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쑥 던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10억달러 한국에 청구’ 발언으로 최근 며칠 한국은 홍역을 치렀다. 사드의 기습 배치로 정치적으로 감정이 격앙된 상태인데다, 중국의 잇따른 경제 보복으로 인한 어려움이 겹친 시기에 나온 말이라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27일(현지시각)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두고 백악관에서 한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 비용을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국 쪽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드는 한국인을 보호한다. 우리는 한국인을 보호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그에 대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며 “그것(사드)은 10억달러 시스템이다. 매우 경이롭다. 미사일을 하늘에서 바로 격추한다”고 말했다.
이미 맺은 양국 합의를 무시하겠다는 뜻한국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지난해 3월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공동실무단이 체결한 약정을 뒤집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당시 약정은 한국 정부는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 쪽이 부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부의 설명이 맞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맺은 양국 합의를 무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국 정부에 사드 비용 전액 부담을 ‘통보했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정부는) 미국 쪽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진실이 정확하게 가려지지 않아 두고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중심으로 한 ‘사드파’는 사드 배치 굳히기를 위해 미국 쪽과 긴밀히 협의했다. 사업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이런 움직임을 사드 비용 전액 부담 의사로 받아들인 것인지,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한국 정부에 통보했는지는 차후 ‘청문회’ 등을 거쳐 진실이 가려져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의 목적에 대해 왜 잘못된 인식을 하게 됐는지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신 인터뷰에서 “사드는 한국인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명분을 들어 청구서를 내밀었다. 이에 견줘 미국 행정부는 그동안 공식적으로 “사드는 주한미군과 한국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애초 사드 배치 필요성을 먼저 제기한 것은 주한미군 쪽이다. 주한미군과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오는 항만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사드의 방위 범위에 들어오는 한국 지역을 보호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특히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해 한국 안보의 가장 핵심 지역인 수도권을 전혀 방어할 수 없다는 사실은 국방부도 인정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전적으로 한국인을 위한 것으로 호도했다. 그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장삿속 때문인지, 참모들의 잘못된 보고 때문인지 등도 오리무중이다.
“미국, 전반적 방위비 부담을 더 요구할 수도”물론 이마저도 사드의 효능이 입증됐을 때나 통하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를 두고 “매우 경이롭다. 미사일을 하늘에서 바로 격추한다”고 했지만, 미국 내에서도 사드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는 지난 3월 “요격기의 비행 실험이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서 진행됐는데 전반적인 실패율은 56% 정도였고, 거의 완벽한 환경에서도 그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 전투 상황에선 훨씬 더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모든 창을 막는 방패’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면 방패가 아니라 거적때기 수준이다.
사드 파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신 인터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다음날 와 한 인터뷰에서도 사드 비용 문제를 다시 반복했다. 급기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4월30일 오전(한국시각) 전화 협의를 통해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맥매스터 보좌관이 다음날 ‘사드 비용 재협상 가능성’ 발언을 내놓아 하루 만에 다시 논란에 불이 붙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이 그의 외교·안보 참모들과 조율을 거치지 않은 ‘돌발성 발언’이란 사실은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한 세트 구매 비용(10억달러)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포퓰리즘적 공약으로 당선된 인물이란 점에 비춰보면 이번 논란은 한 차례 소동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대선 기간에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비판해온 그에게 사드 비용 청구는 백인 노동자층 등 지지 기반을 달래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내뱉은 말은 사실관계가 맞지 않거나 부적절하더라도 참모들이 공개적으로 반박하거나 뒤집기 어렵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에 금이 가기 때문에, 참모들은 뭔가 비슷한 모양새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한국에 큰 폭의 방위비 분담 또는 국방비 증액 요구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사드 비용을 요구할 수 있고, 사드 관련 협약이 있으니 방향을 돌려 전반적 방위비 부담을 더 요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국의 한반도 방위 기여도를 전반적으로 평가해 방위비 분담금을 책정하는 현행 ‘총액지급형 방식’ 아래에선 미국 쪽이 사드와 전략무기 전개 비용 등을 내세워 방위비 분담액 대폭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 지원 분야를 규정해 필요한 비용을 미군에 지급하는 일본의 ‘소요충족형 방식’과 달리, 한국은 분담금의 구체적 사용 내역을 통제할 수도 없고 공개되지도 않는다.
한국 쪽이 부담하는 한-미 연합훈련 비용도 대폭 늘어날 수 있다. 한-미 연합훈련 비용 분담 규모는 2000년대 초반 한 차례 공개된 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쪽이 미국산 무기 도입 규모를 늘리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외교가 초래한 것문제의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화를 자초한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전만 해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일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머뭇거리자, ‘동맹 배려’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갑자기 사드 배치 요청을 하면서 미국은 ‘웬 떡이냐’는 심정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 외교는 한국 정부의 부담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다. 사드를 배치해도 중국의 보복은 없을 것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가정은 이미 산산조각 났다. 트럼프 행정부는 덤터기 비용까지 덮어씌우려 한다. 이 외교 참사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워싱턴(미국)=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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