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후폭풍이 검찰로 향하고 있다. 검찰 개혁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바람의 진원지는 바로 검찰이다. 검찰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 2014년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 사건,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에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였다.
권력 수사에 한없이 약한 모습최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로 밝혀진 박근혜 정부의 여러 비리 역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청와대 지시를 받아 보수단체에 자금 지원을 한 사건은 2016년 4월부터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전경련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5억여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고 그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검찰은 어버이연합을 상대로 여러 건의 고발 사건을 수사했지만 아직까지 기소 여부 등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역시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의혹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2014년에 제대로 수사했다면 실체가 드러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만 기소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등판하고 있는 유력 대선 주자들도 입을 모아 검찰 개혁을 이야기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야당 유력 대선 주자들은 검찰 수사권 분리와 고위 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신설을 공동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1월22일 광주광역시에서 진행한 토크콘서트에서 “검찰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2월 국회에서라도 할 수 있는 게 공수처 신설”이라고 덧붙였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여기에 더해 검찰 분권화를, 이재명 성남시장은 검사장 직선제를 주장하고 있다. 범여권 후보로 분류되는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은 수사권 분리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공수처 설치에는 찬성한다.
관련 법안도 속속 발의되고 있다. 공수처 신설 법안은 총 3건이 발의되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검찰 수사권을 분리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역의 검사장을 주민투표로 뽑는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각각의 개혁 방안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선 주자들도 검찰 개혁 한목소리공수처 설치는 대선 주자 대부분이 동의하여 시행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안이다. 검찰과 별도로 권력의 외압에서 자유로운 조직을 만들어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등을 수사하도록 하는 제도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공수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는 2월15일 성명서를 내고 공수처 도입 반대 입장을 내놨다. 변협은 성명서에서 “공수처를 도입할 경우 특별검사 임명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거나 공수처의 수사가 오히려 정치화될 우려”가 있으며 “공수처를 제2의 검찰로 하여 검찰권을 분리하는 결과가 되므로 이는 옥상옥에 불과하다”라고 밝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2월13일 이화여대에서 연 ‘검찰 개혁’ 공동학술 세미나(검찰 개혁 세미나)에서도 참석자들 의견이 엇갈렸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한상훈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가 (검찰 개혁에 있어)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또 “공수처는 검찰 밖에서 검찰권을 분산, 상호 견제하여 공정한 사정을 담당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옥상옥이라는 지적은 잘못된 비유”라고 덧붙였다.
반면 11년 동안 검찰에서 근무한 뒤 최근 퇴직한 이순옥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가 권력을 남용할 수 있으며, 수사 범위에 기업 범죄가 빠져 정경유착 문제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반대 의견을 내놨다.
검찰의 수사권 분리 역시 오랫동안 제기된 개혁 방안 중 하나다. 검찰은 기소와 재판에 집중하고,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는 방향이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경찰과 긴 시간 갈등해온 쟁점이다. 검찰 개혁 세미나에 참가한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개인적으로 수사권 조정에는 반대한다. 경찰은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질 경우 법적 수사 절차가 존중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도 수사권 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영기 남원지청장(검사)은 이날 “경찰의 수사가 적법절차에 따라 진실규명에 필요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수사 결과를 토대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관(검찰)이 살펴보고 통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은 과의 통화에서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면서 해야 할 수사를 안 하거나 표적 수사를 하는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형사사법 체계 내에서의 권력 분립이고 검찰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과의 통화에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권한이 너무 비대하기 때문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지니 권력이 검찰만 길들이면 통치가 쉬워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덕성도 수사 의지도 낙제인 검찰검사장 직선제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방안이다. 교육감 선거처럼 각 지방 검사장을 주민투표로 뽑자는 내용이다. 임지봉 교수는 검찰 개혁 세미나에서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같은 개혁 방안의 경우 국민의 참여가 빠져 있다”며 “검찰이 청와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검사장 직선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영기 남원지청장은 “사법영역인 검찰 수사가 도리어 정치에 종속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선거를 통한 검사장 선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내 편 네 편 가르기에 익숙한 선거 문화를 감안하면 검사장 선거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대했다.
검찰 개혁은 번번이 실패해온 해묵은 과제다.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검찰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검찰 개혁 논의가 불붙고 있지만 검찰이 조직적 저항에 나설 경우 이러한 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다만 최근 검찰의 힘이 빠져 있다는 것은 개혁 추진에 유리한 조건이다.
넥슨 비상장 주식을 무상으로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 사건과 사업가 친구에게 스폰서를 받은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으로 검찰의 도덕성이 실추됐다. 게다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등 검찰 출신 인사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국민들의 검찰 신뢰도 떨어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검찰이 보여준 수사력이 박영수 특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검찰이 도덕성과 능력 모두에서 최근처럼 궁지에 몰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지금이 검찰 개혁의 적기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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