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그래픽/ 손정란
박근혜 체제에 대한 법적 심판의 닻이 올랐다. 2017년을 강타할 심판 3부작은 . 특별검사와 헌법재판소, 법원이 제작을 맡았다. 화제와 논란이 많은 3부작의 촬영 현장을 점검하고 향후 관람 포인트를 체크해보자.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됐으니 주의할 것.)
블록버스터 시리즈 ‘특검’이 12번째 시즌 로 돌아왔다. 1999년 와 동시상영으로 시작된 특검 시리즈는 매번 수많은 뉴스거리를 양산하며 2012년 까지 계속됐지만, 대부분 작품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막 오른 ‘심판 3부작’비교적 높은 평점을 받은 작품은 1999년 와 2003년 두 편이며, 이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았을 뿐, 나머지는 낙제점을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나마 높은 평점을 받은 두 작품의 특별검사가 모두 민변 출신이었다는 점은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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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편도 캐스팅 단계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재야 변호사들의 입성을 아예 허락하지 않고 ‘흥행 보증수표’ 채동욱 전 검찰총장마저 배제된 탓이다. 시리즈 특성상 ‘특별검사’의 비중이 상당한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인 박영수 변호사가 미덥지 못하다는 세평도 만만치 않았다.
평단과 세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특검은 지체 없는 압수수색과 피의자·참고인 소환이라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시청자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검찰이 최순실 귀국 뒤 하루의 시간을 허비한 것과 대비되면서 시민들에게 청량감을 선사한 것이 포인트다. 구치소마저 압수수색하는 속도감 있는 전개에는 신스틸러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의 역할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검은 총 14개의 의혹과 이와 관련된 나머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로 구성할 예정이다. 모두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필요한 의혹이지만, 이 가운데 이번 특검의 성패를 결정지을 핵심적인 세 사건의 처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우선 ‘공작정치’ 에피소드다. 고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데스노트’인 비망록이 제작에 결정적 영감을 제공한 이 에피소드는, 전설의 망작 ‘초원복집’이 대표작인 원로배우 김기춘과 소년등과·검사사위 우병우의 ‘막장 케미’가 핵심이다. 결과적으로 두 배우의 실질적 은퇴작이 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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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특검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면, 김기춘·우병우 수사에서 몸을 사렸던 검찰과 대비되는 성과를 올릴 필요가 있다. 김기춘의 경우 법원, 헌재,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 전반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관리를 일삼았을 뿐 아니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죄 등으로 처벌받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김기춘은 초원복집 사건 때도 위헌소송까지 이끌어내며 형사처벌을 피한 전력이 있다. 특검으로서도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우병우도 박근혜 체제에 민감한 이슈에 부당하게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탈세 의혹과 아들 병역 비리 등도 이슈가 될 것이다. 처벌 범위와 수위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앞서 검찰이 이들에 대해 별다른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탓에 흥행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
김기춘·우병우 은퇴 가능할까두 번째 핵심 에피소드는 ‘뇌물’ 편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구속과 함께 시작하는 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이재용과 박근혜다. 과연 특검이 두 주인공의 독대 신을 어떻게 연출할지, 마지막에 구속 기소되는 자가 누구일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팬들의 선택은 물론 남자주인공의 구속이지만, 특검이 자칫 장르의 관습적 해석에 갇혀 ‘어구바’(어차피 구속은 바지사장)의 덫에 빠질지가 관심사다. 본 에피소드의 결론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엔딩에 따른다면 여주인공이 구속되는 내용의 후속편이 제작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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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시즌12에서 난관 중 하나는 ‘4·16’이다. 무려 7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종전까지 미스터리물로만 다뤄지던 팟캐스트적 접근을 탈피해, 다큐멘터리 형태로 집중 조명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시민들의 바람대로 특검이 과연 제대로 연출할지, 가장 조심스럽고 또 대책 없이 기대하는 지점이다.
의 짧은 촬영 기간도 간과할 수 없다. 이번 특검은 사전제작 기간이 20일이고, 실제 촬영(수사) 기간은 70일이다. 그러나 특검이 최소 14가지 에피소드를 다뤄야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시간이 다소 촉박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70일 안에 모든 에피소드를 다루지 못할 경우 30일 연장이 한 차례 가능하다고 법에선 규정하고 있으나, 부도낸 사장님(대통령)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 터라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박근혜 체제의 총체적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 제작인원 120명, 총제작비 25억원을 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블록버스터 의 크랭크업은 2월28일로 예정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13년 전 단발성으로 끝난 전설의 화제작 을 리메이크하기로 하고 크랭크인에 들어갔다. 최근 제작사로서의 역량을 의심받은 헌재가 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1천만 명의 크라우드펀딩 힘이 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정년퇴임을 앞둔 박한철 총감독(헌법재판소장)으로선, 시대의 망작으로 평가받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사건이 심지어 원로배우 김기춘의 사전 검열 아래서 제작됐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상황에서, 간신히 명예회복할 기회를 잡은 셈이다.
리메이크작 의 다른 결론 기대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가 1월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번째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실 에 대해 다소 김이 샜다는 일부의 분석도 있다. 제작진이 입단속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유례없는 ‘탄핵 인용’이라는 핵심 스포일러가 담긴 지라시가 유출됐기 때문이다. 다소 긴급한 제작 일정 때문에 여러 화제작들의 개봉을 미뤄서라도 최대한 촬영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시민 투자자에게 이득이란 점은 제작진에게 또 다른 압박 요소다. 비록 법적으로 180일에 걸쳐 촬영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나, 빠른 상영을 원하는 시민 투자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이겨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더구나 제작진의 노쇠화로 인해, 3월 중순 이후 제작진 9명 중 2명이 임기가 만료된다는 점도 문제다. 만약 제작진이 ‘7인 로테이션’으로 갈 경우, 작품의 완성도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르면 1월 말, 늦어도 3월 초에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은 작품 특성상 두 달 안에 촬영을 끝내기 만만치 않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있었다. 우선 촬영에 반드시 필요한 증인신문 및 증거채택 절차를 통해서도 촬영 기간 지연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 현재 진행되는 탄핵과 관련된 형사재판 및 수사기록의 제출을 검찰 등에 강제하기 어렵다는 점,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될 때는 재판부는 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고 헌법재판소법에 규정된 점 등이 주요 근거였다.
다행히 헌법재판소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준비기일)에서 이런 우려를 대부분 날려버렸다. 이처럼 헌재가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 쪽의 지연 전술을 제어하는 데, 유사한 사안들이 쟁점이 되었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사례가 실질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만약 의 결론이 유출된 스포일러와 다르게 간다면, 시민 투자자들의 저항권 행사가 정당하다고 보는 게 일치된 견해다. 저항권이 행사될 경우 개헌도 필연적일 것으로 보인다.
법원도 지난해 12월부터 박근혜 게이트에 관한 새로운 형사 시리즈물 의 촬영을 시작했다. 현재 3건의 형사재판이 동시에 진행 중이지만, 특검의 활약에 따라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현재까지 가장 돋보이는 재판은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이 피고인인 재판이다. 흥미로운 건 정호성 전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의 캐릭터 변주다. 정호성은 자신의 압수수색된 전화기에서 각종 녹음파일이 나오자,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자백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정호성이 유죄라 하더라도 자백할 경우 형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형사재판 준비절차기일에서 정호성 변호인은 검찰이 입수한 태블릿PC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일 가능성 또는 검찰이 확보한 태블릿이 최순실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 등을 제기하면서 돌연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만약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면 자백하는 것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의외의 선택이다. 이러한 무리수는 정호성이 아니라 박근혜를 비호하기 위한 변호인의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끝나지 않은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형사재판에는 엄격한 증거법칙 등이 적용되며, 대법원까지 3심을 모두 거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은 2017년이 아닌 2018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소 지루하게 진행될 시리즈의 운명 때문인지, 법원은 돌연 최순실 등의 형사재판에 대해 TV 카메라를 비롯한 영상 촬영 및 중계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이례적인 법원의 선택은 헌재와 특검에 쏠린 시민들의 시선을 자신들에게 돌리기 위한 홍보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원이 정작 필요한 재판 진행 속도를 개선하는 데 힘쓰지 않고 홍보에만 치중하는 게 아닌가라는 비판도 있다.
법원이 쓸 만한 회심의 카드는 따로 있다. 바로 ‘원세훈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과 ‘대통령선거 무효소송’ 재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원은 두 작품의 완성을 몇 년간 의도적으로 유예해왔다. 특히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서울고등법원이 타당하게 유죄판결을 내렸음에도, 대법원이 몇 가지 사소한 증거상 흠결을 이유로 가장 중요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채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런 대법원의 가이드라인 때문인지 현재까지도 해당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에서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법원이 박근혜 체제의 종언이란 역사적 사건 앞에서 일익을 담당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뭣이 중한지’ 돌아볼 일이다.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심판 3부작’은 모두 사필귀정이라는 전통적 서사를 따라 대중의 환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심판으로 모든 역사가 종언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연 ‘심판 3부작’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우선 ‘심판 3부작’이 모두 법적 심판으로만 채워진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은 기획 초기부터 지적된 바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은 조기 퇴진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현실적 ‘해답’은 탄핵이란 사법적 절차로 귀결됐다. 정치적 해결이 가능한 사안을 법·제도적 해결에 종속시키는 ‘정치의 사법화’는 광장의 촛불을 무대가 아닌 객석으로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또 비록 ‘심판 3부작’의 제작자로 등장하기는 했으나, 박근혜 게이트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검찰·법원·헌재가 ‘심판 3부작’을 통해 사후적으로 복권되고 정당화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해체, 고위공직자수사처 신설, 헌재와 법원의 민주적 통제 등 검찰 및 사법 개혁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돼야 할 것은 물론이다.
또 여전히 정경유착을 통해 자신들의 체계를 굳건히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주요 대기업들이 분명히 책임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피해자인 양 둔갑하게 놔둬서도 안 될 것이다. 당장은 바짝 엎드려 있는 재벌 대기업이 뒤에서 웃고 있는 것을 얼마나 더 두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심판 3부작’이 종료된 뒤 우리의 삶이다. ‘심판 3부작’은 책임자 처벌을 확실히 해줄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위로’와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애초에 위로는 광장에서 우리가 연결된 순간에 형성된 것이지 사법 시스템이 가져다줄 것은 아니었다. 뜨거운 환호성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책임자 몇 명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우리의 삶이 구원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3부작 종영 이후 한국 사회그래서 ‘심판 3부작’ 자체가 아니라 종영 이후가 중요하다. ‘심판 3부작’의 성공적인 피날레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등으로 위협받는 평화적 생존권, 대책 없는 핵발전 패러다임의 지속, 미래를 저당 잡힌 청년의 절망, 혐오범죄의 대상이 된 여성·이주자·성소수자·장애인의 권리, 언제나 불온시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미처 다 적지 못한 일상화된 배제와 억압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촛불이 ‘심판 3부작’으로 마무리될 수도 없고, 정권 교체로도 끝나기 어려운 이유다. 더 많은 촛불이 필요하고, 더 많은 촛불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다시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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