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여전히 구명줄은 없었다

<한겨레21> 교육연수생 3일간 아파트 외벽 노동 체험…

경남 양산 추락사 뒤에도 안전관리 강화 없고 감독자 안 보여
등록 2017-09-13 21:54 수정 2020-05-03 04:28
지난 6월8일 오전 경남 양산의 15층 아파트에서 외벽 보수 작업을 하던 김아무개(46)씨가 12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주민 서아무개(41)씨가 옥상에 올라가 김씨가 의지하던 밧줄을 끊은 탓이었다. 서씨는 당시 경찰에 “음악을 꺼달라고 말했는데 계속 음악 소리가 들려 항의하러 옥상에 올라갔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밧줄만 보이기에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씨가 옥상에 올라갔을 때 사람이 보였다면 어땠을까. 오남매의 아버지 김씨가 사망한 뒤, 고위험 고공 노동의 안전관리 강화를 주문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윤수현 교육연수생은 “막을 수 있던 사고였다. 외벽 노동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야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며 외벽 노동 체험에 나섰다. _편집자
문수 형님의 지도로 준호 형님이 청소를 하고 있다. 안전장비 없이 난간에 걸터앉은 문수 형님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문수 형님의 지도로 준호 형님이 청소를 하고 있다. 안전장비 없이 난간에 걸터앉은 문수 형님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유리창 청소 로프공 모집합니다’ ‘초보 로프공 모집’….

지난 8월 초부터 외벽 노동 체험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채용 사이트를 찾았다. 외벽 노동자는 ‘로프공’으로 불렸다. 일자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러 외벽 노동 가운데 외벽 청소 인력을 모집하는 업체는 10여 곳이었다. 이들이 명시한 보수는 ‘월 300만원’부터 ‘연봉 5천만원’까지 다른 일자리에 견줘 ‘고소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페이(급여)가 제일 센’ 두 곳에 전화했다. 월 400만원을 준다고 명시한 A환경은 신체조건부터 물었다.

“키는 몇이에요? 몸무게는?”

“177cm에 70kg요.”

“딱 좋네.”

사장은 ‘전문직’이라고 했다

연봉 5천만원을 준다는 B환경은 면접 보러 사무실에 오라고 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쪽에 위치한 B환경의 사무실은 2층 주택의 반지하에 있었다.

“이거 전문직이야, 전문직. 잘할 자신 있어?”

사장은 외벽 청소가 전문직이라고 했지만 관련 경험이 전무한 나를 바로 채용했다. 그는 곧바로 근무조건을 설명했다. 7일 동안은 교육 기간이라 일당 5만원이 지급되지만 30일 이상 일해야 지급된다고 했다(3일 일한 나는 결국 15만원을 받지 못했다). 월급은 고정급이 아니라 ‘평당 180원’이라는 단가에 따라 일한 만큼 가져간다고 했다. 30평대 20층 아파트의 경우, 한 라인의 유리창을 닦으면 10만8천원(180×30×20)을 버는 것이다. 1호부터 4호까지 네 라인 아파트 한 동을 닦으면 하루에 43만2천원을 벌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왠지 횡재한 듯한 기분은 사흘 뒤 서울 성동구 ㄹ아파트 20층 옥상에 섰을 때 산산이 부서졌다.

8월17일 아침 7시30분. 팀원 7명을 아파트 상가 편의점 앞에서 만났다.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작업 설명이 끝난 뒤 팀장이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가”라고 말했다. “갈 거면 인사는 하고 가요, 그냥 도망가지 말고.” “대학까지 나온 놈이 왜 줄을 타.” 다른 팀원들이 거들었다. 뒤늦게 온 사장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근로계약서인 줄 알았는데 ‘확인서’라고 적힌 문서였다. 확인서에는 ‘교육 기간 중 임금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장은 주로 ‘돈 얘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절실하지 않으면 이 일 못해.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봐.” 팀장이 말했다.

50대인 팀장은 로프공 경력 20년, 40대 문수 형님은 10년이라고 했다. 나머지 팀원인 준호(37) 형님, 기창(34) 형님, 동혁(28) 형님, 성민(26), 준영(22)(이상 모두 가명)은 모두 경력이 1년 안팎이었다. 준호 형님은 내가 처음 출근한 8월17일이 겨우 7일차였다. “석 달 전까지는 사장님 소리를 들었다”고 준호 형님이 말했다. 사채업으로 서울 마포·종로에서 유명했다는 그는 다시 사업자금을 모으려 “줄을 탄다”고 했다. 기창 형님은 “카드빚을 갚기 위해서”, 막내 준영은 “군대 가기 전에 1억 벌려고”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지, 좀 있으면 웬만한 사무직보다 많이 벌어.” 기창 형님이 말했다. 사장이 돈 얘기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법대로 하면 시간이 없다
난간에 거치된 로프. 추락을 막기 위해 있어야 하는 ‘구명줄’은 보이지 않는다.

난간에 거치된 로프. 추락을 막기 위해 있어야 하는 ‘구명줄’은 보이지 않는다.

외벽 청소는 준비 과정이 꽤 복잡했다. 우선 로프를 옥상 지지대에 묶는다. 외벽 노동을 위해 설치된 낮은 기둥에 한번 묶고, 옥상 위에 설치된 구조물 기둥에 다시 한번 묶었다. 그다음 로프를 내린다. 로프를 내릴 때는 지상에 닿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한데, 20층에서 육안 확인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 뒤 로프에 ‘작업 공간’인 비계(작업용 발판)를 설치한다. 로프에 매면 왔다갔다 이동이 가능한 장치인 ‘샤클’에 안전벨트와 작업의자, 세제통, 호스를 결속한다. 이것만 해도 족히 30kg은 넘게 느껴졌다. 몸무게를 고려하면 0.1t(톤) 무게가 로프 하나에 매달린다. 로프 지름은 1.8cm로 최대 3t 무게를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첫날엔 팀장을 따라다녔다. 주로 옥상에서 로프와 호스를 내리는 일을 맡았다. 로프가 옥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갈 때는 중력 때문인지 빠른 속도로 내려갔는데, 로프에 휘말려 무게중심을 잃으면 난간 밖으로 추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팀장은 그것보다 청소 세제를 만들 때 쓰는 락스 원액을 조심하라고 했다. “락스통 근처에는 가지 마. 그거만 조심하면 돼.”

사실 작업 현장에 로프가 하나 더 있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 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제6장 (추락 또는 붕괴에 의한 위험방지), 제63조 달비계(높은 곳에 매단 작업용 발판)의 구조 관련 조항에서 “근로자의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달비계에 안전대 및 구명줄을 설치”하라고 규정했다. “구명줄? 그거 언제 다 챙겨.” 팀장은 “줄 내리는 것도 시간”이라고 했다. 사흘 동안 외벽 청소를 하면서 구명줄이 내려간 일은 없었다. ‘법대로’ 하면 노동자가 로프와 구명줄에 이중으로 매달리기 때문에 로프에서 떨어져도 구명줄에 의지할 수 있다.

옥상이나 지상에서 작업을 감독하는 사람도 따로 없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5조는 달비계가 쓰이는 외벽 노동을 포함해 모두 19종의 작업에 대해 “관리감독자가 유해·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옥상이나 지상 어디에도 관리감독자는 없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관리감독자의 위치는 작업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옥상이나 지상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작업이 이뤄지는 장소에서 모든 사람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외벽 청소의 경우 옥상이나 지상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홍종기 ‘노무법인 삶’ 노무사는 “아파트 관리소도 안전 조치의 책임이 있다. 그들도 현장을 감독해야 한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작업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구명줄을 설치하고 작업관리자가 배치되는 사전 준비 작업에만 넉넉잡아 1시간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팀장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 ㄹ아파트는 10개 동과 주민센터 건물로 이뤄졌다. 관리소에서 제공하는 청소 시간은 5일이었다. 팀장은 아파트 주민들이 외벽 청소를 싫어한다고 했다. “너 같으면 하루 종일 물 떨어지고 창문 밖에 사람 매달린 거 보고 싶겠냐.” 팀원 성민은 “여기 끝나면 또 일산 가야 한다”며 “스케줄이 있으니 빨리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종종 지상에 닿지 않는 로프

2일차에는 성민을 따라다녔다. 팀장은 2일차부터 ‘줄을 타야 한다’고 했지만, 작업의자가 없어 못 탔다. 1일차와 같이 줄을 내리고 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성민은 유독 안전에 무감각했다. 로프는 기둥에 한번만 묶었고, 로프가 아파트 난간 모서리에 긁혀 끊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난간에 설치하는 보호대도 챙기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샤클에 결속하지 않은 채 로프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는 아파트 한 동을 하루 만에 다 닦을 수 있는 ‘능력자’였다. 줄 잘 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냥 하면 된다”면서도 “나처럼만 하지 말고”라고 했다.

크고 작은 사고는 계속 있었다. 2일차, 팀장의 로프가 지상까지 닿지 않고 4층에서 끝났다. 로프 끝이 지상에 닿았는지 확인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로프에 문제가 있다는 걸 직감한 팀장은 작업을 중단했고, 막내 준영이 발견할 때까지 가스 배관에 40분 동안 매달려 있었다. 3일차엔 문수 형님의 줄이 2층에서 끝났다. 마침 내가 지상에 있어서 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 지난 8월11일 부산에서 같은 이유로 외벽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있었다. 아파트에서 도색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추락했는데, 목격자들은 “5층 밑으로 로프가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지상에 관리감독자가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오늘은 줄 타야지.” 3일차, 기창 형님과 함께 로프를 탔다. 청소 도구 말고 일단 몸만 작업대에 실었다. 장비를 챙기던 중 샤클에 브레이크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브레이크는 샤클에 붙은 작은 걸고리다. 로프를 타고 내려가다 작업 위치에서 로프를 브레이크에 걸면 고정된다. “꽉 잡고 있으면 문제없어. 로프를 한 바퀴 돌려서 샤클에 얹으면 돼.” 그렇게 첫 ‘줄타기’가 시작됐다. 고소공포증보다 이틀 동안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걱정한 것보다 로프는 안정적이었고, 로프에 매달려 있는 것은 기술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별거 없지?” 성민이 말했다. 모두 내가 자질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창 형님은 “난 처음부터 건물 끝에서 줄 탔어. 바로 옆이 한강이었다고. 이 아파트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했다. 준호 형님은 “난 처음에 줄 타면서 작업도 같이 했다”고 말했다. 로프를 처음 타는 과정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이는 없어 보였다. 로프공은 전문직이라 말하던 사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도 죽음이 두렵다

3일차 점심시간, ‘살충제 달걀’ 이야기가 나왔다. “달걀 잘못 먹으면 죽는 거 아니야? 불안하네.” 기창 형님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가 진짜 두려워하는 게 살충제 달걀인지, 아니면 점심 먹고 나서 탈 로프인지는 알 수 없었다. 8월 한 달에만 언론에 보도된 외벽 추락 사고는 2건인데 모두 사망 사고였다. 위험 노동자들의 안전은 순전히 이들의 선택에 맡겨졌다. 그래도 되는 걸까.

글·사진 윤수현 교육연수생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