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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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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선소 용접공의 죽음

지난 5월 <한겨레21> 만나 ‘부당한 압박’ 호소했던 대우조선해양 ‘물량팀’ 노동자… 조선업 구조조정 불안감에 ‘죽음의 행렬’ 길어질라
등록 2016-07-19 18:27 수정 2020-05-03 04:28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구조조정으로 임금 삭감, 해고 위협을 느끼는 조선업 노동자들은 지금 불안하다. 불안을 견디다 못해 극단의 선택을 하는 이도 있다. 은 지난 5월 경남 거제를 찾아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 사장과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업체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곡절을 살폈다.
“죽음의 곡절이 어찌 ‘조선업 구조조정’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겠는가. 하지만 거제에 있는 조선산업의 ‘약한 고리’인, 벼랑 끝에 선 또 다른 이강수, 또 다른 정현우는 묻고 있었다. 앞으로 제2, 제3의 죽음이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제1114호 특집 ‘두 아빠의 선택’ 참조)
불안은 현실이 됐다. 그로부터 40여 일 뒤인 7월11일 거제에서 비보가 들려왔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안에서 사내협력업체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5월 거제에서 기자를 만나 사내협력업체 폐업과 임금 체불, 재취업의 어려움 등을 하소연했던 김진건(가명)씨다. 6월26일에는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업체 물량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우려했던 제2, 제3의 죽음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은 다시 거제를 찾아가 죽음의 곡절에 귀 기울였다. 그의 죽음이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5월 김씨와 직접 나눴던 대화 녹음 파일을 포함해 유가족, 회사 동료 등의 이야기를 종합해 왜 김씨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돌아본다. 일종의 심리 부검이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밝히는 일이 또 다른 죽음을 막는 길이 되길 바란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_편집자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경상남도 거제에선 최근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온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불안감이 확산되는 탓이다. 정용일 기자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경상남도 거제에선 최근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온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불안감이 확산되는 탓이다. 정용일 기자

“민수야, 니한테 미안하다. 앞으로도 동생들 잘 부탁한다.”

진건이 행님은 그날도 자꾸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들’은 지난 5월까지 대우조선해양 1독(dock)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의리에 사나이들’이라고 자기들끼리 이름 붙인 25명은 회사가 폐업했을 때 체불임금을 100% 받아내겠다며 뭉쳐서 싸웠다. 그 무렵부터 서로 미안하다, 힘들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바로 전날 국밥 한 그릇을 놓고 둘이 마주 앉았을 때도 행님은 그랬다. 토요일 오전에 출근했던 진건씨는 “점심밥 한 끼 먹자”며 집에 있던 민수씨를 불러냈다. 소주를 1병 넘게 비웠다. 그러고는 일요일 낮에 “혼자 바람 쐬고 있다”며 전화를 걸어와서는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때는 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다음날인 7월11일 아침 8시, 진건이 행님은 1독 동쪽 선박 블록(선박을 만드는 대형 철구조물)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진건씨 출입증에 찍힌 마지막 출근 기록은 7월10일 오전 10시21분. 그날은 작업이 없는 일요일이었다.

“물량팀 동생들 잘 부탁한다”

진건씨는 민수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시간 즈음에 아내 지현씨에게도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를 잘 부탁해.’ ○○는 진건씨의 6살 딸이다. 진건씨는 ‘딸바보’였다. 그의 카카오톡과 밴드 프로필 사진은 귀여운 딸의 얼굴이다. 눈매며 웃을 때마다 얼굴에 파이는 볼우물까지 딸은 아빠를 똑 닮았다. 자상한 아빠는 딸에게 노래 불러주기를 좋아했다. “직장, 소장, 사장까지 떳떳하게 돈 벌어서 우리 ○○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겠다”며 진건씨는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했다.

지현씨는 뒤늦게 본 그 문자메시지가 남편의 유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보, 당신만 힘든 게 아니라 거제 전체가 힘들잖아. 견디자. 견뎌야 해.” 힘들어하는 남편한테 항상 말했다. 좀더 세게 다독여줄 걸 그랬다며 지현씨는 울먹였다.

42살 진건씨는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조선소에서 일했다.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대한 뒤 22살부터 용접공으로 먹고살았다. 취득이 어렵다는 국제공인용접사(6G) 자격까지 갖춘 숙련공이었다. 진건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일한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 ㄱ사 대표가 “우리 직원 850명 중에 등수를 매기라 하면 10등 안에 든다고 생각하는 기라. 그만치 잘하는 친구다”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하지만 뛰어난 용접 기술로도 마음의 균열까지 완벽하게 때울 수는 없었다. 지난 5월부터 그의 삶은 조금씩 뒤틀려갔다.

진건씨는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 ㄴ사에서 최근 6년간 일했다. 관리직으로 4년여 일했던 그는 ‘물량팀’으로 옮기겠다고 자청했다. “(관리자 할 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은 니 하나 책임진다. 내가 밀어줄게.’ ㄴ사 사장이 그랬대요. 일주일 동안 집에 안 들어온 적도 있어요, 물량 맞추려고. 그래 욕먹어가면서 일을 시키니까 사람들이 ‘진건이 형님 무섭다’ 그러고. (사장이) 그렇게까지 사람한테 악역만 시켜놓고 자기는 돈 갖고 튀어버리고….” 아내 지현씨의 기억이다.

물량팀은 조선소에서 ‘보따리’로 불린다. 보따리장수처럼 팀을 이뤄 사내협력업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급한 물량을 쳐내는 일을 맡기 때문이다. 사내협력업체의 재하청을 받는 물량팀은 조선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이다. 원청(대형 조선업체) 정규직이나 본공(사내협력업체 정규직)과 달리 자신이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급여를 챙겨갈 수 있다는 이유로 숙련공 가운데는 물량팀을 선호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진건씨는 ㄴ사 물량팀 용접반장으로 2년여 일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노동자 4만7천여 명 가운데, 진건씨와 같은 물량팀 노동자는 1만9천여 명에 이른다. 물량팀은 상여금이나 퇴직금이 없다. 금속노조 조사에 따르면 물량팀의 60%가량은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은 탓에 해고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조선소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부는 요즘 같은 불황기에 물량팀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임금 체불에 회사 폐업까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7월13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상경 집회를 열었다. 8개 조선소 노동조합연대는 7월20일 총파업을 벌인다. 연합뉴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7월13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상경 집회를 열었다. 8개 조선소 노동조합연대는 7월20일 총파업을 벌인다.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세계경제 장기 침체로 선박 수주가 뚝 끊기면서 ㄴ사도 올 초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1월 임금이 30% 밀리더니, 3월 임금부터는 절반만 지급됐다. 회사는 밀린 임금을 6~8월 석 달간 나눠서 줄 테니 “믿고 일하자”고 진건씨를 포함한 노동자들을 설득했다. ㄴ사에는 물량팀 50여 명, 본공 130여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부터 조선소 안에 “너희 회사 문 닫는다더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물량팀은 회사가 문 닫으면 돈을 10원도 못 받아요. 회사가 폐업된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대표(사장)를 찾아갔어요. ‘대표님, (밀린 임금) 주신다 했는데 왜 갑자기 이래 됐습니꺼? 우리는 체당금(국가가 폐업한 사업주를 대신해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제도) 신청도 안 되니까 우리 임금은 정리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물었어요. 일손을 놓고 사무실 복도에서 아예 먹고 자며 대답을 기다렸죠.”

지난 5월13일 오전에 있었던 일이다. 진건씨를 포함한 물량팀 대부분이 함께 항의했다. 노동조합은 없었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단체행동에 나선 셈이다. ㄴ사 사장은 “회사가 공중분해돼서 줄 돈이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다른 하청업체한테 받을 고용승계비가 있으니 그 돈으로 임금을 정리해보겠다”고 말을 바꿨다. 물량팀 체불임금만 2억6천여만원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진건씨는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일에 앞장섰다. 진건씨가 못 받은 두 달치 임금은 720여만원. 돈도 돈이었지만 그는 한때 자신이 관리자였으니 동료들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는 듯했다. “대표님이 정리해준다기에 믿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대표님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거예요. 부산 병원에 가봐야 한대서 ‘부모님 갖고 거짓말하면 사람이 아니라. 믿고 기다려봅시다’ 제가 이래 동료들한테 말했죠.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연락이 아예 끊겨버렸어요.”

그때부터 ㄴ사를 인수한 다른 사내협력업체 ㄷ사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나섰다. “원청 관계자가 와서 ‘지금 (대우조선해양) 밖에 나가도 일 없다. 그래도 1독이 요 안에서는 일이 제일 많으니까 대충 하고 고마 일하러 가라’ 카더라고요.” ㄷ사는 체불임금 가운데 70%만 받는 것을 조건으로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옆 회사에 아는 현장소장이 ‘너희 팀 일 잘한다고 소문난 팀 아니냐. 그냥 체불임금 70%만 받겠다고 사인하고 우리 회사로 오니라. 내가 나중에 쪼매 챙겨줄게’ 이러더라고요. 근데 못 받은 30%를 다른 업체가 챙겨준다는 게 공짜로 주는 게 아니잖아요. 나중에 ‘너그들 데려올 때 이래 내가 도와준 거 아니냐’ 하면서 일 더 시킬 거 아녜요. 우린 그게 또 싫은 거예요. 내가 일한 회사에서 당연히 받을 돈 100% 받겠다는 건데….”

진건씨는 “형이 결정할 건 아니니 70%만 받을 건지, 100% 받을 건지 니들이 결정하라”고 ‘동생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진건씨를 포함해 물량팀 노동자 25명이 5월18일 대우조선해양에 출입증을 반납한 뒤 ‘체불임금 70%’가 아니라 ‘체불임금 100%’를 받는 쪽에 서명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주민번호 바꿔야 재취업 될까?

그런데 이후 임금 체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25명 중 1명이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업체에 합격해 출근하는 날 아침, 조선소 정문 앞에서 갑자기 출입증 발급을 거부당한 것이다. “동생이 ‘형님, 이상합니더. 알 수 없는 이유로 당신은 입사가 안 된다 하는데 우째야 합니까?’ 하더라고요. 우리도 부랴부랴 서류를 넣어보니까 진짜 안 되더라고요.”

걱정된 진건씨는 금속노조를 찾았고, 마침 5월25일 거제에 있던 기자와도 만났다. “한 회사에서 임금 트러블이 있어서 일을 그만두면 다른 회사에 6개월 동안 서류 통과가 안 돼요. 이전 회사 대표의 동의서가 있어야 해요. 내가 아는 형님은 법원에 가서 이름을 개명해서 회사 옮기기도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생각했죠. ‘체불임금 100% 지급’ 동의서에 서명하면서 우리들 주민등록번호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으니 이제는 주민등록증을 바꿔야겠다고.” 진건씨는 이 말을 하면서 헛헛하게 웃었다.

다행히 진건씨는 민수씨와 함께 6월14일 ㄱ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행동을 함께했던 25명 가운데 진건씨 등 3명을 제외하고는 번번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협력업체 쪽에선 “원청이 막아놨다”고 귀띔했고,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를 의심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쪽은 이른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고, 업황이 나빠 예전처럼 취업이 쉽지 않은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혼자만 ‘의리’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진건씨 마음의 균열은 더 심해졌다. “자기 들어가고 나서 동생들한테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그랬어요. 진짜 우리는 A급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다들 순차적으로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니까….”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특히 6월 말부터는 진건씨와 민수씨가 곧 해고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동생이 나한테 전화해서 말하더라고요. ‘형님, ㄱ사에서도 못해먹겠습니다. 저를 내보내라는 압박이 들어온답니다.’” 10여 년 전 진건씨 ‘사수’로 일했던 한 용접공은 여러 차례 괴로움을 토로하는 진건씨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ㄱ사 쪽은 “원청에서 김진건씨를 내보내라고 압박한 적도, 김씨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사건을 수사 중인 거제경찰서는 7월14일 “취업을 제한하는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건씨와 ㄴ사에서 함께 일하다가 그만둔 동료들은 그저 이 모든 상황이 답답할 뿐이다. “원청 눈치 보느라 협력업체 누가 블랙리스트를 인정하겠능교?” “조선소에서 일하며 만나는 주변 사람들이 ‘니들 이번달까지만 하고 나가기로 했다며?’라고 자주 물었다고 한다.” “누가 농담 삼아 ‘어? 아직도 안 그만뒀어?’ 했는데 그 이야기를 수백 명한테 들어보소. 얼마나 미치는지.”

“일하고 싶다”더니, 일했는데도…

“우리가 바라는 건 딱 이겁니다.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 회사가 망해서 다른 회사를 찾아서 일해야 하는데,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제3의 압력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5월에 만난 진건씨는 “일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계속’ 일하고 싶다는 뜻이었을 게다. 그의 바람은 이제 영원히 이뤄질 수 없게 됐다.

7월12일 거제 대우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작업복 왼쪽 가슴에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로고를, 오른쪽 가슴에는 협력업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하얀 명찰을 단 ‘형님’과 ‘동생’들이 끊임없이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것들로 장례식장이 온통 뿌옜다.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


‘벼랑 끝’  조선업  노동자들  20일  총파업


조선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위기감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상태다. 7월20일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8개 조선소 노동조합은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를 내건 총파업을 벌인다. 8개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은 3만5천여 명이다.
8개 조선소 노동조합이 모인 ‘조선업종 노동조합연대’는 7월13일 국회에서 총파업 돌입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황우찬 조선업종 노동조합연대 공동의장(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지난 4월부터 국회와 정부를 찾아다니며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노·사·정 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의 기다림은 한국의 조선산업을 죽이고 조선소 노동자들을 죽음과도 같은 해고 상태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의 일자리와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총파업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조선업 불황이 길어지고 정부가 구조조정을 압박하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은 사업 부문 분사, 인력 감축 등 자구안을 내놓았다. 올해 현대중공업은 2천여 명의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삼성중공업도 1500여 명을 희망퇴직시키는 데 이어 2018년까지 현재 인력의 30~40%를 줄일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도 특수선 사업 부문 매각 등으로 인력 감축을 계획 중이다.
변성준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은 “5천여 명을 감원하는 자구안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소속 노동자 100여 명은 7월13일 서울 서초동 삼성중공업 본사 앞에서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2차 상경 집회를 열었다. 이어 15일에는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와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거제에서 시민단체 등과 함께 거리시위도 벌였다.
7월20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5개 조선소에서는 4시간 부분 파업을 진행한다. 특히 울산에선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사상 처음으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공동파업을 벌일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한진중공업 등 3곳은 쟁의권을 확보하지 못해 집회로 파업을 대신한다. 김태정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8월 중순 이후 2차 행동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거제=김민지 교육연수생 mgone3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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