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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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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늘어서 소득이 줄었다

혼자 돌봄·노동하다 가난해지는 한부모

현금 지원 현실화와 ‘양육비 대지급법’ 필요
등록 2017-09-05 18:51 수정 2020-05-03 04:28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는 싱글맘 김향숙씨의 초등학생 딸은 매달 아동양육비 12만원을 지급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중학생 아들 앞으로는 지원이 거의 없다. 김진수 기자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는 싱글맘 김향숙씨의 초등학생 딸은 매달 아동양육비 12만원을 지급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중학생 아들 앞으로는 지원이 거의 없다. 김진수 기자

행복한 한때였다. 남편과 아내와 딸은 서로 아꼈고 의지했다. 생활도 풍족했다. 부부는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해 한 달에 1천만원씩 벌어들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성공한 남편은 돈 앞에 무너졌다. 한 달에 보통 1천만원, 적게는 200만~300만원씩 유흥비로 탕진했다. 하루 술값으로 900만원을 쓴 적도 있다. 급기야 파산 위기에 몰린 남편은 폭력성을 드러냈다. 남편이 두렵고 원망스러웠던 아내는 결혼 10년 만인 2013년 이혼을 결심했다. “재산을 나누고 위자료를 받기는커녕 대출받아 남편에게 300만원을 건네고서야” 이혼에 반대하는 남편과 협의이혼을 할 수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아동양육비 12만원이 끊겼다</font></font>

불행은 길었다. 구혜미(41·가명)씨에겐 당장 딸과 둘이 먹고사는 일이 급했다. ‘이혼녀’ 딱지보다 ‘가장’이라는 새 이름이 더 버거웠다. 부모님 집으로 들어간 뒤 공장에 출근했다. 하루 13시간씩 일해 180만~190만원을 벌었다. 그럭저럭 생계는 해결됐지만, 혼자 남은 딸이 걱정이었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다시 취업해 하루 9시간으로 일을 줄였다. 월급도 150만원가량으로 함께 줄었다. 부모님에게 생활비·병원비로 40만원을 주고 나면, 그는 늘 돈에 쫓겼다. “양육비는 고사하고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 딸에게도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주는 전남편”에게 기대할 것은 전혀 없었다.

이혼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9살 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가 ‘한부모가족’ 지원을 신청할까 하는데 괜찮을까. 친구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는데….” 일찍 철든 딸은 엄마를 더 걱정했다. “나는 창피하지 않아. 지원받아서 방과후수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 딸의 말에 안심한 엄마는 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엄마 또는 아빠와 만 18살 미만(취학시 22살 미만) 자녀로 구성된 한부모가족 중 저소득 가구에 주어지는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후 정부가 주는 아동양육비(2017년 월 12만원), 학용품비(연 5만4100원), 방과후수업 자유수강권(연 60만원)으로 구씨는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빠듯한 생계에 지쳐가던 그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다. 지난 1월 파견업체는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민원인 대상 전화 상담을 하는 일자리를 제안했다. 지금보다 10만원 정도 오른 월급을 받을 기회였다. 이직한 다음날, 통장에는 월급 160만원이 찍혔다. “생활이 나아지겠다” 싶었다. 그러나 며칠 뒤 동주민센터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된 급여가 (지원) 기준 금액을 4만원 초과해 더 이상 지원이 안 됩니다.” 그의 예고대로 매달 21일에 지급되던 아동양육비 12만원은 더 이상 통장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으려면, 올해 2인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월 146만3513원(중위소득 52%) 이하여야 한다. 소득인정액이란 소득평가액(실제 소득에서 지출비용 등 제외)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주택·자동차 등을 소득으로 환산)을 더한 금액을 말한다. 구혜미씨의 경우 10만원가량 월소득 증가로 지원 기준선인 ‘월 146만3513원’에서 ‘4만원’을 초과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구씨의 경제적 능력이 회복된 것으로 정부가 판단했다는 의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빈곤 사각지대’ 한부모가족</font></font>

정부의 지원 철회로 그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월급은 최대 10만원 정도 늘었지만 아동양육비 12만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올해 초,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 딸을 위해 난생처음 보냈던 과목당 3만원짜리 학습지 수업도 중단했다. “‘방학 때는 잠깐 쉬자’는 핑계를 댔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그나마 지원 기준이 별도로 ‘월 168만8669원’인 방과후수업 자유수강권(연 60만원) 지원은 계속 유지돼, 딸이 방송댄스와 요리 수업을 계속 들을 수 있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싱글맘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고, 소득을 (지원 기준 아래로) 계속 낮게 유지해야 하는지” 구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2016년 말 기준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는 가족은 22만6385가구다. 싱글맘 가족이 17만5281가구(77.4%), 싱글대디 가족이 5만1104가구(22.6%)다. 사별이나 이혼 또는 결혼하지 않은 미혼 상태로 한부모가족이 된 전체 181만6천 가구의 12.5%다.

한부모가족은 경제적 빈곤 상태나 그 경계선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혼자 벌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홀로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이들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한부모가족 2552가구를 실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취업한 싱글맘·싱글대디 중 상용노동자는 48%에 불과했다. 임시·일용노동자는 36.7%, 자영업자와 무급가족봉사자도 15.3%나 됐다. 그로 인해 한부모가족의 월평균 소득은 189만6천원(2014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 평균소득 390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6%에 그쳤다.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저소득 한부모가족을 대상으로 한 정부 지원은 많지 않다. 일단 기준이 까다롭다. 앞서 소개했듯,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52%를 밑돌아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바로 위의 차상위계층(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50% 이하)과 비슷한 수준이다. 월 소득인정액으로 따지면 3인 가구는 189만3276만원, 4인 가구는 232만3038원 이하만 혜택을 받는다는 의미다.

이 기준은 한부모가족 지원사업이 시작된 1992년(당시 기준인 ‘최저생계비의 130%’를 중위소득으로 환산하면 52%) 이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지난 25년간의 물가상승률과 노동환경 악화를 고려하면 사각지대가 계속 확대돼온 셈이다. 한국한부모연합을 비롯해 관련 시민단체에서 “중위소득 70%까지는 한부모가족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좁은 문을 통과한 이들은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을까. 현재 한부모가족 지원사업의 핵심은 매달 현금으로 지급되는 아동양육비다. 올해 저소득 한부모가족에 속한 만 13살 미만 자녀에게 주어지는 양육비는 월 12만원이다. 그나마 만 12살 자녀에게 월 10만원씩 주던 지난해보다는 사정이 좀 나아지긴 했다. 그러나 싱글맘·싱글대디는 ‘만 18살 이하’ 미성년 자녀에게 지금보다 인상된 양육비가 지원되기를 바란다. 중·고등학생 자녀에게 교육비가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장 강력한 대책은 ‘양육비 대지급’</font></font>

정부의 재정 여력도 있다. 여성가족부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양육비 지원 대상이 되는 자녀 나이를 ‘만 14살, 지원 금액은 월 13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그런데도 총예산은 올해 925억원에서 내년 918억원으로, 오히려 7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전체 아동 인구와 함께 수급 아동 인구가 줄어들면서, (양육비) 지원 대상은 확대되더라도 총지급액은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내년 예산안에서 전체 복지 예산 증가율이 12.9%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한부모가족 자녀의 양육비 현실화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저소득 한부모가족 범위(중위소득 52% 이하)를 넓히고, 현금을 지원하는 자녀의 나이와 금액을 확대하는 방안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의 고시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4년 전 이혼한 김향숙(43)씨는 한 회사의 녹즙을 배달해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번다. 두 아이를 돌보려면 온종일 직장에 매어 있는 일을 할 수 없어서다. 대신 “10원도 아쉬운” 그는 아이들을 위한 건강보험을 제외하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버티는 그에게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앞으로 나오는 12만원의 아동양육비와 60만원 상당의 방과후수업 자유수강권이 큰 보탬이 된다.

걱정은 첫째아들이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아프다. 신장 기능이 30%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의료비 지원을 받을 길은 없다. 만 13살을 넘은 아들에게 나오는 지원은 연 5만4100원의 학용품비가 거의 유일하다. 취미생활을 주로 가르치는 방과후수업은 국·영·수 공부가 필요한 아들에게 별 쓸모가 없다. “아들의 식단·건강 관리를 제대로 해주려면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는데, 아픈 애를 두고 돈 벌러 나갈 수가 없어요. 형편이 너무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하려 해도, (같이 살지 않는) 부모님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하니까 답답해요.”

온라인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싱글대디 최강현(42)씨는 “다 필요 없이 정부가 전아내를 대신해 양육비를 우선 지급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2011년 이혼하면서 두 아이는 그에게 맡겨졌다. 원래 아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조건으로 집 보증금 3천만원을 아내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이혼 판결이 나던 날 아내는 말을 바꿨다. “아이를 못 키우니 법대로 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는 일용직 일자리와 한부모가족 지원금으로 버티다, 양육비이행관리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양육비 청구소송을 냈다. 결국 지난해 8월 재판부는 ‘전아내는 그동안 밀린 양육비 1500만원과 (향후) 양육비로 매달 1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년의 소송 기간에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던 전아내는 이마저도 무시했다. “전아내 명의의 재산이 없으면 양육비를 강제로 압류할 방법은 없다”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말에 최씨는 “자꾸만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최씨는 마지막으로 ‘양육비 대지급제도’ 도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가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비양육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제도로, 가장 강력한 한부모 지원 대책으로 꼽힌다. 19대 국회인 2012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양육비 대지급법’이 발의됐으나 제대로 된 논의 없이 폐기됐다. 이후 20대 국회에선 관련 법이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2014년 3월 여성가족부 산하에 설치된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양육자가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당사자 간 협의·소송·채권추심 등을 지원하고는 있다. 그러나 양육비 지급이 확정되더라도 비양육자가 타인 명의로 재산을 옮기거나 버티면 더 이상 강제할 수단이 없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는 출범 이후 지난 7월 말까지 1만1487건의 상담이 공식 접수됐으나, 실제 받아낸 양육비는 192억원에 그친다. “한부모가족이라도 아이는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날 권리가 있다. 국가는 경제적 능력이 안 되거나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부모들을 ‘가난하게 살라’고 방치하지 말고 책임져야 한다.”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대표의 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문 대통령 공약이었으나…</font></font>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 양육비 대지급제도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7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이 내용이 빠졌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이라 정부 내부의 국정과제 세부 계획서에는 이 제도를 어떤 틀로 마련할지, 해외 사례는 어떤지 장기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혼자서도 고통 없이 아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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