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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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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앞에 특권이 있었다

인권활동가들이 투표로 뽑은 2016년 한국 인권의 ‘그날들’
등록 2016-12-30 16:18 수정 2020-05-03 04:28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경종으로 읽힌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 이후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는 ‘메갈리아 사태’를 거치며 강남역 10번 출구의 슬픔들과 전혀 다른 지형에서 또 다른 분투를 시작했다. 박승화 기자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경종으로 읽힌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 이후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는 ‘메갈리아 사태’를 거치며 강남역 10번 출구의 슬픔들과 전혀 다른 지형에서 또 다른 분투를 시작했다. 박승화 기자

인권(人權). 모든 인간이 똑같이 존엄하다는 가치. 안간힘을 써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명제는, 그러나 명백한 한계를 가진 박제된 문장이다. 모든 인간은 정말 동등하게 존엄한가. 민주공화국의 존엄을 짓밟은 국정 농단의 배후로 지목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법률을 좀 알아 한평생 보통 사람의 권리를 넘어서는 위세를 누려왔다. 그의 법률 지식은 부로 환원됐고, 줄곧 명예를 보장해주었다. ‘깁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삶이 통째로 뻣뻣했다. 그 알량한 법률 지식은 그가 법 밖으로 도망쳐 다닐 수 있는 기반이기도 했다.

국가폭력은 휘발됐다

반면 도망칠 수 없었던 사내도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한평생 투박하게 노동자로 살아온 그는 해고자가 되었고, 지금은 구속 수감 중이다. 항소심에서도 실형 3년을 선고받았다. 도망자 우병우의 집 대문조차 열지 못했던 공권력은 한상균을 잡아들일 때는 군사작전을 펴듯 그의 거처를 완전 봉쇄했다. 우리보다 1년 먼저 촛불을 들었던 그는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를 적용받을 뻔했다. 국제 노동계는 큰 회의가 있을 때마다 ‘한상균 석방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한국 사회 인권을 맨 앞에서 끌어온 인권활동가들이 연말마다 인권 현실의 문제들을 기록해온 지도 벌써 24년이 됐다. 1993년 문민정부 때 시작된 ‘인권 10대 뉴스’는 정권 교체기를 거쳐 ‘이명박근혜 시대’마저 건너왔다.

그사이 ‘인권’은 대중적 입말이 되었지만 인권침해는 오히려 더 구조적인 문제가 됐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만들며 국가권력의 인권침해를 제어할 수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뤘다는 믿음이 환상이었음을 자각하는 요즘이다. 국가권력보다 더 강력한 자본권력의 인권침해는 아예 체제 문제로 굳어졌다.

인권의 형용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프로젝트 그날들’은 ‘인권 10대 뉴스’의 형식을 바꾼 기획이다. 박근혜 정권 첫해에 시작됐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50여 인권·시민단체가 참여해왔다. 인권의 참상과 그 저항의 양상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자는 의도였다. 지금 당장 어쩌지 못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인권의 장면들’을 환기해 한국의 인권 현실을 두루 헤아려보자는 기획이었다.

2016년 방식은 좀더 특별했다. 1년간 국내외에서 전개된 인권 관련 활동들을 전부 타임라인 형태로 후보로 올려뒀다. 인권활동가들의 사전 투표를 통해 25개 장면을 ‘그날들’ 후보로 선정하고, 그 가운데 10개의 장면들은 한국 사회의 인권 현실을 기록한 ‘그날들’로 선정했다. 그 밖에도 12개 장면들은 ‘숨겨진 인권 뉴스’로 뽑았다.

2016년 인권 10대 뉴스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 국가폭력 끝장내야 △세월호 특조위 강제 해산, 그러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라! 거리를 메운 주권자의 함성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 위험의 외주화에 경종을 울리다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 여성혐오에 경종을 울리다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사태, 시민의 알 권리 보장 대책 시급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 등 고용노동부의 노동 개악 이어져 △사드 한국 배치? 우리의 소원은 평화!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문제, 이제 삼성이 답하라! △민중총궐기 주도한 죄로 구속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등이다.

숨겨진 12개의 결정적 장면들은 △주민등록번호제도 헌법불합치 결정 △의료 민영화 추진 △특성화고 현장실습 청소년 문제 △정부 정책 및 제도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학생 형제자매와 생존학생의 현실 △서울 용산 참사 이후 △조선업 노동자들의 현실 △전북 삼례 3인조 강도사건, 익산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의 억울한 누명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차별 △알 권리 조례 제정 운동 △예비군 훈련 거부 △동양시멘트, 아사히글라스, 하이디스, 세종호텔 등 장기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 등이다.

2016년 인권 10대 뉴스의 대부분은 도 표지 기사나 특집 기사로 비중 있게 다뤘던 것들이다. 하지만 숨겨진 12개 장면 중에는 미처 보도하지 못한 문제들도 있다. 은 앞으로 2016년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 같은 이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보도할 계획이다.




2016년  한국  사회  인권의  ‘그날들’


1월12일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이 답하라!”
1월22일  고용노동부,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 일방적 지침 발표
2월15일  성소수자 단체에 공공시설 대관 불허하는 행위는 ‘평등권 침해’
2월24일  집회의 방식과 장소는 우리가 정한다, 국제앰네스티 홀로그램 유령 집회 개최
3월2일  새누리당, 국가정보원의 숙원 사업 ‘테러방지법’ 강행 처리(192시간 필리버스터)
3월10일  진실의 힘·한겨레21 출간
3월17일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 행위에 저항했던 노동자, 한광호 조합원 자살
3월24일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 ‘재벌의 꿈’ 규제프리존특별법 국회 통과
4월16일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선포
5월2일  최악의 환경 재해 침묵의 살인 가습기살균제 사건 옥시 대표 공식 사과
5월17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은 포스트잇 ‘여성혐오를 고발한다’
5월18일  ‘국가’라는 빅브러더, 통신자료 제공 중단하라 헌법 소원
5월24일  혐오와 차별 선동, 기독자유당 국가인권위 진정
5월25일  법원, 동성 커플 소송 각하 “그래도 평등한 사랑은 계속됩니다”
5월28일  ‘외주화된 안전의 필연적 불행’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 사망
5월30일  최저임금으로 살 수 없는 생리대 ‘깔창 생리대의 비극’
6월12일  미국 올랜도 게이클럽 총격 사건, 한국 연대 추모 문화제 개최
6월16일  ‘최저임금 1만원’ 향한 아르바이트들의 국회 앞 1만 시간 단식투쟁 시작
6월17일  참사의 진실을 부탁합니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죽음
6월23일  위험 노동은 계속 외주된다, 삼성 에어컨 수리 노동자 추락사
6월24일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재단 설립 불허 처분 취소 소송 승소
6월28일  ‘죽음의 물대포를 추방하라’ 경찰 집회 대응 개선 국제 심포지엄 개최
7월6일  국회, 형제복지원 특별법 재발의
7월8일  온 국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담보로 벌이는 외교 도박 ‘사드 배치’ 결정
7월18일  쫓겨나는 삶들, 서울 가로수길 소곱창집 ‘우장창창’ 2차 강제집행
8월26일  290여 일의 투쟁 끝에 받은 사과, 김무성 “콜트·콜텍 강경노조 발언 사과”
9월25일  317일간의 사투 끝에 백남기 농민 사망 “책임자를 처벌하라”
9월27일  ‘성과퇴출제’는 부당하다, 공공부문 총파업 돌입
10월5일  한국판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를 위한 1만인 입법 청원
10월18일  양심적 병역거부 항소심 최초 무죄판결
10월20일  낙태죄를 폐지하라, 검은 시위 물결
10월28일  전북 삼례 3인조 강도치사사건 17년 만에 무죄판결
11월11일  해양수산부, ‘연내 세월호 인양 불가’ 파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11월12일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 퇴진 범국민 촛불시위 100만 명 돌파
11월23일  예비군훈련 공개 거부 선언 기자회견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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