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미래와 대안을 말하자 친일이 됐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에 맞서 10년 넘게 싸워왔지만…

독도공유론자, ‘위안부’ 합의 지지 낙인찍힌 이신철 교수
등록 2018-01-09 17:32 수정 2020-05-03 04:28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육을 드러내는 전형으로 한국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2001년 후소샤 교과서 파동 이후 일본 교과서는 어떻게 변했을까. 2018년 4월부터 일본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사회과 교과서 24종 가운데 19종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기술이 포함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이를 아예 의무화해 앞으로 교과서에 영토 관련 기술을 할 때엔 ‘독도는 일본 땅이다.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넣도록 했다. 2012년 말 아베 정권이 재등장한 뒤 일본의 교과서 개악이 이어지는데도, 박근혜 정권에선 의례적인 항의 논평 정도를 내놓을 뿐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대응이 거의 없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 본격화한 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일 시민사회를 한데 묶으며 일본의 역사 역주행에 맞서온 단체가 있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역사교육연대)다. 이 단체는 후소샤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2011년 4월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창립됐다. 이후 일본의 교과서 시민단체인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워크21’과 연대하며 일본 내 역사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꾸준히 벌였다.

이신철(54)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맞서온 한국 시민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역사교육연대 창립 멤버이자 단체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이다. 2016년 1월엔 세계적인 ‘위안부’ 연구 네트워크를 표방하며 출범한 일본군위안부연구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친일 독재 미화라는 비판을 받은 뉴라이트 교과서와 박근혜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앞장서 반대했고, 기자들이 믿고 찾는 역사 교과서 전문가였다.

그런 이 교수에게 최근 난데없이 ‘친일’ 딱지가 붙었다. 지난해 11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공모에 응한 그를 표적 삼아 ‘독도 한일공유론자’라는 엉뚱한 딱지가 붙은 것이다. 독도 한일공유론자란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를 한국과 일본이 공동 영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를 일컫는다. 논란이 일자 채용을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는 합격자 발표를 한 차례 연기한 뒤, 지난해 12월29일 ‘합격자 없음’ 결론을 냈다. 1월3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의 얼굴은 수척해 있었다.

엉뚱한 딱지가 붙다
이신철 교수가 2010년 8월 일본 주간지에 기고한 글 ‘지금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생각한다-과거의 극복과 상호이해를 위하여’. 이 교수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비판적인 일본 시민사회와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해왔다.

이신철 교수가 2010년 8월 일본 주간지에 기고한 글 ‘지금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생각한다-과거의 극복과 상호이해를 위하여’. 이 교수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비판적인 일본 시민사회와 연결하는 다리 구실을 해왔다.

2009년 2월 일본에서 열린 독도 관련 한·일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해 발언한 것을 근거로 ‘독도공유론자’라는 엉뚱한 얘기가 나왔다.

당시 토론회에서 일본의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이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일본 내에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이들과는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인 인사다. 와다 교수는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시마네현 어민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어민들의 주변 어장 어업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나는 (와다 교수의 주장 가운데) 한국 영유권 인정 부분이 가치가 있다고 봤다.

일본 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보면, 독도를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로 설명했을 때 한국의 입장을 수긍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일본의 독도 강제 편입은 홋카이도, 오키나와, 대만 등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제국주의 팽창 정책의 결과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이가 많다. 이들과 연대하면,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인정하자는 여론이 일본에서 확산될 여지가 있다. 다만 일부 독도 관련 시민단체가 ‘대화’ 자체를 마치 일본의 영유권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애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합격자 발표일로 공지된 것은 지난해 12월11일이었다. 합격자 발표가 있기 전 12월7일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선 ‘독도 공유론자 이신철 임명 반대’ 집회가 열렸다. 참여 단체들 중에는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항단연) 같은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평화재향군인회, 한겨레신문주주대표단 등이 포함됐다.

같은 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독도공유론자인 이신철씨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실장 임명을 막아달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글에서 “영토를 다른 나라와 공유하자는, 원칙적으로 하면 내란 사범으로 다루어야 할 인물이 국가 요직을 맡게” 됐다며 이 교수 채용 배경에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이 있다고 썼다. 그는 “주진오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을 임명 전부터 페이스북을 동원해 민족사학계와의 관계를 표명하라고 겁박을 한 사람”이라며 “이 사람이 사용한 유사사학이라는 용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대종교·천도교·보천교와 같은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라고 지칭하던 그 단어”라고 비판했다. 게시자가 이 교수 임명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합격자 발표를 사흘 앞둔 12월26일 항단연은 단체 회장을 맡은 함세웅 신부 명의로 문체부에 공문을 보냈다. 일부 인터넷 언론이 보도한 공문 전문을 보면, 이들은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학자를 채용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문체부 장관께서 이신철의 탈락을 강력하게 주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랫동안 한국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함 신부 명의의 공문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문체부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합격자 없음’ 결정을 내린 배경과 관련해 이런 민원을 고려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1월4일 과 한 통화에서 “민원을 검토한 결과 반대하는 분들이 오해한 부분도 있지만, 일부는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학예연구실장은 중책이므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 이신철 교수가 정말 독도공유론자인지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에 포함된 2009년 2월 이 교수 발언 녹취록, 당시 현장 동영상, 당시 공개된 발제문, 이후 이 교수가 일본과 한국 언론에 기고한 독도 관련 글 등을 두루 검토했다. 그러나 이 교수가 독도를 일본과 공유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를 난처하게 만든 또 다른 문제는 박근혜 정권 시절 여성가족부에서 내놓은 일본군 위안부 보고서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시절 ‘위안부’ 보고서 참여 논란 지난해 5월 대선 직전 여가부가 갑작스레 공개한 일본군 위안부 보고서 참여도 논란이 된다.

위안부 문제를 매개로 일본 정부와 치열하게 대립하던 박근혜 정부가 2014년 6월 정부 차원의 백서를 만들기로 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정부의 공식 자료는 1992년 7월 나온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가 전부였던 상황에서 정부 공식 백서 발간은 시민사회가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2015년 말 한·일 정부 간 12·28 합의가 나오고 백서 발간도 물 건너간 일이 됐다가 지난해 5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여가부가 일방적으로 12·28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9장을 추가해 백서를 공개했다. 정부 백서가 아닌 민간 용역 보고서로 지위도 격하했다. 당시 문제가 된 5장과 9장을 제외한 보고서의 내용은 그동안 나온 위안부 관련 문헌 중에 가장 진일보한 것이었다. 특히 역사 부분에선 일본에 당당하게 강제성을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가 통째로 비판받는 점이 아쉽다.

“이신철이 12·28 합의에 담긴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의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이 교수와 관련한 또 다른 가짜뉴스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이 교수가 보고서를 쓰고, 이를 토대로 한국 정부가 12·28 합의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선후관계나 인과관계 모두 사실과 다르다.

일본 정부가 2014년 6월 위안부의 강제성과 동원 과정에서 군이 개입했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뒤, 한국 정부는 그것의 대응 차원에서 정부 차원의 백서를 발간한다고 밝혔다. 그때 이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없었다. 정부 백서의 취지와 내용을 훼손한 것은 여가부였다. 이 교수는 언론 인터뷰( 2017년 5월6일, 위안부 보고서 연구진 “한일합의 두둔, 일방 서술 안돼”)에서 여가부가 일방적으로 내놓은 백서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여가부는 보고서 머리말에 문제가 된 9장은 해당 집필진 개인의 의견임을 명시했다.

이 교수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소속 연구자들은 의견서를 작성해 문체부에 보내기도 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활발하게 활동해온 학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김창록 교수는 1월2일 과 한 통화에서 “위안부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공세적이던 시기에 시작한 것이다. 이 교수가 12·28 합의를 지지했다거나, 그가 친일 인사라고 비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그분들 주장을 살펴봤는데 독도나 위안부 모두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내용이었다. 너무 비약이 심해서 학문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임명이 무산됐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라고 비판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다는 활동을 해온 게 반대 세력에게 빌미를 준 것 같다.

우리 운동의 기조는 대립이 아니라 대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로 바꾼 것도 이런 고심의 결과였다. 우리가 지금 식민 시대를 사는 게 아니라 탈식민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일본 내 식민 지배를 반성하는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차별성 있는 운동을 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한·중·일 3국 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역사 교과서 부교재 도 그런 작업이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공모에 지원한 이유도 외국 군대가 주둔했던 식민지의 상징 용산 미군기지 터를 전세계적인 반식민·탈식민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용산에 식민 지배의 역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세우고, 전세계 탈식민과 반식민의 이론을 제공하는 연구·교육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박물관을 경험하고 싶었다.

세계사적으로 식민지 청산이 제대로 안 됐다. 과거 식민지를 경영한 유럽 국가 어느 곳도 식민 지배에는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법적 책임을 지거나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일본이 ‘전세계적으로 식민 지배를 사과한 나라가 어딨느냐’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식민 지배 사과는 아직 국제규범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과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면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다. 미래를 보고 탈식민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시도가 친일 또는 일본 편향으로 왜곡되고 매도되는 경향이 있다. 명예훼손 소송을 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내 얘기를 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친일 청산 사업의 일환”

이신철 교수 임명에 반대한 항단연 관계자는 1월2일 과 한 통화에서 이 교수 임명 반대 활동의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항단연 친일 청산 사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십수 년 동안 헌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 친일 청산이라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친일 청산인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