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국가정보원 불법 선거운동을 수사하는 검찰이 결정적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경찰 간부가 국정원 직원에게 수사 정보를 넘겨주고 수사를 축소하려 했다는 것이다. 해당 정보를 넘겨받은 국정원 직원 안○○씨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검찰의 국정원 선거 개입 재수사가 탄력을 받게 됐다.
안씨는 당시 국정원에서 서울지방경찰청(서울청)을 담당하던 연락관이었다. 12월1일 보도에 따르면, 안씨는 당시 수사 책임자인 김병찬 서울청 수사2계장(현재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통화하며 수사 상황을 전해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피의자에게 정보 흘린 경찰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경찰은 피의자 정보를 그가 속한 조직인 국정원 쪽에 흘린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범죄를 덮어주려는 정황도 관찰된다. 당시 민주통합당이 경찰과 함께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댓글 공작을 하고 있던 오피스텔을 덮친 것은 12월11일 저녁 7시15분이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2월14일 경찰은 김씨의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복구·분석해 댓글 공작에 활용된 아이디와 닉네임이 적힌 메모장 텍스트파일을 발견했다. 안씨는 검찰에서 “다음날 김 서장이 저와 20여 분간 통화하며 ‘큰일 났다. 상황이 심각하다. 뭐가 나왔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아가 안씨는 “김 서장이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다 알아서 (조사) 분석 범위를 줄여주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증언도 했다. 김 서장은 앞선 과 한 통화에서 “수사 정보를 전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며 “안씨를 조사해보면 내용이 확인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은 그의 주장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어 연결되지 않았다.
은 11월20일 공개된 제1188호 표지이야기에서 2012년 12월11일부터 12월16일까지 경찰과 국정원 간부 10명 사이에 이뤄진 통신기록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이 엿새는 국정원 직원 김씨가 댓글을 달다 발각된 뒤, 경찰이 한밤의 긴급 기자회견에서 ‘수사 결과 댓글 흔적이 없다’고 발표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중간수사 결과 발표 전 집중된 통화통신기록을 보면 실제 김병찬 당시 수사2계장은 안씨와 45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다. 김 서장은 최근 경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제가 문자나 전화로 안씨에게 수사 기밀을 유출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제 수신통화 기록상 1분 이내의 짧은 통화가 많은데 그것은 거의 다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김서장(당시 김 계장)과 안씨 사이에 1분 이상 통화가 이뤄진 시점이 사건의 ‘주요 변곡점’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서울청이 국정원 직원 김씨의 데스크톱과 노트북에 대한 ‘이미징’(저장 매체의 모든 물리적 데이터를 파일 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완료한 시점, 디지털 분석 중 아이디가 적힌 메모장 파일을 발견한 시점 등이다(표 참조). 디지털 분석 상황이 국정원에 실시간 흘러갔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검찰은 11월23일 김 서장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만약 수사 정보가 샜다면, 구멍은 김 서장 하나뿐이었을까. 이 입수한 통신기록을 보면 안씨는 김 서장뿐 아니라 당시 이병하 서울청 수사과장과도 8회에 걸쳐 통신(통화와 문자)을 했다. 이병하 과장이 통화한 시점 중 하나는, 2012년 12월16일 밤 서울청이 디지털 분석 작업을 완료한 직후였다. 이날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치열하게 맞붙은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이 있었고, 그 직후 수서경찰서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둘의 통화가 이뤄진 것은 경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이다.
안씨는 또 당시 최현락 서울청 수사부장과 2회, 김용판 서울청장과 1회 통화했다. 수사 지휘 선상에 있던 주요 간부들과 여러 차례 통화한 것이다. 안씨는 수사 지휘선 밖의 서울청 홍보담당관, 서울청 정보관리부장 등과도 통화했다.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경찰청 수사국장과 통화한 기록도 있다. 수사 지휘선 밖에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은 적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경찰 간부와 국정원 간부를 잇는 연결고리는 안씨만이 아니다. 통신기록을 살펴보면 의문의 휴대전화 번호 9개가 나온다(연결망 그림에서 주황색 점).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번호다. 이 이 번호에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최대 3주 동안 전원이 꺼져 있거나(6개), 신호가 가더라도 받지 않거나(1개), 없는 번호(2개)라는 결과가 나왔다. 사용하지 않는데도 해지하지 않는 점을 봤을 때 일반적인 휴대전화라고 보기 어렵다.
통신기록 역시 일반적인 휴대전화 사용 방식과 다르다. 스팸문자처럼 문자를 발신하기만 한다. 이들 9개 번호는 김병찬, 최현락, 김용판, 안○○, 박원동, 차문희(국정원 2차장), 민병주(국정원 심리전단장), 원세훈(국정원장) 등 경찰과 국정원 양쪽으로 2012년 12월11일부터 12월16일까지 총 234회 문자를 발신한다.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수신한 횟수는 6회뿐이다. 압도적인 송신기록이다. 위로는 국정원장, 서울청장부터 아래로 국정원과 경찰 실무자까지 지휘계 대부분을 아우른다.
얽히고설킨 경찰-국정원 연결선문자로 오고 간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다만 누군가 9개 번호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경찰과 국정원 간부들에게 상황을 ‘보고’하거나 거꾸로 ‘지휘’했을 가능성이 있다. 번호의 주인을 반드시 밝혀야 할 이유다. 통신기록만 놓고 봤을 때 경찰과 국정원을 연결하는 선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의 재수사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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