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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정신으로 남북 100년 평화를”

2019년 3·1운동 100주년 맞아 남북 공동 기념식 준비하는 기념사업추진위 대표단 대담…

“2015년 북쪽 만나 공동 기념식 합의” “3·1선언을 남북통일 사상적 기반 삼아야”
등록 2018-01-23 17:00 수정 2020-05-03 04:28
왼쪽부터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박경조 대한성공회 주교.

왼쪽부터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박경조 대한성공회 주교.

문재인 대통령의 1월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주목받지 못한 키워드가 있다. “내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입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 말미에 새 정부 대표 정책을 아울러 “새로운 100년을 다짐하며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라고도 표현했다. 식민지 지배와 독재정치에 저항해온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역사를 존중하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큰 영감을 줄 수 있는 키워드가 ‘100년’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대해서만 말했을 뿐 그 전제가 됐던 3·1운동의 존재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하는 헌법 전문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건립’됐다고 명기하고 있다. 1948년 7월17일 공포된 제헌헌법 역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썼다. 근대국가로서 대한민국의 뿌리는 3·1운동에 있다는 게 헌법의 정신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는 정부보다 먼저 3·1운동 100주년을 준비해온 단체다. 2014년 3월 천도교 등 7대 종단을 중심으로 공동대표 33인을 선임해 발족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3·1운동 국내외 조사와 국제학술대회,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설립 등의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지난 1월9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길윤형 편집장의 사회로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 박남수 상임대표(75·전 천도교 교령)와 박경조 공동대표(74·전 대한성공회 주교), 박종화 공동대표(73·경동교회 원로목사)가 대담을 나눴다. 원로들은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은 남북 공동으로 치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2년 만에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린 날 이뤄진 대담에서 세 원로는 3·1운동 남북 공동 기념식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3·1운동 정신의 재현이 촛불 정신”</font></font>먼저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짚어보자. 3·1운동 100주년을 한국 사회가 특별히 기념해야 할 이유는?

박남수 3·1운동으로 제국이 ‘민국’이 됐음을 강조하고 싶다. 왕이 아닌 백성이 주인 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또한 3·1운동은 내 것을 내려놓고 모두가 하나 된 운동이었다. 100주년기업사업추진위의 목표는 이 정신이 국민 피부에 가닿을 수 있게 확산하는 것이다.

박경조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제국주의 세력의 폭력에 대한 인간의 저항의식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부터 동학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최근 촛불혁명까지 우리 민족은 폭력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세력에 맞서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끈질긴 저항을 해왔다. (박근혜 정권을 쓰러뜨린) 2016년 말 촛불집회도 3·1운동 정신이 재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3·1운동 정신으로 더 좋은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물론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는 행사만을 위해 모인 게 아니다. 3·1운동 정신을 이 시대에 재현하고, 우리 미래를 위해 3·1운동 정신을 살리려는 것이다. 내년에 100주년 행사 끝난다고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 활동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3·1운동 정신을 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서 국가 미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박종화 3·1운동이 내세운 것은 크게 보면 ‘자주독립’과 ‘만국평화’다. 지금 자주독립의 의미가 있느냐. 있다. 통일이다. 남북분단은 자주성의 상실이다. 통일은 곧 민족의 자주 성취, 진정한 제2의 독립이다. 과거 3·1운동이 식민지 국가로부터의 독립이었다면, 이제는 분단국가에서 통일국가로 독립해야 한다. 통일의 의미도 과거와 다르다. 통일의 목적은 한반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통일되면 동북아 전체, 세계 평화에 큰 도움이 된다. 전세계 시민운동의 역사를 보면 항상 평화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시민 주도의 평화적 거사였다. 이후 한국 근대사에 평화적 거사의 전통이 이어진다.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최근 촛불혁명까지 그렇다.

통일도 평화적 방법으로 이뤄야 한다. 무력이나 군사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유일한 방법은 평화적 방법이다. 평화라는 목표를 위한 수단은 평화뿐이다. 그 메시지를 3·1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3·1운동만큼 평화의 이론과 실재를 입증할 사건이 전세계에 많지 않다. 자부심을 갖고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좌우 없이 민족 하나 된 3·1운동” </font></font>내년 100주년 기념식을 남북 공동으로 치르는 방안을 모색 중인데.

박남수 2015년 8월 금강산에서 북쪽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서 3·1운동 100주년 행사를 함께하자고 합의했다. 그때 북한 쪽은 유엔연합사나 한국 정부가 승낙하겠냐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에게 “남쪽에 미루지 말고 북쪽이 먼저 승낙해라. 그러면 남쪽은 자연스럽게 된다”고 말했다.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돼 못 만났지만, 당시 약속은 살아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에 접어든 만큼 북도 남처럼 조선불교도연합, 조선기독교연맹, 조선천도교청우당 등 여러 종단이 하나로 합쳐 공동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 3·1운동 기념사업이라 하면 국내 행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3·1운동 때 수많은 외국인이 우리를 도와줬고, 타국의 동포들도 사탕수수밭에서 농사지어 번 돈 등으로 독립자금을 대줬다. 남과 북, 그리고 국외 동포, 세 층위가 함께 가야 한다.

박경조 지난해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 대표들이 중국에 남아 있는 임시정부 유적 순례를 갔다.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며, 그동안 내가 남한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반쪽짜리 독립운동밖에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중근·이봉창·윤봉길 의사는 아는데, 중국 현지에서 보니 잊혀진 수많은 좌파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고, 이름 없이 죽어간 그들을 연구하는 현지 역사학자가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 미래 세대에게 중국에서 있었던 다양한 방식의 독립운동을 알려야 할 소임이 우리에게 있다. 남북을 아우르는 새로운 시각으로 독립운동을 조명해야 한다. 좌우 구분 없이 민족이 한데 모여 일어난 게 3·1운동이다. 이번에도 남북이 같이 만나지 않으면 반쪽짜리 행사가 된다. 남쪽에서 아무리 3·1운동 100주년을 외쳐봐야 소용없다.

민족 종교인 천도교는 3·1운동의 주역이자 남북의 종교계를 한데 아우르는 몇 안 되는 창구다. 지난해 11월 류미영(1921~2016)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씨가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 방북 허가를 받아 어머니의 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2016년 작고한 류미영 위원장은 광복군 총사령관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유동렬(1879~1950) 장군의 딸이다.

원로들은 3·1운동이 임시정부 수립의 ‘조연’ 정도로만 다뤄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뉴라이트의 집요한 공세에 시민사회는 1919년 4월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이 진짜 건국일이라고 맞서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뒤 국립현충원을 찾아 작성한 방명록 문구(“국민이 주인인 나라, 건국 백년을 준비하겠습니다”)가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해석될 정도로 한국 근대사 100년은 건국 시점으로만 소비돼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국민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font></font>
“100이라는 숫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수립의 근간이 된 3·1운동의 역사적 가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원로들은 입을 모았다.

“100이라는 숫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수립의 근간이 된 3·1운동의 역사적 가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고 원로들은 입을 모았다.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에서 또 하나 주목하는 부분이 2016년 촛불집회와 3·1운동의 연속성이다.

박남수 3·1운동에 앞서 발표된 독립선언서는 미래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한 문건이다. 임시정부가 먼저냐 정부 수립이 먼저냐 하는, 건국절 논란 속에 3·1운동 100주년이 죽어버렸다는 생각까지 든다. 3·1운동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 국민이 주인이 되는 운동이었다.

박종화 100년 전 일을 되새기자는 과거 회고적인 내용이 아니라 앞으로 올 100년을 내다보고 3·1운동 정신을 위해 평화·자주·독립을 고하는 제2의 선언문을 발표하려 한다. 가칭 ‘서울선언’이라 정해뒀다. 촛불집회처럼 3·1운동은 국가운동이 아니라 ‘국민운동’이었다. 모든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독립을 외쳤을 뿐 아니라 공화주의를 꿈꿨다. 국가의 독립은 당연하고, 국민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운동이었다. 국민의 자유가 있어야 국가의 존립이 가능하다는 선언이었다. 대한민국 운동이 중요하지만 ‘대한국민’ 운동도 중요하다. 시민이 체제를 바꾸고 정부를 바꿨지, 정부가 시민을 바꾼 적은 없다. 국민이 잘돼야 나라가 잘되는 거다. 나라는 껍데기다.

박경조 3·1운동 기록을 보면 종교지도자들은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읽고, 청년들이 ‘파고다공원’에 모여 시위를 시작했다. 일제의 폭압으로 시위대가 체포돼 끌려가고, 소강 국면일 때는 상인들이 철시운동을 벌였고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농민들도 횃불을 들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국민이 일어나서 항거한 정신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 촛불집회도 가만 생각해보니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는 2015년 수립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마스터플랜’에 따라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3·1운동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를 대중과 공유하는 다양한 사업을 벌여왔다. 서울 북촌과 종로 일대 3·1운동의 발자취를 좇는 ‘3·1운동 올레길’, 대한민국임시정부 관련 유적지 답사 프로그램 ‘3·1운동 100년 독립대장정’ 등이 대표적이다. 20명을 선발해 답사비를 지원하는 독립대장정 프로그램은 모집 인원의 10배인 2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방송인 정재환이 사회를 보고 한홍구, 김삼웅 등 역사학자들이 나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제로 얘기하는 팟캐스트 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사업이다. 탑골공원을 3·1운동 역사공원으로 정비하고 100주년 기념관과 기념 조형물 설치 같은 굵직굵직한 사업들도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1919년 33인이던 민족 대표를 3300명, 3만3천 명으로 확장하는 ‘3·1운동 100주년 민족대표’ 사업에는 일반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다.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 누리집<font color="#C21A1A">(www.samil100.org)</font>에서 가입원서를 내려받으면 된다. 현재까지 500여 ‘민족대표’가 모였다. 박남수 대표는 “평창올림픽 때 우리 홍보 부스를 만들어달라고 문체부에 요청했더니, 담당 공무원이 ‘교령님이 별걸 다 하신다’고 한다”며 웃었다. 감기몸살 탓에 황석현 사무처장의 부축을 받아야 했던 그는 남북 공동 사업을 비롯한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여러 사업을 설명하면서 활기를 찾았고, 함께한 박종화 대표와 박경조 대표는 “얼굴에 화색이 돈다”며 다행스러워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3·1 정신, 민족화 아닌 세계화해야” </font></font>앞으로 바람은?

박경조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가 많이 나와서 처럼 흥행했으면 좋겠다.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3·1운동을 소재로 한 좋은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박남수 독립선언서를 보면 3·1운동은 미래를 준비하는 운동이었다. 사람들이 독립선언서를 잘 안 본다.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자, 그런 운동도 하고 싶다. ‘100’이라는 숫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박종화 3·1정신을 민족화하는 게 아니라 세계화해야 한다. 3·1선언을 남북통일의 사상적·민족적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3·1운동도 한류가 될 수 있다. 영국 마그나카르타(대헌장), 프랑스 인권선언, 미국 독립선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한국의 3·1선언이다.

<font color="#008ABD">글 </font>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 </font>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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