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대전의 선수들. 빙그레의 ‘빵또아 레드벨벳’과 롯데제과의 ‘거꾸로 수박바’, 해태제과의 ‘토마토마’(왼쪽부터). 각 사 제공
물고 빨고의 계절이 왔다.
덥다. 숨을 헐떡인다. 온몸이 끈끈하다. 야릇한 생각 마라. 더 덥다. 물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싶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찌는 날씨엔 열불 나는 속이라도 ‘등목’해야 한다.
이런 때엔 달고 시원한 것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더위에 지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이스크림이다. 사시사철 노상 먹을 수 있는 빙과지만, 여름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더 절실하다. 입속에 겨울을 몰고 오는 한입의 행복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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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보다 더 더울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제과업체들이 신제품을 앞세워 아이스크림 전쟁에 나섰다. 냉전(Cold War)이라 불릴 만한 이 ‘차가운 전쟁’에 아이스크림 덕후들을 유혹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도 출격해 ‘진지전’을 펼치고 있다.
‘냉전의 선봉’에 선 가장 핫(?)한 아이스크림은 빙그레에서 나온 ‘빵또아 레드벨벳’이다. 부드러운 카스텔라 시트에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더해져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빙그레 ‘빵또아’가 지난 5월 옷을 갈아입었다. 기존 아이보리색 평범한 카스텔라 시트에서 붉은색으로 치명적 매력을 장착했다. 여기에 ‘쿠앤크’보다 덜 달지만 더 고소한 크림치즈 아이스크림이 어우러져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3년 전 유행한 ‘허니버터칩’처럼 시중 마트에서 쉽게 찾을 수 없어 희귀템으로 불린다. 포털 사이트에는 빵또아 레드벨벳을 어디서 살 수 있냐는 질문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롯데제과에서 나온 ‘거꾸로 수박바’의 인기도 만만찮다. 기존 수박바의 초록색 껍질 부분은 쫀득하고 깨알 같은 달콤함으로 우리 혀를 압도해왔지만, 빨간색 과육에 비해 양이 적어 짙은 아쉬움을 남겨왔더랬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덕후들이 초록색 부분을 늘려달라고 건의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롯데제과는 편의점 CU와 손잡고 과육과 껍질이 뒤바뀐 거꾸로 수박바를 6월29일 출시했다. CU에서만 살 수 있는 수박바에 대한 시장 반응은 “없어서 못 판다”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폭발적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사진과 후기가 쇄도하고 있다. 새롭고 재미있는 맛이란 평가와 함께 색깔만 바뀌었지 여전히 아랫부분이 맛있다는 평가도 많았다.
한발 더 나아가, 아이스크림 덕후들은 경쟁 아이스크림인 ‘쌍쌍바’를 패러디해 초록색과 빨간색이 반반인 ‘수박 쌍쌍바’를 합성사진으로 내놓거나, 초록색과 빨간색 부분이 줄무늬처럼 나뉜 일명 ‘줄무늬 수박바’ 등 기발한 모양의 수박바 합성사진 놀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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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들의 요청으로 출시된 아이스크림은 수박바만이 아니다. 2005년 깜짝 등장했다가 어느새 자취를 감춘 해태제과의 ‘토마토마’는 팬들의 꾸준한 요청으로 12년 만인 올 3월 재출시됐다. 토마토와 얼음 알갱이가 섞인 이색적인 맛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같은 회사 쭈쭈바인 ‘탱크보이’의 위세에 눌려 단종된 비운의 제품이다. 주력 상품인 탱크보이 생산을 위해 토마토마 생산시설을 내준 까닭이었다. ‘아이스크림의 르네상스’로 불리던 2005~2006년엔 웬만큼 인기 있는 제품이 아니면 쉽게 시장에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한때 2조원을 넘보던 한국 빙과류 시장 규모는 최근 3년째 1조6천억원 언저리에 맴돌고 있다. 저출산으로 주요 고객층인 아이들이 감소한데다 아이스크림을 대체할 간식류가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끼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반값 아이스크림’이 고착화하더니 최근 80%까지 가격 할인을 내건 ‘아이스크림 상설 할인점’까지 늘어나고 있다.
2010년 대구 등 영남 지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불경기의 영향으로 서울·경기 등 수도권까지 북상한 상태다. 올 4~5월께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할인점은 전국 25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이같은 할인점의 특징은 아이스크림 외에 다른 제품은 취급하지 않아, 인건비와 인테리어 비용이 적게 들어 별다른 기술 없이도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업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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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있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찾았다. 4평 남짓한 점포에 꼬마 손님과 같이 온 엄마들로 북적였다. 아이스바 300원, 빵류 아이스크림 500원, 콘류 700원, 통 형태의 떠먹는 아이스크림은 3천원 수준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적게는 50%, 많게는 70~80%까지 할인된 가격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김영민군은 “슈퍼나 편의점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싸다. 같은 용돈으로 더 많이 사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부모들도 반기는 입장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매장을 찾은 박민정씨는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워낙 좋아해서 자주 사는데 마트보다 저렴해서 놀랐다. 싸서 좋긴 하지만 반값도 아닌 70~80% 할인하면 남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업계에선 지난해 8월 실시된 아이스크림 권장가격표시제가 2010년 생겼다가 사그라든 아이스크림 할인점의 ‘부활’을 불러왔다고 본다. 권장가격표시제로 인해 슈퍼 등 소매점에서 아이스크림 가격이 소폭 상승되자 그 차액을 노리고 틈새시장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동네 슈퍼들은 타격을 받고 있다. 할인점과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아무개(58)씨는 “할인점이 생기고 나서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서 다른 것도 사고 하는데 그 손님이 떨어져나갔다”고 말했다. 30℃ 넘는 폭염에도 슈퍼 앞 아이스크림 매대는 한산했다. 빙과업계에선 미끼상품인 아이스크림만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만큼 결국 일선 할인점에 물건을 대주는 중간유통업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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