 수표로 바꿔서 이영배씨에게 줬거든요.” 세광공업 전 직원 이△△씨는 조○○씨가 빼돌린 돈을 맡아서 관리했던 인물이다.
이렇게 140억원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는 이유는 공교롭게도 140억원 규모의 서로 다른 돈이 2개 이상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종백씨와 김동혁씨는 ‘이, 그, 저’ 등 지시대명사를 많이 쓰고 있어 녹음파일을 여러 번 돌려 들어봐도 똑 부러진 결론을 내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140억원은 하나가 아니다?은 입수한 녹음파일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해 보도할 때까지 140억원이 어떤 돈인지 정확한 사실의 확정을 미룬다. 이 녹음파일들을 분석한 김경률 회계사 역시 “수사권이 없는 언론 입장에선 비자금의 정확한 액수가 아니라, 확정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백씨와 통화한 여러 다스 관계자들은 모두 그 돈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주어’ 없이 대화를 나눴다. 대체, 140억원은 어떤 돈일까.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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