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font size="4"><font color="#008ABD">전 정부 민정수석실 문건 300여 개 발견</font></font>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중에 청와대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문건이 나왔다. 7월14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민정비서실 공간을 재배치하다가 이전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생산한 300여 개의 문건을 발견했다”며 이런 내용을 공개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지침, 찬반 입장, 언론 보도 등의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제목의 문건에 위와 같은 손글씨 메모가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대응, 금산분리 원칙 규제 완화 지원’ 등 정부가 행사할 ‘영향력’의 구체적인 내용도 적혀 있었다.
캐비닛 안에서 발견된 문건과 메모는 2014년 6월11일~2015년 6월24일 사이의 날짜가 적힌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논의 자료, 각종 현안 검토 자료 등이다. 박수현 대변인은 “자필 메모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일부 내용을 공개한다. 사본을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시작된 직후 법원을 통해 청와대에 ‘사실조회 요청’ 형식으로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전이라 당시 청와대는 “관련 자료가 없다”고 회신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내용은 현재 진행 중인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의 재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삼성물산의 최대 단일 주주(2015년 3월 기준 11.43%)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는 과정에 청와대와 삼성의 은밀한 커넥션이 있었다는 것이 재판의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이재용 독대(2015년 7월) 훨씬 이전에 작성된 자료라면, 청와대가 일찌감치 치밀하게 ‘삼성 승계 지원’을 기획했음을 보여주는 주요 증거가 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는 지난 4월7일 1차 공판을 시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부회장의 재판을 일주일에 2~3일씩 이어오고 있다.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재판은 7월12~14일 사흘 사이에 크게 요동쳤다. 12일에는 정유라씨가 돌연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이 ‘말 세탁’을 했다는 특검 수사 결과를 지원사격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14일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증인으로 나와 “미래전략실은 커튼 뒤에 숨은 구태의연한 조직”이라는 등 삼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 4월 첫 재판 이후 다섯 달 만에 처음으로 박영수 특별검사도 14일 직접 법정에 나와 무게감을 보탰다.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최순실씨는 사실상 “같은 배를 탄 공범”(4월7일 공판에서 특검팀 관계자)이나 마찬가지다. 각각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뇌물을 준 쪽(삼성)과 뇌물을 받은 쪽(박근혜·최순실)의 유·무죄 여부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탓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변호인단이 “안 도와줬을 때 최순실이 해코지할 것이 두려워” 정유라의 승마 지원을 했다는 논리를 펴면서도, 7월10일 열린 박근혜·최순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부회장에게 모든 질문의 증언을 거부하도록 한 까닭이다.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발을 심하게 찧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유라, 삼성이 말 사준 정황 ‘깜짝’ 증언</font></font>이재용 부회장의 1심 재판 결과는 박근혜·최순실씨 재판에도 영향을 미친다. 삼성 쪽 변호인단은 물론이고 박근혜·최순실 변호인단까지 재판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특검과 변호인단 양쪽은 법정 안팎에서 팽팽한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다.
7월12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유라씨를 둘러싼 신경전이 대표적이다. 정유라씨는 이날 재판에 그야말로 ‘바람처럼’ 등장했다. 정씨는 7월8일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변호인을 통해 출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터였다. 정씨와 최순실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8일 기자들에게 “검찰이 3차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인 신청한 것은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형사사건과 직결되기 때문에 나가지 않는 것이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길이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재판 전날인 11일에는 법원에 불출석 사유서까지 제출했다.
그런데 정씨는 재판 당일 갑자기 증인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 변호인단은 물론이고 정씨 변호인단도 크게 당황했다. 더구나 정씨는 재판에서 그동안의 삼성 쪽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어머니인 최순실씨와도 상반되는 증언을 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말 교환’이라는 건 어머니 최서원(최순실)이 ‘독단적으로 한 거다’라고 말하고 있다. 삼성 측 모르게 말 교환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나?”(특검 관계자)
“아뇨. (승마 코치인 크리스티앙 캄플라데한테 물었더니) 말 바뀌기 바로 전날 엄마, 박상진 삼성전자 전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 전무 세 분이 만났다고 말했다. (캄플라데와의 대화) 음성녹음 파일도 있다.”(정유라)
2016년 10월, 정씨는 자신이 타던 말 3필(살시도, 비타나V, 라우싱1233)을 다른 말 2필(블라디미르, 스타샤)로 교체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언론이 취재에 들어가자 삼성이 말을 사준 사실이 드러날까봐 ‘세탁’하기 위해 말 이름을 ‘살시도’에서 ‘살바토르’로 바꿨다고 주장한다. 반면 삼성 쪽은 최순실씨가 삼성 소유인 말을 마음대로 교환하려다가 무산된 것이라고 맞선다. 박상진 전 사장은 특검 조사와 재판에서 “최씨가 요청해 어쩔 수 없이 말 3마리를 사줬지만 말은 삼성 소유였고, 이후 블라디미르 등 새로운 말 구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정유라씨가 특검 쪽 손을 들어주는 증언을 한 셈이다. 정씨는 2016년 1월께 “살시도를 우리가 구입하면 안 되는지”를 묻자 최순실씨가 “말을 굳이 돈 주고 살 필요 없다. 네 것처럼 타면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뒤 한국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최씨가 “삼성이 너만 지원해준다고 소문이 나면 시끄러워지니까 살시도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 삼성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 토 달지 말고 이름을 바꾸자”고 말했다고도 했다. 말 이름은 ‘S’로 시작하는 ‘살바토르’로 바꿨다.
정씨는 삼성이 말 교환을 몰랐을 수 없다는 취지의 증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엄마가 ‘삼성에서 말을 바꾸라고 한다’고 얘기했는데 (삼성이)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는지 더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 말 중개상이자 승마 코치인 안드레아스가 삼성이 줘야 할 돈이 안 들어온다면서 “삼성 니즈 투 페이(Samsung needs to pay)”라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특검팀은 삼성이 말을 매각한 것처럼 안드레아스와 허위 계약한 뒤 말 소유권을 ‘세탁’했다고 의심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김상조 “이재용, 거의 매일 회의한다고 들어”</font></font>이재용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정씨가 3차 구속영장이 청구될지도 모르는 상태라서 특검이 원하는 대로 증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씨가 승마 지원과 관련된 각종 서류를 본 적도 없이 어머니인 최순실씨에게 들은 이야기만 전하기 때문에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도 주장했다.
특검이 정씨의 재판 출석을 회유 또는 협박했다는 주장에 대해 정씨는 “여러 가지 만류가 있었고 나오기 싫었지만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7월14일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참석한 박영수 특검은 “공개된 법정에서 증언한 것을 강압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며 회유·협박 논란을 일축했다.
정유라에 이어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7월14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특검팀에 힘을 실어줬다.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에 김 위원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 등을 포함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편법성을 앞장서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는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들에게 “(현직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증언하는 데) 부담이 있었지만 시민으로서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저의 증언이 아마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단기적으로 큰 고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부회장과 삼성, 한국 경제 전체 발전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 김상조 위원장의 증언은 삼성 입장에선 뼈아플 대목이 많았다. 특히 ‘이재용의 책임’과 관련해 핵심 증언이 나왔다.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지고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현안에 대해 어떻게 보고받는다고 들었나?”(특검팀 관계자)
“김종중 삼성전자 전 사장(CFO)에게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이건희 회장이 건재할 때는 참모조직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 뒤에 기본적인 안을 마련해 보고하면 회장 최종 승인을 받는 구조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에는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김종중 사장 4명이 거의 매일 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하는 것으로 들었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이는 그동안 “모든 책임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에게 있다”던 삼성 쪽 주장과는 크게 다른 증언이다. 삼성 쪽은 특검 수사 과정이나 재판에서 일관되게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에 최지성이 (이재용에게) 얘기해주긴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은 최지성이 했다” “승마 지원 등과 관련해 이재용에게는 일반적인 보고 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그룹경영 정보를 공유하기만 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김상조 위원장의 증언대로라면 거의 매일 이재용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핵심 참모들 사이에 회의가 있었던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의사결정의 40%는 이재용 부회장, 나머지는 참모 건의대로 결정된다고 김종중 전 사장에게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미래전략실 기획하에 결정이 이뤄지고 집행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도 증언했다. 또한 그는 대통령이 ‘부의 편법 승계에 반대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입장만 표명했어도 금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었을 것이므로 삼성이 편법 승계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재용 선고, 8월 중순 전망 </font></font>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은 이르면 8월 초에 결심공판이 열린 뒤 8월 중순께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다. 재판부는 7월12일 공판에서 “결심 공판 기일을 8월2일로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은 3주간은 핵심 증인들이 출석할 예정이다. 7월19일에는 한 차례 증인신문에 불출석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26일에는 최순실씨를 부른다. 7월28일과 31일에는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변호인단이 핵심 쟁점을 4가지 주제로 나눠 마지막 ‘창과 방패’를 들고 겨룬다. 이 부회장의 1심 구속기간(6개월) 만료일은 8월27일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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