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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살당 가시믄 조으크라”

‘성산 제2공항’ 건설 예정지 주민들 반대 목소리… 토지수용·분진·소음 우려, 결정 과정에서 배제돼
등록 2016-08-03 19:08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제주로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없던 문제가 생겨났고, 있던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갈등을 풀어야 하는 정치도 바빠졌다.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의 성산 주민들, 해군기지 건설로 10년째 고통받는 강정 주민들, ‘제주 4·3사건’으로 68년간 고된 삶을 사는 희생자 등은 여전히 ‘정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제주에서 가장 바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이 만났다. 그에게 난개발, 주택·토지 가격 폭등, 교통량 폭증, 취업난 등 현안을 묻고 대책을 들었다. 뒤이은 기사에선 ‘낯선 아름다움’의 제주어와 제주의 아픈 역사, 독특한 문화를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font>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발표된 마을들은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의 발표 직후 반대대책위원회를 꾸려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옆 조천읍에도 ‘제2공항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발표된 마을들은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의 발표 직후 반대대책위원회를 꾸려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옆 조천읍에도 ‘제2공항 결사반대’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공항은) 별로주게. 우리 집이 바로 여기라부난 공항 들어오젠허믄(들어오려면) 거기로 길 나살 거 아니라. 아맹해도(아무래도) 공사하믄 시끄럽고 먼지 날리고. 살 날이 얼마 안 남아시난 영 조용히 살당 가시믄 조으크라(좋겠어). 경헌디(그런데) 나라에서 허는 일인디 (공항이) 안 들어올 수도 이실건가.”

지난 7월26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마을 어귀 고목나무 그늘에서 무더위를 피하고 있던 강옥추(85) 할머니가 ‘공항’ 이야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 할망들은 그런 건 잘 몰라” 하며 손사래를 치던 한 할머니도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제도 막 방송핸게. 다들 반대햄땐.”

할머니들만의 걱정이 아니었다. 온평리 마을에는 ‘온평 제2공항 결사반대’라고 쓰인 빨간 플래카드가 돌담과 나무 곳곳에 걸려 있다. 온평리는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성산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의 핵심 지역이다. 온평·신산·난산·수산·고성 5개 마을이 포함된 공항 예정 부지 495만㎡(150만 평) 중 76%가 온평 지역에 해당한다.

<font size="4"><font color="#006699">“2분마다 비행기가 들 텐테…” </font></font>

이곳 주민들은 마을 토지의 45%가 공항터미널과 활주로 등으로 수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국토부 발표 직후인 지난해 11월16일 마을총회를 열어 ‘제2공항 반대 온평리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온평리사무소에서 만난 현은찬 온평리 비상대책위원장(온평리 이장)은 “지금까지 관광객이 늘어나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쓰레기밖에 없었다”며 “땅은 우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고 일자리인데 (토지수용은) 그걸 송두리째 가져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마을 분위기도 흉흉했다. ‘Peace 신산마을’ ‘국토부와 제주도는 제2공항 철회하고 공개 사과하라’ 등의 플래카드가 신산·난산·수산1리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세 마을은 비행기 이착륙 지역으로 거론된다. 수용되는 토지는 적지만 비행기 소음과 분진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이다.

지난 7월25일 신산·난산·수산1리 마을별 대책위를 통합해 출범한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의 한영길 공동대책위원장(신산리 이장)은 ‘마을의 존립’을 우려했다. “2분마다 비행기가 들 텐데 누가 (신산리에) 살려고 들어오겠느냐. 소음이 나기 전에도, 공사가 이뤄지는 10년간 먼지 피해를 당해야 한다. 자포자기한 몇 어르신을 빼고 주민 90%가 반대한다.”

공항 예정지 마을마다 고민은 서로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제2공항 전면 재검토’다. 2025년까지 총사업비 4조1천억원을 들여 연간 25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을 마다하는 것이다.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인 부산 가덕도, 경남 밀양과는 상황이 다르다.

왜 그럴까. 주민들이 토지수용, 소음·분진 피해보다 앞세우는 이유가 있다. 삶을 바꿔놓을 중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완전히 배제당했다는 분노와 허탈감이다.

주민들은 국토부의 ‘제주공항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 공식 발표를 보고서야 마을이 공항 예정지로 결정된 사실을 알았다. 더구나 성산읍 일대는 지금까지 제2공항 후보지로 언급된 적이 거의 없었다. 기존 제주공항 확장, 대한항공 조종사 훈련용인 정석비행장 활용, 서귀포시 대정읍에 제2공항 건립 등이 오랫동안 진행된 공항 확충 논의 과정의 단골 메뉴였다.

“우리는 (사전에) 전혀 몰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발표 직후 마을에 와서 ‘저도 공항 예정지가 어디인지 몰랐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도지사가 그렇게 말하는 건 도민을 속이는 것이다.” 현은찬 온평리 이장의 말이다.

<font size="4"><font color="#006699">‘제2의 강정마을’ 사태 날 수도</font></font>

갑작스러운 입지 선정으로 인해 용역보고서를 둘러싼 말도 많다. 제2공항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기존 제주공항 확장안은 인근 해안을 매립하는 1개의 안에 대해서만 2쪽 분량으로 간단히 평가한 점 △대한항공 소유 정석공항의 안개 일수 자료가 기상청 통계가 아닌 정석공항의 실측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의심되는 점 등을 문제로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공항확충지원과 관계자는 이런 설명을 내놓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기준에 따라 안전성·환경성 등 9개 선정 기준을 놓고 3단계 평가를 거친 결과, 31개 후보지 가운데 성산읍 일대가 최적의 입지라는 결과가 나왔다.”

제2공항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주민들의 마음도 편치 않다. “토지 보상 더 받으려는 노림수 아니냐”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주민들도 공항 예정지에 속한 토지가 지금보다 높은 가격에 수용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현재 토지보상비로 책정된 5천억원을 예정지 150만 평(495만㎡)으로 나누면 평(3.3㎡)당 30만원 안팎의 보상이 돌아갈 것이란 관측도 일부에서 나온다. 이는 올해 온평리 표준지(65필지) 공시가격인 평균 15만6천원(3.3㎡ 기준)보다 많은 금액이다. 그러나 토지보상비 5천억원에는 가옥, 영업손실, 유실수 등 다른 보상 비용이 포함돼 있어 실제 평당 토지보상비는 일부 관측보다 적을 수 있다.

무엇보다 대대로 땅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에겐 애착이 컸다. “돈으로 다 해결하는 도시 사람들은 수치 개념밖에 없는지 몰라도 우리는 은행에 돈 넣어둔 채 일 안 하고 살 수 없다. 우리 땅을 희생해야 한다면, 계속 농사지으면서 살 수 있게 ‘다른 땅으로 바꿔달라’(대토)는 것이 우리 요구다.” 송대수 온평리 비상대책위원회 기획실장의 설명이다.

땅값 상승의 수혜가 모두 주민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공항 예정지 5개 마을 토지의 41%가량은 도민이 아닌 외지인 소유로 제주도는 파악한다. 송대수 기획실장은 “발표 6개월 전부터 평당 20만~30만원 하던 땅이 100만원에 외지인에게 팔렸다. 지금 보니까 용역 과정 중에 눈치 빠른 부동산 전문가 등이 미리 사둔 것 같다”고 말했다. 발표 직후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조처로 성산읍 일대가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된 상태다.

성산 제2공항이 삽을 뜨려면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았다. 올해 안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예비타당성조사를 마무리하면 2017년 기본계획 수립(1년 소요), 2018년 기본·실시 설계(1년6개월~2년), 2019년 보상 협의·착공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원희룡 지사는 이 과정을 단축해 완공 시점을 2년 앞당기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또한 △환경문제 최우선 △주민과 투자 목적 토지 소유자 간 차별화된 보상 △공항 예정지 이외 지역에도 합당한 보상 등의 원칙도 발표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공항 건설이 확정된 이후를 더 걱정한다. “지금은 마을들이 연대하고 있지만 공항 건설이 결정되면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갈리고 그러면 마을은 분열될 수밖에 없다. 특히 반대했던 사람은 분을 못 삭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강정마을과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탄탄하던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한영길 신산리 이장은 ‘걱정’이란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font color="#008ABD">글</font>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font color="#008ABD">사진</font>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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