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3년이 훌쩍 지났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사건의 발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끈질기게 ‘진실의 문’을 닫으려 노력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그 ‘진실의 문’을 여는 특별법이 11월24일 국회를 통과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도 다뤄이날 국회는 본회의에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특별법) 수정안의 표결을 진행해 출석 의원 216명 가운데 찬성 162명, 반대 46명, 기권 8명으로 가결했다. 흔히 ‘2기 세월호법’이라 하는 이 법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뿐 아니라, 1278명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살균제 사건도 함께 다룬다. 한 달 안에 꾸려질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2기 특조위)는 이들 사건의 발생 원인뿐 아니라 수습과 후속 조처 과정의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까지 밝힌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벌여온 사실 은폐 의혹, 세월호 1기 특조위 방해 공작 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아직까지 베일에 가려진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진실도 밝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해 12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적참사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발의 직후인 12월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헌정 사상 처음 ‘신속처리대상 안건’(패스트 트랙)으로 지정한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해당 상임위에서 심사가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180일이 지나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것으로 간주한다. 최종적으로 330일이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11월24일 열린 본회의가 이 법안 통과의 ‘마지노선’이었다.
특별법 통과로 꾸려질 2기 특조위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애초 법안에는 9명 위원 가운데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3명,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이 6명을 추천하도록 돼 있었다. 이번 수정안에선 그사이 정권이 교체된 것을 고려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4명, 야당이 4명(자유한국당 3명·국민의당 1명), 국회의장이 1명씩 추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특조위원 추천 과정에서 9명이 다 선임되지 않은 경우에는 3분의 2인 6명 이상 모이면 위원회를 구성해 특조위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특조위는 필요할 경우 국회에 특별검사의 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법사위가 이 특검 법안을 90일 내에 의결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표결에 부치게 된다. 조사관의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은 조사 대상자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는 1기 특조위가 가졌던 권한에 견줘 강화된 내용이다.
활동 기간 축소는 아쉬움 남아물론 막판 여야 협상 과정에서 원안에서 후퇴한 아쉬운 부분도 있다. 활동 기간은 원안에 ‘기본 2년에 추가로 1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협상 과정에서 ‘기본 1년, 추가 1년’으로 줄었다. 특조위 조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사법경찰관리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한 조항도 삭제됐다.
법안이 통과되는 날 아침까지 진통을 거듭한 부분은 조사 범위와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애초 법안에는 조사 범위를 한정하지 않았으나 여야 협상 과정에서 야당이 범위 축소를 계속 요구했다. 최종 합의안을 보면, 1기 세월호 특조위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완료한 사안은 조사기록, 재판기록 등의 열람·등사·사본 제출 요구 등의 방법으로만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1기 조사위와 선체조사위가 조사를 끝낸 영역의 물리적인 재조사는 불가능해진 셈이다.
박주민 의원은 “야당은 조사 제한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쪽에서는 기존 조사위에서 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사안이나 불기소 처리된 사안, 새로운 단서나 증거가 제출된 경우에는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지막까지 고수했다. 조사 범위 제한 규정 때문에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2기 특조위 활동을 절실히 기다려온 이유는, 2015년 8월 활동을 시작해 이듬해 6월 강제 종료된 1기 특조위가 정부의 방해로 제대로 활동을 못했기 때문이다. 1기 특조위 활동의 세부 사항을 정하는 시행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당시 해양수산부는 특조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조사 범위를 줄이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포함시켰다. 이석태 1기 특조위 위원장의 비서관을 지낸 이호영 박사가 쓴 ‘세월호 특조위 활동과 박근혜 정부의 방해’ 자료를 보면, 당시 시행령에는 진상 규명 업무를 ‘기존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과 조사’로만 규정하는 등 기존 조사 결과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이석태 위원장은 이에 반발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까지 벌였지만 해수부는 극히 일부만 수정한 시행령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예산 삭감과 조사 방해 등 노골적인 방해 공작도 지속됐다. 특조위는 2015년 예산으로 약 159억원을 신청했으나 70억원 줄어든 89억원만 지급됐다. 2016년에도 198억원을 신청했지만 61억원이 배정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줄어든 예산도 늦게 지급해 조사원들에게 임금을 주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또 해수부는 특조위 설립준비단 당시 파견했던 공무원을 무단으로 복귀 조처하는 등 사실상 위원회 활동을 마비시키는 데 앞장섰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지난 9월 작성한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특조위 활동 방해’ 자료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해수부가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잘 정리돼 있다. 2015년 11월 해수부는 특조위의 ‘대통령 7시간’ 조사 의결과 관련해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을 통해 △여당 위원의 전원사퇴 △항의 기자회견 △필요시 특조위 운영 비판 성명서 발표 등의 지침을 마련해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 해수부는 공식적으로 이 지침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실제로 여당 위원들은 사퇴를 표명하고 항의 기자회견을 여는 등의 행동을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참사2016년 6월 1기 특조위가 정부에 의해 강제 종료되고 세월호의 진실도 묻힐 위기에 놓였던 절망의 시간에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고 새로운 정부가 수립됐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11월18일 영결식을 치르고 목포신항을 떠났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여전히 세월호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마련된 2기 특조위를 제대로 이끌 위원들을 구성하는 것은 이제 국회의 몫이다. 새로운 특조위는 이제 진실의 문을 열어야 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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