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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도 포기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2006년 <뉴욕타임스> 보도로 역사 교과서 논란 촉발, 고심 끝에 2016년 검정제 존치 결론
등록 2016-12-20 16:02 수정 2020-05-03 04:28
지난 11월28일 공개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위)은 ‘편향 교과서’ ‘부실 교과서’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래는 2006년 9월 중국 상하이 지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다룬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한 <한겨레> 기사.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지난 11월28일 공개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 현장검토본(위)은 ‘편향 교과서’ ‘부실 교과서’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래는 2006년 9월 중국 상하이 지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다룬 <뉴욕타임스> 보도에 대한 <한겨레> 기사.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중국 중학생들은 2016년 새학기(중국은 가을에 새학기가 시작된다)에야 비로소 9종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대면할 수 있었다. 2011년 중국 교육부는 새 중학교 교육과정을 공포했고, 2012년 가을 새 검정교과서가 출판됐다. 하지만 역사·국어·정치 교과서는 지난 5년 동안 옛 교육과정에서 개발된 검정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했다. 왜 그랬을까.

중국공산당 정부가 내부적으로 이 세 과목의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검토하느라 교과서 발행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여건이 한국과 차이가 있는 중국에선 이런 일이 거의 공론화되지 않았고 한국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문명사관 vs 혁명사관 논란

2016년 새학기에 역사·국어·정치 과목의 새 검정교과서가 출판됐다는 것은 결국 중국 정부가 지난 5년 동안의 국정화 시도를 포기하고 기존 검정제를 통해 다양한 교과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가 역사학계 등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 역사 교과서를 개발해 공개한 것과 비교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검토한 것은 10년 전인 2006년 미국 보도를 통해 촉발된 ‘문명사관 대 혁명사관’ 논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는 그해 가을 출판된 상하이 지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대해 ‘마오쩌둥, 어디로 갔나? 중국의 역사 교과서 수정’(Where’s Mao? Chinese Revise History Books)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상하이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전쟁, 역대 왕조, 공산주의 혁명보다 경제, 기술, 사회적 관습과 세계화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오쩌둥, 공산당의 대장정, 난징 대학살 등에 대한 서술이 감소하고 대신 글로벌 금융회사인 JP모건, 빌 게이츠, 뉴욕증권거래소, 우주왕복선,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 등의 서술이 추가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상하이사범대학 교수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한 역사 교과서는 이른바 ‘문명사관’에 입각해 집필된 교과서였다.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던 상하이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중국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세계사 및 세계 문명의 흐름 속에 중국 문명을 통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교육적 목표가 있었다.

보도가 불러온 파급력은 엄청났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중국의 새 역사 교과서가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국 내 보수주의자들은 ‘상하이 역사 교과서의 문명사관이 중국의 전통적 혁명사관을 부정하거나 약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과장됐지만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중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상하이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상하이의 새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사용을 중단했다.

다음해 상하이에서 새로 편찬된 화둥사범대학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중국사와 세계사를 시대별 통사 형식으로 기술했다. 중국사와 세계사를 문명사 입장에서 주제별로 편찬한 상하이사범대학의 교과서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근현대사 서술도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중국공산당 혁명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중국, 국정교과서 포기하고 검정제 유지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980년대까지 중국 교육부 산하 인민교육출판사에서 교과서를 전국에 독점 공급하는 ‘국정’ 체제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중국 각지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인식했고, 1988년부터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교과서를 연구해 편찬했다. 1993년 새학기부터 중국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한 여러 종류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편찬됐다. 예외적으로 상하이 지역 등에서 독자적인 교육과정에 따른 검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상하이의 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된 이후 중국에서는 역사·국어·정치 교과서를 국가가 편찬하는 국정교과서(중국에선 ‘통편교과서’로 부른다)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사실상 국정화를 염두에 두고 2007년부터 중국 정부는 교육과정을 개정해 2011년 말에 새 중학교 교육과정을 공포했다.

새 교육과정에 따라 2012년 15개 과목의 새 중학교 교과서가 출판됐으나 역사·국어·정치 교과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 정부가 세 과목의 교과서를 한 종류의 국정교과서로 편찬할지, 현행대로 검정제를 유지하면서 여러 종의 교과서를 편찬할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결정이 지연되면서 중국 중학생들은 5년 동안 옛 교육과정 교과서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정화 여부는 후진타오 시대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시진핑 시대로 넘어왔다. 5년의 시간을 소비하고 2016년 새학기에 9종의 검정 역사 교과서가 출판된 것은 중국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포기하고 현행 검정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혁·개방이란 시대적 흐름 속에 세계와 조응해 국가 발전을 모색하는 중국에 국정교과서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도 검정교과서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는데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은 내용의 편향성이나 부실 문제를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주변 국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2016년 가을 9종의 중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가 발행돼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국 보수파들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에서 여전히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등 서구의 각종 사조가 유입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 중국공산당 중심의 혁명사관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한국에서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면 중국 보수파들은 러시아와 한국의 사례를 핑계 삼아 국정화를 추진하는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이웃 국가와 역사 문제 논쟁에서도 불리

국정교과서는 일본 등과의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도 한국 입장을 곤란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등 외국에서 볼 때 한국 국정교과서 내용은 그대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취급될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한 종류의 국정교과서가 드러내는 관점과 오류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은 그대로 한국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

아울러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한국이 검인정교과서를 사용하는 일본 등 이웃 국가의 역사 왜곡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 예상치 못한 반박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리는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내는 한국과 다르다. 민간 출판사가 선임한 집필진의 의견으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고 하면 어쩔 텐가.

김지훈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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