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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MB

수사 칼날 턱밑 조여오자 이명박 전 대통령 “정치보복” 초라한 항변

전 다스 사장에 ‘성골 집사’까지 수사 협조적 태도에 깨지는 방패
등록 2018-01-23 15:54 수정 2020-05-03 04:28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서울 삼성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검찰 수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서울 삼성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검찰 수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월17일 오후 5시30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매우 송구스럽고 참담스러운 심정”이라며 말문을 튼 이 전 대통령의 모습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손을 자연스럽게 두지 못하고 기자회견문을 몇 번씩 부산스럽게 들었다 내렸다. 마땅히 눈길을 둘 곳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말을 마친 뒤 잇따라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의 항변은 녹슨 서슬 같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입 열기 시작한 MB 측근들 </font></font>

이 전 대통령에게 검찰 수사가 죄어오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도 4대강 사업, 자원외교, 포스코 수사 등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처럼 초조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는 고속도로와 국도, 간선도로가 모두 뚫린 형국이다. 어디가 덜 막힐지가 문제일 뿐, 어떤 도로를 택하건 목적지에 도착할 가능성이 높다.

여러 갈래로 질주하는 수사는 일일이 가짓수를 나누기도 어렵다. 다스의 실소유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정황,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수사 때 주요 관계자들을 돈으로 입막음했다는 의심까지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광범위한 여론 조작 사건까지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전 대통령을 향하는 칼이 아니다. 방패가 깨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최고권력이 집중된 청와대의 부정이나 기업 비리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서 따위는 좀처럼 남아 있지 않고, 증거는 오래전에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수사는 사건에 가담한 핵심 관계자의 진술에 기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키맨은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이다. 김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과 현대건설 시절부터 함께했으며, 1996년부터 12년간 다스 공동대표를 맡아 일했다. 그는 2008년 ‘BBK 특검’ 조사 때는 다스와 이 전 대통령의 관계를 부인했으나 최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설립에 관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것은, 김 전 사장이 검찰의 오랜 압박에 못 이겨 이런 내용을 털어놓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김 전 사장은 자발적으로 검찰에 이런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 발로 찾아와 제보한 셈이다.

김 전 사장만 틈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최근 뉴스의 핵심엔 이 전 대통령의 ‘성골 집사’라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도 등장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1997년부터 비서관으로 일해온 최측근이다.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 1억8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2년 구속된 뒤 이 전 대통령과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실장은 검찰에 “2011년 10월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여원을 달러로 바꿔 이 전 대통령 쪽에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 일정을 직접 챙기고 조율하는 자리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제1부속 실장이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인 정호성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최측근이 맡는 자리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 대해 많이 아는 인물이 검찰에서 적극적으로 입을 열고 있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시한폭탄</font></font>

이 전 대통령도 이런 기류 변화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일한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1월18일 KBS 라디오 에 출연해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우리에게 아무 문제 없다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을 끊더라”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검찰에 “2008년 이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나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로 상납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이 전 대통령이 알고 있었다는 중요한 증언을 한 셈이다. 물론 김효재 전 수석의 발언 취지는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측근에게 강압 수사를 해 진술을 꿰맞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역으로 해석하면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검찰에 어떤 진술을 하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시한폭탄이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예산 68억원을 횡령해 ‘민간인 여론 조작 조직’에 전달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또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도 1월19일 원 전 원장의 서울 개포동 집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의 고삐를 죄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가 모두 사실로 확인돼 재판에 넘겨진다면 중형을 피하기 어렵다. 그 또한 모든 책임을 이 전 대통령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

한번 금이 간 곳을 보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의 힘으로 균열을 막긴 어렵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쪽은 균열을 막을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친정인 자유한국당이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해도, 한국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낮아져 얼마나 큰 힘이 될지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의 법적 책임만 지는 것은 최악이 아닌 최선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 수사의 키맨으로 등장한 김성우 전 사장, 김희중 전 실장, 그리고 이후 행보가 불안한 원세훈 전 원장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공개하면 그 여파는 상상조차 힘들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MB 수사는 이제 막 시작인지도</font></font>

최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으로 불거진 원전 수출의 경우 국정원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사저 마련을 위해 서울 내곡동 땅을 구입한 2011년에는 김희중 전 실장이 현직으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있었다. 2012년 ‘내곡동 사저 특검’이 출범해 수사를 했지만 사저 땅 매입 대금 11억2천만원 중 6억원의 출처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이 밖에 수십조원의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된 자원외교나 4대강 사업 관련 의혹에 대한 결정적 진술이 어디선가 터져나올 수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수사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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