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4일, 오전 9시 계룡역. 곧 빗방울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흐린 날씨였다. 역에 내려 잠시 들른 카페에선 대전 이 흘러나왔다. 한 교회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를 한다는 광고가 전파를 탔다. 택시를 잡아타고 육·해·공군 본부가 모여 있는 충남 계룡대 제2정문을 향했다. 신분증을 담보로 출입증을 받았다.
부대에서는 재판 방청객들을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까지 데려다줄 미니버스를 준비해두었다. 버스에는 동성과 합의된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된 A대위의 어머니와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 이번 사건을 처음 알린 ‘군인권센터’ 관계자 등 10명이 탑승했다. 선고가 있었던 오전 10시께 법원 앞에 도착했지만 재판을 방청할 순 없었다.
“지금 A대위가 무척 불안해하고 있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방청하는 것이 무척 부담되는 상황이에요.” 군인권센터 관계자가 말했다. 직접적 취재를 자제해달라는 완곡한 요청이었다.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래요.”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결과가 알려진 직후 A대위가 헌병에게 양팔이 붙들린 채 밖으로 나왔다. A대위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법원 밖에서 선고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날은 잔뜩 흐렸지만,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들에게 하늘은 자주 무너졌다</font></font>결국 비 걱정은 기우로 끝났지만 누군가에게 이날의 ‘참극’은 기우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엔 여전히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하늘은 자주,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무너지곤 한다.
A대위의 하늘이 무너진 것은 4월13일이었다. 제대를 12일 남겨둔 그는 이날 서울 출장 중에 체포됐다. 적용 법률 조항은 군형법 제92조 6.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A대위는 체포 나흘 만인 4월17일 구속됐다. 군 검찰은 5월16일 A대위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2년은 군형법 제92조 6에 규정된 ‘추행죄’의 법정 최고형이다.
A대위를 구하려는 각계의 노력에도 징역형은 이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본인이 항소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A대위의 변호를 맡고 있는 강석민 변호사는 과의 통화에서 “A대위가 전역하기 5일 전인 4월20일 기소를 당했다. 육군 쪽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A대위를 휴직시켰다. 장교가 휴직을 하면 의무복무 기간이 그만큼 늘어난다”고 말했다.
현행 ‘군인사법’을 보면 “장교, 준사관 및 부사관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2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되거나 제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때”에는 임용권자가 직권으로 휴직을 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군에서 휴직 명령을 거둬들이지 않으면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제대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A대위가 항소를 결심하면 군인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A대위가 군인 신분을 계속 유지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있어요. 이번 사건으로 제대 후 다니기로 한 회사의 취업이 취소되는 등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항소를 포기할 것 같습니다.”
군인사법의 휴직 조항으로 인한 피해자는 그 밖에도 많다. 2011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해군 학사장교 김아무개씨는 휴직 명령 때문에 제대가 2년4개월이나 연기됐다. 그는 대법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뒤에야 복직할 수 있었다. 휴직 명령이 거둬지지 않는 이상 A대위가 당장 군 신분을 벗을 수 있는 방법은 유죄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형이 확정되면 A대위는 군에서 제적을 당하는 동시에 전과자로 살아가야 한다.
A대위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그에게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는 군형법 제92조 6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면, 헌법재판소에서 직전 합헌 결정이 난 이후 각 법원에서 내려진 확정판결에 대해서는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 헌재는 2016년 7월 군형법 제92조 6에 대해 ‘5(합헌) 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 뒤인 올해 4월 인천지법 형사8단독 이연진 판사는 이 조항과 관련해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군형법 제92조 6의 존폐 여부는 다시 헌재의 몫으로 넘어간 상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함정·표적 수사 의혹</font></font>군대 안에 있는 수많은 ‘A대위들’은 헌재의 결정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군인권센터는 4월1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여 군형법 제92조의 6 ‘추행죄’로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육군 중앙수사단은) 현재 40~50명의 신원을 확보하여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있으며 입건 목표를 20~30명 안팎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군대 내 동성애자에 대한 ‘기획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석민 변호사도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과 관련해 군인 10여 명의 변호를 맡고 있다. 전체 입건된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수사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의 수사 방식이다. 군인권센터는 4월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중수단 수사관이 수사 대상자를 ‘게이 데이팅 앱’(동성애자들이 서로 교류하기 위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접속시켜 군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소속과 얼굴 사진 등을 받아내 수사에 활용하는 ‘함정수사’를 벌였다며 증거 자료를 공개했다. 중수단 쪽이 수사 대상자에게 ‘아우팅’(본인 의사에 반해 성적 지향을 외부로 공개하는 일)을 암시하며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0명 모으기도 어려웠다”</font></font>
이런 의혹과 관련해 육군본부는 5월26일 에 “‘함정수사를 했다’ ‘아우팅을 하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게이 데이팅 앱 대화 내용은 수사 대상자가 사진을 먼저 받아보겠다고 제의했고 차후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또 “수사팀은 관계자들의 신변 보호 차원에서 외부에 노출을 차단하고 부대원에게도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등 철저히 비밀을 보장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육군본부 쪽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총 23명이 형사 입건됐고 3명이 구속, 20명이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2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수사가 확대된 이유다. 앞서 육군본부는 이번 사건 수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현역 군인이 동성 군인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게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대위를 비롯해 수사 대상이 된 다수의 군인들은 육군본부가 수사 단서라고 밝힌 ‘SNS상 성관계 동영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간사는 “이번에 수사 대상이 된 군인 15명을 지원하고 있는데, 아무도 동영상과 관련된 사람이 없다. 군이 동영상과 무관하게 함정수사나 아우팅 협박 등의 방법으로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많은 A대위가 생기는 것을 막으려면 빠른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5월24일 군형법 제92조 6을 폐지하는 법률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것은 김종대 의원을 포함해 심상정·노회찬·이정미·추혜선·윤소하 의원 등 정의당 의원 6명 전원과 진선미·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훈·윤종오 무소속 의원 등 10명뿐이다. 국회의원들은 동성애 반대 여론과 보수 기독교계를 의식해 법률개정안 발의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김종대 의원은 과 통화에서 “군형법 개정안 발의를 위해 의원 10명을 모으는 것도 무척 어려웠다. 정의당 의원 6명을 제외하면 실제로 4명을 더 모으는 데 3개월이 걸렸다. 개정안 발의 이후에는 의원실에 항의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와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 의원은 또 “이번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자동 폐기된 것이라 법안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낙관해서 법안 발의를 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런 메시지를 누군가는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컸다.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이 이미 ‘졸업’한 쟁점을 두고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갈등을 겪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법안이 꼭 통과돼서 사회의 품격이 높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만은 동성혼 합법화</font></font>
A대위가 유죄를 선고받고 군형법 제92조 6 폐지안이 공동발의 정족수 10명을 가까스로 채운 5월24일, 이웃 나라 대만에선 놀라운 결정이 나왔다. 대만의 최고법원인 사법원이 동성결혼을 금지한 자국의 법률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대만 등은 “사법원이 결혼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정한 법률이 헌법에서 보장한 혼인의 자유와 성별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대만은 2년 안에 동성혼 관련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예정이다. 동성애 문제에만 한정해 말한다면, 대만은 한국에게 여전히 너무나 먼 미래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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