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모술에 가고 싶은 기자가 있다. 지옥의 세계에 들어가,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리포트하기를 원한다. 어떤 기자는 세월호가 원죄로 남았다. “좀처럼 씻기지 않는 부채감” 때문에 “그때 내가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보도국에 가득한 침묵을 깨야 한다”는 기자들은 이제 어떤 징계를 받아도 두렵지 않다. 자신이 어떤 보도를 해왔는지 돌아보며 부끄러워할 뿐이다. 망치를 들 자격이 있는지 되묻는다. 막내라고 하기에 민망한 4년차 MBC 보도국 기자들은 고민만큼 바라는 것이 많았다. 이들이 입사한 것은 2013년.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는 ‘김재철 사장 퇴진, 공영방송 정상화’를 내걸고 170일 동안 긴 파업을 벌였다. 이후 경영진은 파업을 주도한 노조 지도부와 적극 가담자에게 해고·정직·출근정지 등의 징계를 내렸다. 경영진의 전횡은 계속됐다. 제작·보도본부 소속이던 조합원들 상당수는 스케이트장을 관리하거나 협찬을 위한 영업에 나서야 했다. 사내 게시판에서 경영진을 비판했거나 리포트 과정에서 보직 간부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MBC는 갈라졌고 가라앉았다.
“한창 취재하러 뛰어다닐 연차에…”
4년이 흐르는 동안 막내 기자 3명은 “이 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똑똑히 봐야 했”고, 어떤 식으로든 “관찰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다. 지난 1월 이들이 만든 ‘최순실 게이트 보도 반성문’은 그렇게 나왔다. 힘겹게 쏘아올린 동영상은 MBC를 넘어, 공영방송 정상화의 신호탄이 됐다. 김장겸 MBC 사장 퇴진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6월29일부터 7월10일까지 고용노동부에서는 2012년 파업 이후 경영진의 노조원에 대한 징계·해고 등 부당노동 행위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상전벽해다.
노동부 조사가 시작된 6월29일 밤,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이들을 만났다. 희망을 찾아나섰다가 스스로 그 근거가 되기로 한 이들에게 갈 길은 멀어 보였다.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입버릇처럼 “뭔가는 해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대로는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인생 끝날 거 같아서” 시작했으니 감내하겠다고 했다.
1월 반성 동영상, 6월5일 성명, 6월21일 대자보까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행동한 것인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니 더 하겠다”고 했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고, 떠나간 선배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들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이덕영 기자는 출근정지 10일, 곽동건·전예지 기자는 근신 7일의 징계를 받았다. 과의 인터뷰가 나가면 추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걱정된다는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인터뷰 제의가 생각보다 늦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성명에 대자보… 여전히 바뀐 건 없다
반성 동영상에서 시작해 5개월이 지났다. 징계를 받기는 했지만, 현업에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불이익은 없나.이덕영 없었다. 부서 이동되거나 업무 배제되거나 취재 제한을 받지는 않았다. 게시판에 회사 비판글 하나 올렸다가 징계받아 원치 않은 인사발령이 난 선배들과 비교하면 의외다 싶었다.
전예지 보직 간부를 맡은 선배들이 대응하지 않는 게 방침인가 느낄 정도로 조용했다.
이미 징계를 한 번 받은 상황이고, 이전 사례에서 외부 인터뷰를 하면 또 다른 징계 사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선 계기는.이덕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부에서 방송 정상화나 이를 위한 사장 퇴진을 위해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밖에서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진작 할 생각은 있었다. 오히려 인터뷰 제의가 생각보다 늦었다. 하하하.
곽동건 수습 시절, 기사 외에 다른 채널로 의견을 내는 것은 비겁하고 기자답지 못하다고 배웠다. 동영상도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인생 끝나겠다, 뭐라도 하자 해서 한 것이었다. 이후부터는 쉽다. 공감대가 있으니까.
전예지 동영상도 대자보도 즉흥적으로 한 게 아니었다. 그전에 우리끼리 충분히 얘기한다. 사실 입사 뒤 4년 동안 이슈 있을 때마다 우리끼리 반성했고, 그게 쌓였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한 마디, 두 마디가 쌓인 결과물이다.
이덕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어찌됐든 막내 기자로 불리는데 그 상징성도 있고,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조나 기자협회에서 해야 할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먼저 나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전예지 2012년 파업 이후 입사했다. 노조 차원에서 뭘 할 수 있는지는 나중 문제다. 그냥 4년 동안 보도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
그렇다면 반성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나. 성명에 대자보까지 막내들의 의견 표출이 멈추지 않고 있다.곽동건 그 정도면 충분하다니?
전예지 좀더 나아지기 위해 행동한 것인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니 더 해야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을 법한데. (실제 공채가 아닌 경력채용으로 입사한 보도국 기자 가운데 또래 연차가 있다.)곽동건 뭔가 해야겠는데, 일일이 합의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일단 공통된 경험이 많고.
전예지 뭔가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이에 있었다. 언젠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 이제는 해야 할 때가 되어서 하는 것이다. 같이 수습 시절을 보내고, 사회부 경찰기자로 근무한 시간이 길었던 점도 (우리가 먼저 행동한) 이유가 된 것 같다.
내부 비판하던 선배 보도국 쫓겨나
이들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바닥에는 입사 동기라는 것 말고 ‘세월호’라는 공통의 경험이 있었다. 수습기자 시절 MBC 로고를 달고 함께 현장에 있었고, 그때 안팎에서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드러내기 어려운 상처로 남았다.
2013년 입사면 ‘세월호’가 있었다.이덕영 그때만 해도 내부 비판이 있었다. 뭔가 고쳐보려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진행되면서 그런 선배들은 보도국에서 배제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김영호씨가 단식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고, 김씨에 대한 부정적 견해로 소재를 모아 리포트가 나갈 상황이 됐다. 선배는 ‘읽을 수 없다’며 버텼다. 결국 그 선배는 인사 조치로 보도국을 나갔고 지금도 기자 현업으로 못 돌아오고 있다.
곽동건 그날이 생각난다. 그 다음날 ‘원 포인트 인사’가 났다.
전예지 세월호 때만 해도 우리 안에 상식이 있었다. 특종을 못하더라도 최소한 편파 방송은 하지 말아야지, 이런 공감대가 현장 기자들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 싸웠고. 그런 상식이 이젠 많이 없어졌다.
곽동건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보다 뭔가 막아내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폭주하는 회사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함께했던 선배들은 제물처럼 보도국을 떠났다.
이덕영 세월호 당시보다 이후가 더 중요했다. 참사를 잊지 않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언론이 누구였나 돌아보게 된다. 목포MBC의 경우 그때부터 지금까지 피해 가족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곽동건 최순실 게이트 당시 반성문 영상을 올렸을 때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8할은 세월호 때문이었다. 지금의 부채감이나 죄의식은 세월호 때 자리잡은 것이다. 좀처럼 씻기지 않는다.
전예지 평생 기자를 하게 된다면 원죄 같은 느낌이랄까.
참혹해서 방송 못 본다
막내 기자들은 자신이 만드는 뉴스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했다. 셋 중 한 사람은 아예 뉴스를 보지 않는다. 방송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꼼꼼하게 기사를 읽고 모니터링한다. 영상이 되기 전의 원고를 읽고 방송은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두 사람도 를 만큼 챙겨보지 못했다. “원고로만 봐도 참혹한데 영상화돼 전파를 타고 기사가 된 것을 차마 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망가진 것을 재확인하는 느낌이랄까.”
자기 뉴스를 보지 못하는 기자들. 뉴스 얘기가 나오면서 침묵이 잦아졌다. 침묵을 깨면 “친구들도 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외면받고 욕을 먹어도…” 등 민망한 자기비하로 이어졌다. 이들에게 ‘어떤 MBC, 어떤 뉴스를 꿈꾸는가’ 물었다. 미래는 과거를 먹고 큰다. 이들이 4년 동안 꿈꿔온 미래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위태로워 보였다.
전예지 예전 MBC 보도를 얘기하면 일종의 상상 속 동물 같다. 선배들이 말하는 것처럼 유니콘 같다고 할까. 그게 정말 MBC의 과거였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기자들이 아니라도 다른 분들이 “좋은 시절 오겠지” “버텨야 한다”고 하면 잘 실감나지 않는다. 내가 좋은 시절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곽동건 06학번이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1학년 때부터 MBC 황우석 보도가 일종의 교과서 같은 보도 사례였다. 저널리즘을 배우는 사람에게 외면할 수 없는 교본이었다. 막연한 동경을 갖고 대학 시절을 보낸 뒤 MBC에 들어왔다. 그래서 잠깐 이러다 말겠지, 이런 낙관이 처음에는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나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더 나빠지는 것을 보니 애초 생각은 착각이었나 싶다.
이덕영 해군에서 공보장교를 하던 시절, 천안함 사건이 있었다. 갑자기 MBC 취재진과 장비가 모두 철수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미디어법 때문에 파업을 하는데, 현장 철수라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기가 있던 기자들, 그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그것만 해도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래서 사장은 퇴진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돌아올 것이다.
선배들이 돌아오면 정말 MBC는 좋아질까.이덕영 이미 많이 바뀌어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바뀔 거라고 긍정하는 편이다.
곽동건 지금 상태가 자연의 풍화가 아니다. 사람 손으로 파놓은 것이니 사람 손으로 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짐작해본다. 망치는 데 이 정도 시간이 걸렸으니 그 시간 이상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내서 시작한 일이지만, 기자이면서도 보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주목받는 것조차 이들에게는 상처였다. “포털에 이름을 치면 기사가 아니라 다른 내용이 더 뜬다. 착잡하다.”(이덕영) “어떤 취재를 할지 고민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사장이 물러날까 고민해야 한다는 게 참담하다.”(곽동건) “아직 더 배워야 할 저연차들인데 회사 엉망이라고 나서는 게 우스워 보일 듯하다. 너는 뭐했냐고 하면 할 말도 없다.”(전예지)
어떤 기자로, 어떤 보도를 하고 싶은지.이덕영 제일 중요한 건 현장이다. 회사 눈치 보면서 현장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곽동건 어떤 기자가 되고 싶냐고 했을 때 짠! 하고 구체적인 상이 떠올라야 하는데…. 지금까지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는 많았는데, 저렇게 됐으면 한다는 것을 현실에서 만나지 못했다. 대학에서 배웠던 MBC 보도 같은 것을 하고 싶다, 정도다.
전예지 세월호 사건 때 선배와 얘기했다. 1년, 10년이 됐을 때 지금 보고 느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사실, 더 최악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작은 목소리를 잊지 않는 기자가 되고 싶다.
“보도국이 더 시끄러워져야 한다”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다른 질문과 달리, 세 사람은 앞다퉈 얘기했다. 한 사람은 인터뷰가 끝난 뒤 전화를 걸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달라며 정정을 요구했다. 짧은 말에 담기 어려운 것이 너무 많았다, 공채, 경력, 시용, 1노조, 2노조, 3노조…. 막내의 위치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들 앞에선 머뭇거렸다. 다만, 구성원 사이에 의도치 않은 오해가 있다면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전예지 보도국이 더 시끄러워져야 한다. 경력기자로 온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게 조용한 회사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보도국이 더 시끄러워졌으면 좋겠다. 우리 행동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직 시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의견에 반대하는 얘기라도 터놓고 했으면 좋겠다.
곽동건 지금 MBC의 상황을 두고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라는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가해자이고 기득권일 수 있다. 모두가 (MBC) 문제에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덕영 MBC는 반드시 정상화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해직 선배들과 보도에서 배제된 선배들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김장겸 사장 등 책임 있는 분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 MBC 외부에서 기대를 버리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4년 동안 어떤 보도를 했는지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에 함께 웃었다. “인터뷰를 당하는 위치에 있어보지 않아 어색하다”고 했다. 곽동건 기자는 일부 공기청정기와 차량용 에어컨 항균필터에 유독물질이 사용됐다는 보도로 2016년 8월 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전예지 기자는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의 갑질 폭행을 단독 보도했다. 이덕영 기자는 양화대교 공사폐기물이 한강에 방치됐다는 보도로 주목받은 바 있다.
2012년 1월 언론노조 MBC본부 170일 파업 시작(이후 정영하·이용마·최승호 등 주요 간부 해고)
2013년 3월 김재철 사장 이사회 해임 의결 뒤 사퇴
2013년 5월 김종국 사장 취임
2013년 12월 MBC 단체협약 해지
2014년 2월 안광한 사장 취임
2015년 1월 권성민 PD 해고
2015년 12월 노조 전임자 5명 원직 복직 명령
2017년 2월 김장겸 사장 취임
*2012년~2017년 5월 노조 활동 및 공정방송 활동 관련 징계 71건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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