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사학 비리에 연루된 학교법인 인사들에게 소송을 제기하도록 종용한 뒤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학생과 교직원들이 요구하는 개방이사 승인을 1년 가까이 거부해온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교육 당국이 사학재단을 감시·견제하기 위해 만든 개방이사를 무력화한 것도 모자라 비리 인사의 재단 내 운영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기획소송’까지 제안했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비리 재단의 오랜 유착 관계를 이제 끊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원, 교육부 장관에 사실 조회 요청은 학교법인 덕성학원의 박토마스상진 전 상임이사가 4월25일 서울행정법원에 낸 서류를 최근 입수했다. 그는 1997년 교육부 감사에서 자격이 취소됐다가 소송 등을 거쳐 복귀한 박원국 덕성여대 전 이사장의 조카이자 박원택 전 이사의 아들이다. 2012년 7월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 결정으로 옛 재단 인사들이 이사회의 과반수(4명)를 차지하면서 박씨는 학교법인 상임이사가 됐다. 오랜 사학 분규 끝에 조금씩 정상화되던 덕성여대의 학교 운영이 파행으로 치닫게 된 계기다. 그는 미국 유학 중인 딸을 만나러 가거나 지인의 홍콩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법인에 출장비를 청구하고, 동창인 김아무개씨를 취업시키면서 월급을 규정의 2배로 지급하는 등 학교 공금을 ‘쌈짓돈’처럼 쓰다 수사를 받고 있다.
박씨가 변호인을 통해 법원에 낸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소송 준비서면에는 “사실 원고(박토마스상진)는 안병우, 염홍경을 개방이사로 선임한 이 사건의 이사회 의결은 문제가 있으니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교육부 관계자’의 조언에 따라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시 이사회에서 개방이사 선임 건에 대해 찬성표를 던진 박씨가 이후 교육부 관계자의 조언에 따라 태도를 바꿔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 개방이사 선임을 요구하는 교직원과 학생들은 교육부와 박씨의 유착 관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반발했다. 법원도 교육부 장관에게 관련 사항의 사실관계를 묻는 석명서 제출을 요구한 상태다.
문제가 된 개방이사 선임 결정이 이뤄진 것은 2016년 6월이다. 당시 덕성학원 이사회는 전달 이사직에서 물러난 안씨와 염씨를 개방이사로 선임했다. 사학재단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이사 정수의 4분의 1을 개방이사로 선임하도록 하는 사립학교법에 따른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해 박씨를 포함한 이사 전원이 찬성했다. 그러나 7월 교육부는 김목민 당시 이사장이 두 사람을 추천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이유를 들어 임원승인 신청을 반려했다. 이례적인 조치였다.
오너 일가에 관대한 교육부와 검찰안씨와 염씨는 곧바로 이준식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법원에 임원취임승인신청 반려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소장을 통해 자신들에게 사립학교법상 결격·승인취소 사유가 없는데다 각각 덕성여대 교수·부총학생회장의 추천을 받은 만큼 교육부가 반려 이유로 제시한 김 이사장의 추천 청탁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정작 김 이사장으로부터 두 사람을 추천하도록 요청받은 추천위원들은 이들을 추천하지 않았다는 점, 이런 이유로 교육부가 임원승인 신청을 반려한 전례가 없다는 점 등도 부당한 처분에 무게를 더했다. 교육부는 법률 자문에 따랐다고 설명했지만 정상적 절차에 따라 선임된 개방이사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방이사제의 취지를 훼손하고 옛 비리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개방이사 선임에 찬성했던 박씨가 결국 소송으로 방향 전환을 한 이유는 ‘설립자 후손’이라는 지위를 통해 자신이 전권을 행사했던 법인 운영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과 관련 있어 보인다. 2015년 11월 업무상 횡령·사기·배임수재·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된 박씨는 개방이사 선임 당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법인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6월1일 과의 통화에서 “이사회 구성이 달라지면서 박씨가 예전처럼 이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되자 법적 소송을 통해 자신이 찬성한 개방이사 선임 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소송에서 이기면 교육부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이사들을 앉혀 법인을 장악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싶다”고 말했다. 박씨가 점지해둔 이사 후보들은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준비위원을 지낸 김아무개 연세대 교수와 이명박 정부 출신 인사 등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바람이 전해졌을까. 이례적으로 임원승인 신청을 반려했던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덕성학원의 개방이사 취임승인 재요청에 대해서도 보류 결정을 내렸다. 민원이 제기된데다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승인해줄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에 대해 덕성학원의 법률자문에 응한 이광철 변호사(법무법인 동안)는 답변서에서 “민원이나 소송 중임을 사유로 보류처분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덕성학원 민주화의 상징인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사학)도 “민원은 박씨의 측근인 동문회 인사가 제기한 걸로 알고 있다. 이제 소송마저도 교육부가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둘을 핑계로 개방이사 승인을 거부하는 교육부는 비리 사학과 애초부터 한 몸뚱이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후 7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보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사실상 ‘불승인’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6월2일 과의 통화에서 “개방이사 선임과 관련해 이사장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에 대해 적법하게 승인 보류를 한 것이지 유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법원이 요구한 석명서에도 이러한 내용으로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해명에도 박씨와 교육부의 ‘특수 관계’를 가늠케 하는 장면은 또 있다. 2015년 12월 재단 관계자의 감사 청구에 따른 감사 결과 박씨는 △해외로 딸과 지인을 만나러 가면서 출장비 3200만원 수령 △동창생 직원에게 5500여만원의 과다 임금과 업무추진비 등 지급 △대학원 등록금(2400만원)을 재단 돈에서 유용 등 비위 사실이 적발됐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인 경고에 그쳤다. 박씨는 2015년 이사회 의결 없이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금융상품에 1천억원대 공금을 투자해 사립학교법상 배임죄 논란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교육부 감사 때 교육부 관료와 통화”반면 지난해 7월 감사에서 업무추진비 7400여만원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난 김목민 이사장에 대해 교육부는 최고 수위 징계인 임원취임승인취소처분을 내렸다. 교육부가 유독 오너 일가인 박씨에게 관대하다는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김 이사장은 소송을 제기해 같은 해 8월 법원으로부터 가처분 결정을 받아 업무에 복귀했다가 지금은 이사로 재직 중이다.
박씨에게만 다른 잣대를 적용한 건 검찰도 마찬가지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6년 2월 말 박씨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서울중앙지검(부장 김후균)은 박씨에게 기소유예와 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렸다. 교육부 감사에서조차 드러난 비위 사실도 모두 혐의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심지어 미국에 유학 중인 딸을 만나러 가면서 출장비를 챙긴 부분은 박씨가 제출한 명함과 전자우편을 증거로 인정해 업무상 출장이라고 인정해줬다. 고발인 쪽 변론을 맡은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특히 개인 대학원 등록금을 법인 자금으로 지급한 부분에 대해 검찰은 이사회 의결을 거쳤다는 박 이사의 말만 듣고 불기소 처분했는데 3년치 이사회 회의록 어디에도 관련 안건은 없었다”며 “검찰이 기초 수사조차 하지 않은 것을 방증한다”고 했다. 박씨의 변호인은 이명박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ㅈ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였다. 보은 차원일까. 박씨는 ㅈ 변호사를 개방이사 후보로 밀고 있다고 전해졌다.
박씨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교육부 관료는 누구일까. 박씨의 최측근이던 한 인사는 “당시 교육부 이○○ 사립대학제도과장이 박 이사의 사람인 덕성학원 전 사무국장 최○○과 전○○, 기획실장 지○○ 등과 수시로 통화했다. 이들의 통화는 이사 선임 때와 교육부 감사 때 집중됐다”고 말했다. 사립대학제도과는 사립대학 예산 지원과 감독을 관장하는 주무부서다. 지방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있는 이 전 과장은 “개방이사 소송과 관련해 어느 누구에게도 자문한 적 없다. 박 이사나 최 국장과 직접 통화한 일도 없다”고 밝혔다.
한국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슈퍼 갑’으로 불리는 교육부의 1년 예산은 50조원이 넘는다. 교육부는 교육기관 규제부터 지원까지 대부분의 사안에 크고 작은 권한이 있다. 이 가운데 대학 지원금만 한 해 8조6520억원(2014년 기준)에 이른다. 대부분의 중앙부처가 지원과 규제로 소관 업무가 나뉜 데 비해, 교육부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가진 몇 안 되는 부처다. 교육부 정책에 따라 사립대학들의 명운이 갈린다. 사립대학들이 전직 교육부 관료 이른바 ‘교피아’(교육 관료+마피아)를 고위급으로 모셔가는 이유다.
박씨가 승승장구하는 데 남다른 ‘빽’이 작용했다는 말도 나온다. 덕성학원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하나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딸이 강남 서문여고를 다니다 2013년 3월 법인 소유 덕성여고로 전학왔다. 이후 박씨의 동창인 김아무개씨가 법인 관계자들에게 ‘이재만이 박의 뒤를 봐주고 있다. 교육부를 통해 개방이사 건도 잘 마무리될 거’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재만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새 정부, 사학 비리 척결 거듭 강조족벌사학에 우호적이던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덕성여대를 비롯해 수원대, 상지대, 건국대, 명지전문대 등의 사학 비리는 더욱 심각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사학 비리 척결 의지를 거듭 밝히는 배경이다. 김연명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위원장은 5월25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회 모두 발언에서 “국민의 교육문제에 대한 시각이 곱지 않다. 사학 비리는 20~30년 동안 우리 사회 고질적 문제의 축약이었다. 더 이상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이 문제로 고통받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입시 비리가 반복되고 있어 교육부가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는 사학 비리 근절과 함께 교육부와 족벌사학의 오랜 유착 관계도 끊을 수 있을까.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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