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휴무를 얻기 위해 싸운다. 고된 노동으로 하루 쉬기도 어려운 사람에게 휴무는 기쁨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휴무를 하지 않기 위해 싸운다. 만성적 인력 부족 탓에 한 명이 쉬면 옆 동료가 다칠지도 모르는 작업장에서, 휴무는 공포다.
어느 봄날 점심시간, 철도역에서 휴무를 둘러싼 의견 충돌이 있었다. 회사는 쉬라고 요구하고 노동자는 쉴 수 없다고 맞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점심 식사 뒤 노동자는 일터인 선로로 올라섰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휴무는 공포다
5월27일 서울 노원구 광운대역(옛 성북역)에서 조영량(52) 수송원이 이동하던 화물열차에서 떨어져 숨졌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조씨의 죽음을 조사하는 중이다. 조씨는 두개골이 깨지고 어깨 부위가 찢어져 장기가 보일 정도로 크게 다쳤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곧 사망했다.
조씨와 함께 일한 수송원 동료들은 작업 환경에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최근 몇 달간 노동 강도가 높아져 조씨의 체력이 떨어졌고, 회사로부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집중력이 낮아진 상태였다는 게 일치된 증언이다. 이 상태로 일하던 중 열차가 빠른 속도로 급커브를 돌면서 몸의 중심을 잃고 선로로 떨어졌다는 추정이다.
최근 광운대역의 일손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2013년 2월까지 성북역으로 불리던 광운대역은 서울과 의정부를 잇는 서울 동북 지역의 큰 역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강원도 춘천 방면으로 MT를 떠나는 대학생들이 역을 가득 메웠다.
노조 “무리한 인력감축이 사고 불렀다”
광운대역은 서울 북부의 물류기지이기도 하다. 열차에 시멘트나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거점이다. 조씨는 화물열차를 서로 연결하고 분리하는 일을 했다. 다른 지역에서 20량짜리 긴 열차가 들어오면 6~8량으로 짧게 나눠 짐을 내린다. 열차 1량은 14m로, 20량이면 280m에 이른다. 수송원들은 열차 난간을 오르내리며 차량 연결 부위를 조작하고 열차가 정확한 위치로 이동하게끔 선로를 조정한다. 지난해까진 6~7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했다. 그런데 올해는 5명으로 사람이 줄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무리한 인력 감축’이 이번 사망사고를 불렀다고 주장한다. 움직이는 열차 난간에 매달려 일하는데다 선로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녀야 하는 수송 업무는 현장 업무 중에서도 산업재해 위험이 가장 높다. 사 쪽인 코레일이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아 결국 비극을 불렀다는 이야기다.
휴무는 문제를 더 키웠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노동자에게 지정휴무를 모두 쓰도록 강제해서 사태를 더욱 악화했다”고 주장한다. 코레일에선 노사 단체협약에 따라 3조 2교대로 일하는 근무자가 근무 교대로 발생하는 자동휴일 외에 월 2회 추가로 쉴 수 있다. 이를 지정휴무라고 한다. 월 1회는 의무적으로 쉬고, 월 1회는 휴무와 근무 중 선택할 수 있다. 지정휴무 때 근무하면 20만원 내외의 초과수당이 나온다. 인력이 줄어든 뒤 광운대역 수송원들은 지정휴무 때 쉬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동료를 위해서였다. 쉴 수 없는 상황임에도 쉬라는 압박에 조씨를 비롯한 수송원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한 조의 인원이 4명으로 줄어들면 수송원들은 여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위험부담이 커진다.
조씨는 사고 당일 지정휴무 문제로 광운대역장과 신경전을 벌였다. 같은 조의 김○○ 수송원이 지정휴무일인데도 출근한 상황이었다. 역장이 김 수송원에게 일하지 말라고 지시하자, 옆에 있던 조씨가 “지정휴무를 쓰게 할 거면 대체인력을 달라”고 반발했다.
조씨의 동료 허재원(39) 수송원은 에 “조영량 형님이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형님은 후배들이 힘든 일을 당하면 나서서 이야기해주는 분이었어요. 심성이 착한 분이라 역장하고 마찰이 있은 뒤 신경 쓰는 눈치였어요. 그날 점심을 먹으면서도 ‘같은 철도 사람인데 내가 좀 심했나’라고 혼잣말하시더라고요. 우리 일은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위험해서 휴대전화도 반입 못합니다. 관리자와 마찰이 있었던 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어요.”
사 쪽의 입장은 노조와 사뭇 다르다. 이번 사고가 인력 부족과 관계없다는 것이다. 코레일 쪽은 “2017년 1월부터 5월까지 광운대역 수송원 한 달 평균 근무일수는 19일, 비번 및 휴일은 11일이었다”며 “근무시간 내 실질 작업시간이 최대 4시간, 적게는 1시간에 불과해 업무가 과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체 인력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도 “광운대역의 열차 운행 횟수는 2013년 31회에서 2017년 18회로 줄었다”며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지정휴무 사용 압박에 대해선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구의역 사고’와 닮은꼴
이번 사고는 1년 전 발생했던 ‘구의역 사고’와 닮았다. 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를 하던 19살 비정규직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꽃다운 청춘이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다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광운대역에선 19살 비정규직이 아닌 52살 정규직이 선로에서 스러졌다. 정원섭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선전국장은 “사 쪽이 인건비를 줄이려다보니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도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외주화된 인력은 정규직화하고 부족한 현장 인력 수천 명을 새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 변지민 기자 dr@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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