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일까.
한겨레TV의 등을 진행하는 김어준씨는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의혹을 다룬 영화 을 지난 4월14일 인터넷을 통해 선공개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닷새 만인 4월19일 12쪽짜리 보도자료 ‘제18대 대통령선거 부정 의혹 영화-더 플랜-에 대한 입장’을 냈다. 2012년 12월 대선 결과에 대해 중앙선관위가 공식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2012년 대선의 개표 부정 의혹에 대해 사회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공론화’하는 데 이 성공했다는 얘기다.
미분류 유효표 1.5배의 진실의 인터넷 선공개 이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한 조회 수는 4월21일 현재 136만여 회로 올랐다. 이 4월1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를 연출한 최진성 감독을 만났다.
어떻게 감독을 맡게 됐나.돌이켜보면 우스개 같은 이야기다. 지난해 추석 전날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좇는 다큐멘터리 을 거의 완성하는 단계였다. 고향에 가야 하는데 김어준씨가 추석 전에 결판을 봐야겠다며 불러냈다. 김씨의 설명을 듣고, 특히 1.5라는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통계 데이터가 도출됐다는 얘길 듣고 해보자 결정했다. 1.5가 없었으면 연출할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의 내용은 단 하나의 숫자 ‘1.5’로 수렴된다. 에 나오는 ‘K값’ 1.5는 2012년 대선에서 전자개표기(투표지 분류기)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미분류표 가운데 최종적으로 유효표로 인정된 ‘미분류 유효표’와 관련된다. 흔히 전자개표기가 인식하지 못하는 미분류표를 무효표로 혼동하는데, 2012년 대선에서 미분류표 111만1165표(총투표수의 3.6%) 가운데 무효표는 미분류표의 10.1%(11만2360표)에 그쳤다. 미분류표의 상당수는 득표에 포함된 유효표였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에 미분류 유효표가 더 많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질문이 가능하지만, K값은 그리 간단치 않다. 전자개표기가 무작위로 분류표와 미분류표를 구분하기 때문에, 분류표에서 ‘박근혜 후보 : 문재인 후보’ 득표 비례는 미분류 유효표의 득표 비례와 통계학적으로 일치해야 한다는 게 통계학자들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분류표의 득표 비례가 2:1이라면 미분류 유효표의 비례도 2:1로 둘이 일치해야 하며, 따라서 둘의 비율이 통계적으로 1에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시하는 1.5는 분류표와 미분류 유효표의 득표 비례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분류표에서 박근혜 후보(1478만2150표)와 문재인 후보(1382만8239표)의 득표 비례가 1.07:1인데, 미분류 유효표의 경우 박 후보(58만6632표)와 문 후보(39만7505표)의 비례가 1.48:1이다. 전국 251개 개표소의 선거 기록을 토대로 분류표와 미분류 유효표의 후보 간 득표 비례를 도출(K값)한 결과, 미분류 유효표의 후보 간 비례는 분류표의 후보 간 비례보다 평균 1.5배 많았다. 즉, 미분류 유효표에서 박 후보 표가 분류표의 박 후보 표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1.5배 많았다는 게 의 핵심 주장이다.
“번개를 두 번 연속 맞을 확률”현 박사님이 데이터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나누기 3번으로 무수한 숫자를 관통하는 하나의 규칙을 찾았다. 미분류 유효표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 비례를 분류표에서의 득표 비례에 견줬을 때, 그 수가 평균 1.5를 중심으로 정규분포를 그린 점이다. 1.5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정규분포가 안 그려지면 좀 이상하긴 해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데, 평균 1.5에 수렴하는 정규분포는 무작위적으로 미분류표가 나왔을 때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치라고 했다. 김재광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교수(통계학)가 “번개를 두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이라고 영화에서 말한 게 바로 이 부분이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1이 아니라 1.5에 수렴하는 정규분포는 이상한 일이라는 데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사립대 통계학과 교수는 “1을 중심으로 한 종 모양의 정규분포가 그려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 이공계 교수는 “영화의 문제 제기는 의미 있고 통계적으로 드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그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특히 부정선거에 의해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영화도 선거 부정과 관련된 직접적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최진성 감독의 은 전희경 교수 등이 쓴 논문이 바탕이 됐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연구 논문, 작가는 통계학 전공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 교수와 현화신 교수는 이 논문(A Master Plan 1.5 Using Optical Scan Counters: An Analysis of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 Data in South Korea)을 최근 미국 중서부 정치과학학회(MPSA)에 발표했다.
“나도 처음엔 ‘음모론’일 뿐이라 했다”논문 제목이 ‘마스터 플랜’이다. 논문 제목에서 영화 제목을 딴 것인가.논문은 나중에 봤다. 제목은 김어준씨를 만나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한 바로 그날 정했다. 1.5를 설명하면서 김어준씨가 현 교수의 말씀을 들려줬다. “통계학자로서 쓸 수 있는 말은 ‘플랜’이다. ‘조작’이란 단어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말할 수는 있다. 내가 통계학자의 양심을 걸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계획됐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영화 제목을 ‘플랜’으로 정했다. 나중에 보니 논문 제목이 ‘마스터 플랜’이더라. 여러 반박이 나온다. 박근혜 지지 유권자가 고연령층이 많고 기표를 정확하게 하지 못해 미분류표로 분류되는 비율이 높을 것이라는 ‘고연령설’이 있다. 이 부분은 현 교수가 애초에 세웠던 가설이고, 검증을 통해 기각했다. 전국의 통계청 자료를 통해 50대 이상 고연령 비율과 1.5의 상관관계가 없음으로 나왔다. 비정상적 일이란 것은 명징하다. 일단 우리는 확실한 것을 제시했고, 이후 건전한 반론이 나와 우리 주장이 수정될 수도 있다. 1.5 정규분포를 다른 가설로 입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까지는 표피적으로 두어 시간 계산해서 맞다, 틀리다 하는 얘기가 많다. 수개월 동안 통계적으로 검증한 우리 처지에선 엉뚱한 얘기가 대다수다. 1.5를 증명하는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우리 목표는 대한민국 선거 개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독일이나 영국처럼 기계 대신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개표를 하는 쪽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한다. ‘음모론’ 비판에 대해선. 내 스탠스(입장)도 처음엔 의심이었다. ‘음모론이야, 졌다고 투덜대지 마!’ 이런 입장이었다. 그런데 1.5라는 숫자를 알게 된 이상 검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주간 검표하는 독일촬영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독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카리나라는 담당자를 만났다. 독일은 투표소에서 바로 수개표를 한다고 했다. 개표 완료에 하루가 걸린다고 하더라. 그것도 ‘잠정 결과’란다. 개표 결과 당선이 되어도 ‘잠정 총리’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꼼꼼히 다시 검표해서 최종 결과가 나오는 데 3주가 걸린다. 3주가 지나야 확정 의원, 확정 총리가 된다. 5월9일 선거를 마쳤는데 5월20일 결과가 난다? 대한민국은 3주를 기다려줄까? 선거 개표를 놓고 신속·정확성과 투명·안정성이 대립하는데, 독일은 안전하고 투명하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지 빠르고 불완전한 것을 원치 않는다. 민주주의는 그런 게 아니니까. 1.5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제 수개표 논의로 넘어가야 한다. 선거가 코앞이다. 수개표와 투표지 분류기 순서라도 바꾸자. 사람이 먼저 검표하고 기계로 계수하자.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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